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 현장으로 변한 평화롭던 튀니지 휴양지 해변

↑ 사진=연합뉴스

튀니지 동부의 지중해 휴양지 수스의 임페리얼 마르하바 호텔과 벨레뷰 호텔과 마주한 해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튀니지 대학생 세이페딘 레그쥐가 해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파라솔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아늑함을 즐기던 여행객들을 향해 칼리시니코프 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느닷없는 총소리에 놀란 여행객들은 죽을 힘을 다해 해변에서 도망쳤습니다.

레그쥐는 이들을 향해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며 살육을 벌였습니다.

해변에서 잠을 자고 있던 영국인 여성은 BBC 방송에 "총소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도망치는 사람이 쓰러진 것을 보고서야 뛰기 시작했다"면서 "끔찍한 광경이었다"고 했습니다.

가족 여행을 즐기던 영국 스완지에 사는 50대 여성 아만다 로버츠는 "총소리가 들리기 몇초 전에 도망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면서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맨발로 달렸다. 나와 딸이 발에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살아있는데 감사할 뿐"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영국 맨체스터 출신인 올리비아 리들리는 "한 여성이 남편이 자기 앞에서 가슴에 총을 맞았다고 말하곤 울면서 연방 '사랑해 여보'라는 말만 계속 했다. 이 여성은 호텔 경비원들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거의 끌려다가시피 했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전했습니다.

영국 노르폭 경찰서 직원인 토니 칼라간의 아내는 가방과 선글라스 보관함에 총탄이 박혀 아내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면서 총탄 구멍이 난 선글라스 보관함을 보여줬습니다.

칼라간 자신도 무릎에 총을 한 발 맞았지만, 호텔로 몸을 옮겨 숨어 있었습니다.

해변에서 총을 난사한 레그쥐는 곧이어 호텔로 이동해서도 광란의 총격을 계속했습니다.

영국인 여성 스테이스 웹(23)은 "총소리에 다른 7명과 함께 욕실에 숨어 있었다"면서 "이런 두려움은 처음이다. 신이 보호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브 베어드만은 "(이튿날인) 토요일 아침에도 호텔 로비는 긴장감이 가득했다"면서 "아이들은 울고 있고, 사람들은 전화를 하려고 난리통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날 오전 영국에 돌아온 올리비아 레트리는 "수류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듣고 호텔 안으로 달려갔다"면서 "영국 땅을 밟고서야 불안한 마음이 가셨다"고 했습니다.

영국인 새라 윌슨은 "약혼남이 나를 위해 총알을 대신 맞았다. 총격이 시작되자 그가 내 앞으로 몸을 날려 나를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여태껏 아는 것 가운데 가장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총격이 계속된 탓에 그를 파라솔에 놔두고 도망쳐야만 했다"고 자책했습니다.

약혼남 매튜 제임스는 어깨, 가슴, 엉덩이 등에 모두 3발을 맞았지만,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의 엄마인 아일랜드인 간호사 로라 카티에는 불행히도 레그쥐의 총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심장수술을 받은 남편의 건강 회복을 위해 여행길에 올랐던 그녀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레그쥐의 살육 행각으로 최소 3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신원이 확인된 10명 가운데 영국인이 8명, 벨기에인과 독일인이 각 1명입니다. 아일랜드 정부는 로라 카티의 사망을 따로 확인했습니다.

튀니지 중부의 실리아나 지역의 가포 출신인 레그쥐는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자칭 칼리프 국가를 선언한 지 1년째를 사흘 앞두고 영국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를 테러의 목표로 삼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