얼마 전 갓 결혼한 금융권 종사자 30대 김모 씨는 온라인 미술품 경매에 푹 빠졌다. 아내와 함께 신혼 집을 꾸미기 위해 처음 경매를 접한 미술품 초짜지만 미술품으로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데 쏠쏠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많은 돈을 들인 것은 아니다. 거실 소파 뒤에는 300만원짜리 두민의 그림을, 안방에는 서울옥션에서 150만원에 낙찰받은 윤병운의 작품을 걸었다. 집들이에 온 가족과 친구들이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 그는 묘한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대구에 사는 중년 컬렉터 이모 씨는 온라인 경매 단골이다. 처음에는 작품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서울 전시장까지 나들이를 했지만 이제는 경매사 스페셜리스트에게 전화를 걸거나 컨디션 리포트(작품 상태 확인 문서)를 확인하고 구입을 결정한다. 신뢰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믿고 응찰하는 것이다.
미술품 경매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미술품이 점당 수천만원에서 수억원하는 작품들이 많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심사숙고해 매입을 결정하는 분야지만 이마저도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경매를 통해 구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온라인 경매 매출 비중도 K옥션의 경우 지난해까지는 한 자릿수였다가 올해에는 10%를 넘어섰다. 서울옥션도 앞으로 온라인 매출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온라인 비중 확대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경우 온라인 비중은 전체 매출의 30%를 육박하거나 넘어섰다.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하더니 올해부터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관측이다. 횟수나 낙찰총액만 봐도 이 같은 변화는 눈에 도드라진다.
K옥션은 올 들어 7월까지 총 10회 온라인 경매를 치렀으며 이를 통해 낙찰총액 30억2618만원을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 온라인 경매 횟수는 4번 뿐이었고 낙찰총액도 8억7462만원이었다. 4배 가까이 낙찰총액이 늘어난 것이다. 서울옥션도 마찬가지다. 작년 1월부터 7월까지 온라인 경매는 고작 한번 뿐이었고 낙찰총액은 7184만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네 번의 온라인 경매를 통해 25억9900만원의 낙찰총액을 기록했다.
최근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발표한 올 상반기 온라인 경매 결과 국내 6개 미술품 경매회사는 올 상반기에만 63억6700만원어치를 온라인 경매를 통해 판매했다. 이러한 기세에 힘입어 K옥션은 100호 이상 ‘큰그림 경매’도 올해부터는 온라인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온라인에서 점당 500만원 안팎의 그림이 잘 거래돼 작은 작품만 취급하던 관행을 깨고 실험을 하는 셈이다. 9월 1일 치러질 온라인 경매에서는 81명 작가의 90점 작품 14억원어치 작품이 출품된다. 김창열 김종학 이만익 오치균 배병우 민성식 등 거장들의 작품이 주로 나온다.
역대 온라인에서 팔린 최고가 작품은 장욱진과 천경자 등으로 2억원이 넘었다. 지난달에는 박수근 누드화가 서울옥션 에로스 경매가 출품돼 치열한 경합 끝에 70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500만원 이하 작품이 온라인 거래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온라인 경매가 활기를 띠는 배경에는 미술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저금리로 인해 미술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20대 대학생과 직장인, 주부 등이 중저가 작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 실제 신규 컬렉터 유입이 온라인에서 확연하게 늘었다. K옥션 측은 “매번 온라인 경매시 신규 낙찰 고객이 15~20%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각종 공공기관 의뢰작품이 증가하며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선보이는 점도 신규 구매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PC와 똑같이 스마트폰으로 응찰할 수 있다. 편리하다는 것이 최대 장점인 것이다.
경매사 입장에서는 두꺼운 도록을 만들지 않아도 되고, 고화질 작품 촬영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하지 않는다.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위탁자 입장에서도 유찰에 대한 부담이 적고, 시간 제약을 크게 받지 않고 작품을 위탁할 수 있다. 참여 방법도 간단하다. 각각 서울옥션과 K옥션 홈페이지에서 실명 절차를 밟고 회원 가입만 하면 된다. 오프라인의 경우 연회비 10만원을 내야 하지만 별도의 회원비도 없다. 온라인 경매라고 검증 절차가 간단한 것은 아니다. 일반 현장 경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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