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장보리’ 이후 일상이 달라졌냐고요? 여전히 평범해요. 연기할 때도 배우라기보다 실제 저처럼 했거든요. 소소한 장보리처럼 저도 평범한 사람이랍니다.”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는 평균 시청률 35%(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하며 지난 12일 막을 내렸다. 출생, 복수, 선악 구도 등 소위 ‘막장 요소’를 모두 가진 이 작품은 매주 방송마다 화제가 됐다.
오연서(28)는 극의 중심에 있었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했다. 게다가 첫 주연이었다. 하지만 그는 담담했다. ‘장보리’라는 인물과 자신의 모습이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친구들이 초반부 제 연기를 보고 ‘딱 네 모습인데 돈 받고 일하기 미안하지 않냐’고 구박했어요. ‘뽀글머리’를 한 모습이 친구들에겐 익숙하거든요. 정의감 넘치는 왈패 같은 모습도 평소의 저예요. 이런 모습을 초등학생 친구들도 좋아하더라고요. 어느 날은 초등학교 앞에서 촬영을 했는데 아이들이 저를 보더니 ‘보리보리’라고 부르는 거예요. 또 미용실에서 만났던 6살 꼬마는 비단이 나이를 묻더니 ‘보리랑 비단이랑 둘이 노는 장면이 재밌었어요’라며 막 웃었어요.”
이런 그를 알아보는 건 어린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오연서는 전 국민이 아는 배우가 됐다. 그는 이번 드라마를 ‘주말 약속도 취소시키는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대박이 나려면 ‘시청자들이 예정된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들었어요. 맞는 말 같아요. 작가님 공헌이 큰 것 같아요. 처음부터 시청자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복수는 쓰고 싶지 않다고.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났잖아요? 실제로 누군가는 죗값을 치르고 다시 잘 살기도 하고요. 장보리도 행복하게 살게 돼 만족해요.”
야구장에서 DMB로 ‘왔다 장보리’를 보는 이도 있었다. 말 그대로 ‘국민드라마’였다.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배우 이유리가 연기한 ‘연민정’이라는 인물에게 관심이 쏠렸기 때문.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질투나 시샘은 아니었어요. 연민정이 워낙 센 캐릭터이기도 했고 이유리 선배님이 연기도 잘 했잖아요. 시청자분들이 거기서 재미를 느꼈다면 괜찮아요. 저도 보리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연기했거든요. 작품 전체로 봤을 때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악성 댓글은 견디기 힘들었다. 더욱이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패러디한 ‘연민정 점’의 인기가 대단했다.
“점을 찍고 나타난 연민정을 보면서 저도 재밌었어요. 하지만 악성 댓글에는 상처를 받았어요. ‘보리가 한 게 뭐냐’ ‘왔다 연민정으로 제목 바꿔라’ 등의 댓글을 보면 속상했죠. 요즘 사람들은 착한 사람을 보면 화가 나는가 봐요. 희생하고 포기하는 것이 답답한 모양이에요. ‘극선’을 ‘극악’보다 싫어하는 것 같다고 느꼈죠.”
“어렸을 땐 막연히 TV에 나오고 싶었어요. 화려한 면만 보고 시작했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힘든 과정을 몰랐던 거죠. 연기도 굳은 마음으로 한 게 아니었어요. 안양예고에 진학하면서 하게 됐어요. 목적 없이 하다 보니 2년여 전에 연기를 그만두려고도 했어요. 그러다 ‘넝쿨당’을 만난 거에요.”
오연서는 2012년 KBS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방말숙 역을 연기하며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이때 연기가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고신인 같은 느낌 때문에 캐스팅 되지 못할 뻔 했으나 “나를 써달라”고 끝까지 매달렸다고 한다. 이런 애착이 지금의 오연서를 만들었다.
오리무중(五里霧中).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청춘일까. 오연서는 “고뇌하는 게 청춘”이라고 속 깊은 답을 내놨다. “배우만이 아니라 모든 20대가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그의 눈빛이 아침 햇살처럼 영롱했다. 스스로를 내다보는 전망도 밝았다. ‘왔다 장보리’를 통해 연기에 대한 욕심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왔다 장보리’를 하면서 연기에 대한 욕심도 많이 생겼어요. 기회가 된다면 로맨틱코미디를 꼭 해보고 싶어요. 워낙 좋아하는 장르거든요. 김은숙 작가님의 ‘파리의 연인’, 박지은 작가님의 ‘별에서 온 그대’를 정말 재밌게 봤어요. 망가지는 코믹이나 극적인 분장을 했을 때 예뻐 보인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또 섹시한 역할, 팜므파탈도 하고 싶어요.”
청춘에 빼놓을 수 없는 연애도 언급했다. 오연서의 이상형은 “바다처럼 마음이 넓은 남자”다. 동시에 “함께 있을 때 즐거운 남자”라고도 했다.
현재 솔로인 오연서는 연애 대신 틈틈이 만화책을 즐겨 본다. 인터뷰 장소 한 편에는 만화책을 꽂아놓은 책장이 있을 정도. 2단 책장을 가득 채운 만화책을 모두 읽었다. 드라마나 영화로 재창작 하고 싶은 만화도 많다고 한다.
“최근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를 보고 있어요. 일본드라마와 원작 만화도 다 봤어요. 캐릭터가 통통 튀는 유치한 감성이 좋아요. 만화 ‘조폭선생 고쿠센’이나 웹툰 ‘인간의 숲’은 드라마로 제작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특히 ‘슬램덩크’의 강백호를 좋아해요. 멋있고 천재성도 있고, 역시 캐릭터가 독특하잖아요.”
만화가 원작인 영화는 계속 제작되고 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영화로 넘어갔다. 오연서는 영화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침착한 말투 속에서 열의가 느껴졌다. 욕심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는 제의만 온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요. 제 가능성을 더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도둑들’ ‘범죄의 재구성’ ‘오션스 시리즈’ ‘관상’ 같은 캐릭터가 많은 작품을 좋아해요. 작은 배역이라도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추는 게 좋거든요. 최민식, 고현정, 김윤석, 송강호, 류승룡 등 많은 선배님들께서 사람 냄새 나는 연기를 보여주시잖아요. 저도 살아있는 연기로 진심을 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여행을 다녀오곤 해요. 일본, 유럽에도 가보고 싶어요. 여행 외에도 소소한 데서 행복을 찾고 싶어요. 문득 하늘을 봤을 때 하늘이 예쁘다면 그것을 즐길 수 있는 행복이요. 오그라들 수도 있지만요.(그는 정말 두 손을 오므렸다) 전 일부러 그러려고 더 노력하는 편이기도 해요. 이러다 10년 뒤에 행복전도사 하고 있는거 아닐까요?”(웃음)
오연서는 이번에도 여행을 계획 중이다. 재충전 해 더 좋은 작품과 함께 훌륭한 배우로 돌아오고 싶다는 각오다. 가족의 소중함도 강조했다.
“제가 여유가 생기면 가족들도 편해져요. 이게 행복이 아닐까요. 나로 인해 가족들이 행복해지는 것 말이죠. 꼭 톱스타가 되는 것, 톱배우가 되는 것이 행복은 아닐테죠. 물론 많은 분들의 사랑을 얻는다면 행복 그 자체죠!”
오연서는 여행 계획과 함께 승마를 배울 예정이다. 차기작 미팅도 이어가고 있다. 더 좋은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실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밝힌 그가 10년 후를 전망했다.
“10년 후에는 한 아이의 엄마가 돼 있으면 좋겠어요. 그때까지 배우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명인이 되기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만약 계속 배우를 한다면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게요.
가수로 시작해 주연배우가 되기까지 굴곡진 20대를 지내온 오연서. 옅은 미소와 함께 마지막 한마디를 더 보탰다. “사실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냥, 행복해지고 싶어요. 조금 부족해도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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