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감독은 370만명이 관람, 흥행을 하고 있는 영화에 기분이 좋을 법도 한데 “아직 더 공부를 해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야기 깊이 등의 문제를 지적하는 시선을 수용하는 눈치다. 물론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재난 블록버스터에서 스펙터클한 영상과 볼거리를 더욱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재난 영화의 공식들을 정확하게 쫓아갔다”며 “김지훈 표 영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볼거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말마따나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 세워진 108층짜리 초고층 빌딩 ‘타워 스카이’에서 벌어진 대형 화재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목숨을 건 이야기를 담은 ‘타워’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CG)과 특수효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부분 이견이 없다.
“CG나 특수효과만 좋다고들 강조하시는데 솔직히 드라마를 만드는 것도 등한시하지 않았어요. 제목을 ‘타워링’과 비교될 수 있었는데 ‘타워’라고 한 것도 솔직해지고 싶어서였죠. 건물에서 불이 나는 등 소재 면에서 유사함이 많으니 비교될 수 있겠지만 벤치마킹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다른 점은 물론, 잘한 점도 있으니까요.”
‘타워’가 개봉한 뒤 김지훈 감독에게 별명 아닌 별명이 확실히 생겨났다. 어느 감독이 배우들을 괴롭히지 않겠느냐 만은 김 감독은 유독 심한 것 같다. ‘7광구’와 ‘코리아’(김 감독은 제작자로 참여)에서 하지원을 그토록 고생시킨 건 이미 유명하고, 아비규환 속 ‘타워’에서 손예진을 물과 불에 맞서 싸우는 인물로 그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특히 물과 맞닥뜨리는 장면에서 5~10톤을 쏟아 부었는데 손예진씨가 기절을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추운 날 촬영을 했는데 ‘당연히 배우니깐 해야지’라고 하면서도 솔직히 육체가 감당하지 못한다”며 “그럼에도 예진씨가 재미있게 촬영했다. 물놀이 한다는 긍정적 마인드였다”고 고마워했다.
하지원을 향해서는 한술 더 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손예진은 고생한 만큼 관람객 수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하지원은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흥행에서는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김 감독은 하지원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감독에게는 영화를 흥행 시킬 중요한 책무가 있죠. 영화를 대중과 소통시킬 엄청난 책임이 있는데 나로 인해 스태프와 배우 열정으로 쌓은 공든 탐이 무너지면 미안한 마음이에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요. ‘7광구’ 때는 그런 마음이 컸는데 오히려 지원씨는 절 격려하고 다독여주더라고요.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웠죠. 생각 깊고 배려 가득한 사람을 만나 제가 많이 힐링이 된 것 같아요.”(웃음)
김 감독은 이어 “지원씨는 촬영할 때 갈비뼈가 2~3번인가 나간 적이 있는데…”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지원씨나 예진씨도 처음부터 그 고생을 시키려고 각오한 건 아닌데 본의 아니게 결과가 그렇게 됐다”고 겸연쩍어했다.
“그래도 배우들이 현장에 오면 어떤 열정 같은 게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촬영을 연기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스태프가 기다리고 있으니 찍자고 하더라고요. 배우들이 연기만 잘하면 된다지만 한국에서는 도덕적인 행동이나 생각도 강조되잖아요? 인간적인 향기가 나는 게 더 좋은 건 확실하죠.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는 분들과 같이 작업해서 좋았어요.”
그는 “작품들은 운명처럼 오더라. ‘화려한 시절’, ‘7광구’, ‘타워’ 모두 그랬다”며 “악착같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또 확실해진 건 예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을 모르고 하고 싶은 것만 한 것 같은데, 잘하는 게 뭔지도 찾는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덧붙였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영화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