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추석을 맞아 야심차게 신상 예능을 대거 선보인다. 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우려먹기’ 식 기획이 대부분이라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올 추석, KBS가 내놓은 신상 파일럿 예능은 총 6개로 지상파 가운데서도 가장 많다. ‘바라던 바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스타 베이비시티 날 보러와요’ 등 남성 예능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세 프로그램 모두 친숙하다 못해 식상한 아이템들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 ‘god의 육아일기’의 흥행으로 생겨난 육아 버라이어티의 연장선으로 이미 케이블 채널에서도 다양한 아이돌 스타들이 시즌제로 출연한 바 있다.
‘날보러와요’만의 차별화 전략은 출연자가 아이돌이 아니라는 점과, 이들이 배정받은 아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지녔다는 것. 이에 따라 오락적인 요소 보다는 감동의 요소가 진하게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재나 아이디어 면에서는 역시나 식상하다.
‘다 큰 남자들의 가출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린 ‘바라던 바다’는 지난 11일 첫 방송에 이어 19일 2부가 전파를 탄다. 신현준, 이훈, 남희석, 정형돈, 정겨운, 인피니트 성규의 조합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고 정규 편성의 가능성도 높은 프로그램.
하지만 멤버들이 요트 여행을 떠나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는 다는 점에서 결국 여행 버라이어티의 틀은 벗어나진 못했다. ‘가출’이라는 단어로 색다른 무언가를 잠시 기대하게 했으나 ‘1박2일’ 혹은 ‘남자의 자격’을 떠올리게 할 뿐, 늘 해왔던 여행 버라이어티의 변형 정도 수준이다.
19일부터 21일까지 3일 연속 방송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역시 석연치 않다. 이는 육아에 소홀했던 아빠들이 48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것으로 앞서 MBC ‘일밤-아빠 어디가?’ 베끼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논란 당시 담당 PD가 “여행이나 이벤트적인 것보다는 다큐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차별화 점을 설명했지만, 전체적인 포맷과 콘셉트가 유사해 방송 이후에도 논란의 화살은 쉽게 빗겨나갈 수 없을 듯하다. 출연진은 이휘재, 추성훈, 장현성, 이현우로 구성됐다.
이 외에도 장수마을에서 어르신들과 ‘1박2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장수의 비법을 알아보는 ‘오래 살고 싶은 家 장수패밀리’, 남희석 토니안 신봉선 등 22명의 톱스타가 전세계의 놀이를 체험해 보는 ‘놀이왕’, 연예인과 스포츠스타가 닭싸움 대결을 펼친 ‘리얼스포츠 투혼’이 방송된다.
물론 매번 프로그램이 신설될 때마다 획기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아이템을 선보이기란 쉽지 않다. 많은 방송사에서 이미 대중성을 검증 받은 프로그램의 인기 요소를 모티브로 삼아 변형, 또는 응용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KBS의 이번 추석 예능의 경우, 타 방송사에 비해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앞서 ‘마마도’ 역시 ‘꽃보다 할배’ 베끼기 논란에 휩싸이며 곤혹을 치렀고 현재 새롭게 준비 중인 경찰 체험 버라이어티 역시 ‘진짜 사나이’와 유사하다며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파일럿’의 예능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실험성임에도 불구, 새로운 아이디어 발굴에 너무나도 소극적인 것이 문제다. ’아니면 말고’식의 일회성 접기가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KBS의 무성의한 기획으로 인해 내놓는 프로그램마다 논란의 중심이 되고, 이 화살은 고스란히 출연자에게 돌아간다.
이는 비단 추석특집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위기를 맞은 KBS 예능국의 실상을 반영하고 있다. 수년간 ‘남자의 자격’ ‘1박2일’ ‘개그콘서트’ 등을 통해 영광의 길을 걸어온 KBS 예능이 한순간 맥없이 무너진 것은 이같은 안일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주요 예능 프로그램이 연일 ‘폐지설’에 휩싸이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영광의 시대를 이끌어온 스타 PD들은 대거 이탈했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오던 상당수의 프로그램도 폐지 또는 폐지 위기상태에 놓인 것이 KBS 예능의 현 주소다.
KBS는 이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현 사안에 대한 진중한 재검토와 공격적인 인재 양성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위기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언제까지나 ‘노이즈 마케팅’에만 의지할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