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는 “그런 식으로 배우를 판단하는 게 이상하다”며 “스포츠 선수는 한 경기가 이기고 지는 게 확실히 있지만 배우는 스포츠맨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인생과 맞물려 가는 건데 어떤 작품 하나로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 하는 건 난센스가 아닐까 한다”고 짚었다.
“물론 실패를 걱정하고 우려하는 시선은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요. 제게 관심과 기대가 있다는 것이니까요. 배우는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면 끝이거든요. 고마운 시선이긴 한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스포츠맨과는 다르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31일 개봉하는 ‘설국열차’는 전작들이 생각만큼 흥행을 하지 못한 뒤 관객을 찾은 작품이다. 새로운 빙하기, 인류 마지막 생존 지역인 열차 안에서 억압에 시달리던 꼬리칸 사람들의 멈출 수 없는 반란을 담았다. 크리스 에번스,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턴,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등이 봉준호호(號)에 탑승했다. 예단할 순 없지만 나쁘지 않은 관심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2003)과 ‘괴물’(2009)에 이어 봉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그는 ‘설국열차’에 참여하며 부담감과 긴장감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전작들의 흥행 실패가 문제는 아니었다. 외국이라는 나라에서 촬영하고, 전 세계적으로 어필을 해야 하는 다국적 글로벌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봉 감독은 앞서 인터뷰에서 “남들은 못 느낄지 모르나 송강호에게 섹시함이 있다. 이번에 드러내 보이고 싶었고, 송강호가 외국 배우들과 또 어떻게 섞이는지를 보고 싶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봉 감독은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인 와인스타인 컴퍼니의 대표도 송강호에 반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송강호는 “섹시하다고 말하는 건 봉 감독이 나를 놀리는 것”이라며 “평상시에 그런 얘기는 안 한다”고 웃었다. “배급사 대표도 연기를 보고 흡족했다는 것 정도만을 들었을 뿐”이라고 덧붙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실 송강호는 체코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봉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심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이 외국 사람이다 보니까 한국 사람이 있는 게 위안이 되잖아요. 아성이가 위안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솔직한 마음으로 남자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와 친한 배우 신하균이나 친한 다른 후배들이 같이 있었으면 술도 마시고 했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아성이 때문에 덜 심심했던 것 같긴 해요.”(웃음)
오래 연기를 한 배우지만 할리우드 시스템은 처음이다. 한국에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촬영을 미루는 등 융통성 있게 돌아가지만 외국에서는 절대 예외는 없단다.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거든요. 철두철미하죠. 하루에 원하는 분량을 딱 찍어야 해요. 제작비도 문제지만, 여러 가지 상황들이 걸리거든요. 항상 마음속으로 스탠바이(대기)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런 부분 때문에 처음에는 긴장감도, 부담감도 컸어요.”
송강호는 먹는 걸 해결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처음에는 체코 음식이 맛있었는데 1주일이 지나니 질리더라”며 “현지에서 김치도 만들어줬는데 무늬만 김치였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 좋으니 먹긴 먹었는데 촬영 후반에는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외국 시스템에도 적응됐고, ‘설국열차’가 세계 167개국에 선판매됐으니 더 많은 외국이 영화와 송강호라는 배우에게 관심을 쏟아낼 것이 분명하다. 외국에서 러브콜이 올 수 있다.
송강호는 “러브콜은 관심도 없고, 외국에서 연기할 능력도 없다”고 단칼에 잘랐다. 외국에서 몇몇 제의를 받았지만 이미 거절했다. 괜찮은 작품이나, 원하는 배역이 들어오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 영화의 성과를 요즘 인정해주고 있잖아요? 박찬욱, 이창동 감독님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감독이 포진돼 있고, 앞으로 한국영화만이 가지는 역동성이 세계영화인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렇게 전파를 할 수 있으니 꼭 외국에서 활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역으로 우리나라 작품을 통해 외국에 알리는 노력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이병헌이나 배두나처럼 직접 참여해 놀라운 성과를 이루는 것도 좋겠지만요.”
그는 “어떤 색깔을 잃어버렸다기보다는 다른 것을 선택한 것이라고 봐줬으면 한다”며 “그분들의 표현을 풀이하자면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과 비슷하길 바라는데, 그런 영화만 똑같이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봉준호, 송강호의 좋았던 점만 바라보려고만 하는 게 아쉽다. 이번 영화에서 전혀 다른 쾌감을 찾으려고 한다면 훨씬 더 진화되고 진보된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송강호는 올해 ‘변호인’과 ‘관상’으로도 관객을 찾는다. 수많은 관계자들의 러브콜을 받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느냐고 했더니 “요즘은 별로 안 찾던데”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쑥스러워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