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침몰/사진=연합뉴스 |
'구명조끼를 나눠 입으며 서로를 챙겼던 친구들,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친구들…'
그토록 보고 싶던 친구들을 보름 만에 다시 만났는데 그 누구도 서로 안부의 말 한마디 나누질 못했습니다.
비 갠 맑은 하늘과 달리 검은색 바탕에 커다란 리본으로 장식된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 제2주차장 합동분향소 안에선 학생과 학부모, 자원봉사자 등의 뒤엉킨 울음소리만 새어나올 뿐이었습니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로 사랑하는 친구들을 잃은 단원고 생존학생 70명이 사고 발생 보름만인 30일 오후 처음으로 합동분향소를 찾았습니다.
그간 고려대 안산병원에 단체로 입원해있어 그 누구의 빈소도 찾지 못한 생존학생들은 퇴원을 하자마자 조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이전부터 피력해왔습니다.
생존학생 74명 중 이날 퇴원을 한 학생 70명은 교육당국에서 마련한 전세버스 6대를 나눠타고 합동분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날 끔찍했던 기억이 아직도 지워지질 않은 어린 학생들에게, 앞에 놓인 친구들 영정 사진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가혹해 보였습니다.
하얀색 셔츠, 아래는 감청색 치마와 바지 등 교복을 차려입은 이들은 한 명 한 명 하얀 국화꽃을 들고 제단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친구의 영정사진을 5분도 채 바라보지 못하고 학생들은 눈물 흘리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날 함께 했던 친구들이 이렇게 살아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듯 오열, 또 오열하고 통곡을 했습니다.
함께 온 학부모들도 영정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옆에서 심하게 흔들리는 어린 아이들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안아 위로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단원고 졸업생들도 분향소에 나와 후배들을 위로하거나 취재진들의 과도한 접근을 차단하고 후배들을 챙겨주며 한 켠에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울부짖는 단원고 생존학생들도, 그를 지켜보는 학부모와 자원봉사자도, 학생들이 조문을 끝내고 쓸쓸히 돌아갈 때까지 30여분간 가슴 깊은 곳에서
취재진 수십여명도 학생들에게 일체 질문을 삼가한 채 멀리서 조문하는 학생들 모습을 바라보며 자꾸만 젖어드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던 한 조문객 김모(46)씨는 "하루 아침에 저 많은 친구들을 잃은 어린 학생들의 충격이 어떻겠냐"라며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슬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