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중국 배우 탕웨이의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고생한 삶의 흔적이 얼굴에 드러난다. 31살에 결핵으로 사망한 중국 대표 여류 작가 샤오홍(1911~1942)이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영화 ‘황금시대’(감독 허안화)에서 탕웨이는 없다. 파란만장한 샤오홍의 삶은 탕웨이를 통해 온전히 스크린에 녹아났다.
1930년대 격변의 중국, 오직 글을 쓰고 싶어 했던 천재 작가 샤오홍. 10년간 100권의 작품을 쓴 그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대에도 글 쓰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또 사랑과 이별의 아픔에도 꿋꿋이 자기 생각과 경험을 담아냈다. 샤오홍의 삶은 ‘생사의 장’, 후란강 이야기’ 등 그가 내놓은 글을 통해 섬세하고 적나라하게 표현됐다.
그가 살던 시기 중국의 정치적 상황을 빼놓을 수 없지만, 영화는 샤오홍이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1932년 작가 샤오쥔(풍소봉)을 만난 건 중요한 사건이었다. 샤오쥔의 영향으로 글을 썼고, 샤오홍의 재능은 중국 대문호 루쉰도 알아봤다. 당대 지성인들과 우정을 나누며 작가로 명성을 쌓아가는 계기가 됐다. 항일과 혁명이라는 혼란 속에서 다른 이들과는 달리 샤오홍은 인간 내면의 세계와 삶을 탐구했고, 당대 최고 여류 작가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가난과 굶주림을 함께하고 고통을 나눴지만 샤오쥔과 결국 이별하는 샤오홍. 그것도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를 밴 몸이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버림받았고, 그는 다시 다른 남자가 건넨 손을 잡는다. 샤오쥔을 만나기 전에도 그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다. 글 쓰는 능력은 천재적이었어도, 사랑에는 그리 능숙하지 못했던 여자.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내 글 쓰고 사랑했다. 상대가, 혹은 시대가 샤오홍에게 가혹했다.
탕웨이는 여려 보이지만 그 모든 걸 감내한 강인한 샤오홍에 빙의됐다. 허안화 감독이 캐스팅 이유를 밝힌 것처럼 행동과 눈빛,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있었고,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색,계’나 ‘만추’의 탕웨이를 생각한다면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황금시대’의 탕웨이 역시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을 게 분명하다. 감성적으로 그와 교감하는 관객도 많을 것 같다.
‘황금시대’는 7개월간 장소 섭외 등을 했고, 5개월 동안 촬영했다. 후반 작업만 1년, 시나리오 작업에도 3년이라는 장기간 프로젝트다. 위대한 여류작가의 존재를 자랑하듯, 영화는 길다. 3시간가량의 이야기는 진폭 없이 유유히 흘러간다.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극 중간중간 샤오홍 주변의 사람들을 비추며 인터뷰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독특하다. 샤오홍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할 수 있으니 감독이 선택한 방법이다. 낯설긴 하지만 흥미로운 시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년이라는 샤오홍의 삶은 고통의 시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은 아니라고 한다. ‘황금시대’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돼 호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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