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억원을 받는 리피와 한 판 붙고 싶다.”
ACL 정상 정복을 꿈꾸는 최용수 FC서울 감독의 야망이다. 아직 결승 진출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괜한 호들갑 같아 조심스럽지만, 최용수 감독의 바람은 이뤄질 공산이 꽤나 크다.
FC서울은 지난 25일 홈에서 열린 에스테그랄과의 ACL 4강 1차전에서 2-0으로 완승을 거뒀다. 추가골을 더 넣지 못했다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일 정도로 완벽한 승리였다. ‘원정골’에 가산점이 붙는 대회 방식을 감안할 때, 홈에서 골을 내주지 않고 이겼다는 것은 큰 득이다. 에스테그랄의 갈레노이 감독이 “결과에 실망하진 않는다. 다만, 원정에서 골을 넣지 못했다는 것은 아쉽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엄청난 ‘돈줄’로 스쿼드를 살찌우던 광저우 에버그란데는 160억원을 주고 이탈리아대표팀을 이끌던 리피 감독을 모셔왔다. 사진= MK스포츠 DB |
FC서울이 결승에 진출한다면 K리그 클럽은 5년 연속 ACL 결승에 오르는 금자탑을 쌓게 된다. 2009년 포항을 시작으로 2010년 성남 2011년 전북 2012년 울산까지, K리그 클럽은 매년 ACL 마지막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만약 FC서울이 바통을 잇는다면, K리그는 이 대회에 유일하게 5년 연속 결승진출 클럽을 배출한 리그가 된다. K리그의 자존심까지 걸고, 서울이 뜻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그 자존심을 잘 세워줬다.
‘자존심’은 FC서울의 중요한 힘이다. 에스테그랄전에서 입증됐다. 최용수 감독은 4강 1차전을 앞두고 “우리는 이 경기를 국가대항전이라는 생각으로 임할 것이다. 대표팀이 이란에게 당한 수모를 씻어주겠다”는 각오를 전한 바 있다. 지난 6월18일, 한국대표팀은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최종전에서 0-1로 패했다. 월드컵 진출은 확정지었으나 잔칫날은 흥겨울 수 없었다. 태극기가 휘감았어야할 운동장에는 이란 국기와 이란 선수들만 있었을 뿐이다.
당시를 떠올리면서 최용수 감독과 FC서울 선수들은 전의를 불태웠고, 울산에서의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6명이나 포진된 ‘미니 이란대표팀’ 에스테그랄을 보기 좋게 쓰러뜨렸다. 속 후련했던 내용과 결과였다. 준결승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마친 뒤, 서울과 최용수 감독에게 다른 부탁을 할 참이다. 오만불손했던 마르셀로 리피 감독의 콧대를 눌러달라는 당부다.
서울이 결승에 오른다면, 상대는 중국의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될 공산이 크다. 서울이 에스테그랄을 잡던 날, 광저우는 가시와 레이솔과의 일본 원정에서 무려 4-1 대승을 거뒀다. 앞서 언급했듯 ‘원정골’의 위력을 감안했을 때 가시와가 뒤집기는 버거운 격차다. ‘아시아의 맨시티’라 불릴 정도의 엄청난 머니파워가 중국리그를 넘어 아시아까지 제패할 기세다. 투자가 결실을 맺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또 그래야한다. 허리띠 조르며 정신력만 강요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하지만, 광저우는 정도가 심하다. 흔한 말로,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모양새다.
2010년 브라질 출신의 무리끼를 데려오면서 350만 달러, 2011년 아르헨티나의 콘카를 모셔오면서 쓴 돈은 1000만 달러 그리고 지난해 말 엘케손에게는 750만 달러를 안겼다. 세 선수에게만 2100만 달러를 썼다. 우리 돈으로 약 225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쏟아 부은 것이다. 이탈리아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2006독일월드컵 정상에 올랐던 리피 감독을 데려온 것은 화룡점정이었다. 리피의 연봉은 160억원 정도로 알려진다. 리피 때문에 ‘대륙의 별’로 통했던 한국의 이장수 감독은 시즌 중 쫓겨나야했다.
최용수 감독은 리피 감독과의 대결을 고대하고 있다. 한국 축구에게 행한 결례를 갚아주겠다는 의지로 가득하다. 사진= MK스포츠 DB |
덧붙여 ‘자존심’ 이야기를 꺼낸 최용수 감독이다. 최 감독은 “광저우는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감독부터 큰 결례를 범했다. 한국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갚아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사건’은 올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저우는 ACL 조별예선에서 전북현대와 묶였고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3월12일 경기를 하루 앞두고 리피의 오만불손이 나왔다. 공식 기자회견에 특별한 이유 없이 불참했다. 관계자는 몸이 좋지 않다는 말만 전했을 뿐이다. 이튿날 열린 경기 후, 어쩔 수 없이 기자회견에 임한 리피는 “이렇게 아팠던 것은 30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사유를 밝혔으나, 영 찝찝했다. 4월30일 중국에서의 리턴매치에서도 리피 감독은 수석코치를 대신 기자회견장에 내보냈다. AFC의 징계와 벌금 ‘따위’는 내고 말겠다는 무례함이었다.
그 결례를 실력으로 사과 받겠다는 최용수 감독이다. 상대를 존중했다면 리피의 그런 행동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월드컵이나 UEFA 챔피언스리그였다 해도 리피가 쉽게 기자회견에 불참했을까 싶다. K리그 나아가 아시아 축구까지 무시한 발상이었다. 낙후된 중국 축구를 도와주러 온 ‘귀한 사람’처럼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