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자꾸 숫자 놀음에 눈이 가네요.”
특급 ‘셋업맨’ 정현욱(35, LG 트윈스)은 요즘 고민이 많다. 그의 머릿속에 숫자가 떠올라 스트레스란다. 로또 번호도 아닌데 자꾸 괴롭힌다. 1, 2, 14…. 도대체 이 번호들이 뭘까.
정현욱은 지난해 FA로 삼성 라이온즈의 푸른 유니폰을 벗고 LG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LG의 정신적 지주로 마운드를 이끌었다. LG가 최강 불펜을 구축한데는 정현욱의 존재감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1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3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 경기, 5회초 1사 2, 3루에 위기에 등판한 LG 정현욱이 한화 이대수와 정범모를 연속 삼진 처리한 뒤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특히 전반기 정현욱의 활약은 눈부셨다. 2점대 평균자책점에 14홀드를 챙겼다. 홀드 부문 1위였다. 너무 잘나간 것이 문제였다. 정현욱은 전반기 막판부터 페이스가 떨어지기 시작해 잔인한 7월을 보냈다. 5경기에 나선 7월은 성적은 1패 1홀드. 한 달 동안 평균자책점은 무려 27점대로 치솟았다.
정현욱을 괴롭힌 숫자는 바로 ‘14’다. 정현욱은 “생각을 하기 싫고 안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다. 전반기에 14홀드를 기록했는데 후반기에 2홀드밖에 못했다”고 자책했다. 이어 “후반기에 잘해야 한다. 전반기에 잘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보탰다. 팀이 어려울 때 마운드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였다.
정현욱은 악몽의 7월을 이겨내고 있다. 8월 들어 다시 페이스를 되찾았다. 9경기에 등판해 홀드는 2개를 추가했지만, 평균자책점은 2.57로 끌어내렸다. 정현욱은 “요즘은 부담을 덜었다”고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숫자 ‘2’가 머리에 맴돈다.
정현욱은 1998년 첫 1군 데뷔 이후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시즌은 딱 한 번이었다. 그래서 욕심이 날 수밖에 없나 보다. 정현욱은 “전반기에 2점대를 찍었다. 숫자 놀음에 불과하지만 너무 아깝지 않나?”라고 되물으며 “후반기에 잘해서 2점대로 시즌을 끝내고 싶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사실 정현욱은 개인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다. 자신이 잘해야 팀이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개인 목표 설정을 통해 채찍을 든 것이다. LG는 선두 삼성에 1경기 뒤진 2위다. 최근 1승4패로 팀 성적도 부진했다. 하지만 포기는 없다. 정현욱도 이제 숫자 ‘1’을 바라보고 있다.
정현욱은 “투수들끼리 목표를 정했던 것이 3점대 방어율이다. 아직까지는 잘 하고 있다. 그래서 남은 시즌 내가 더 잘해야 한다”면서 “내 기록보다 팀 성적이 최우선인 것은 당연하다. 1위가 삼성이라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단, 물이 들어왔을 때 배를 띄워야한다고 지금이 기회다”라며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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