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파사트(Passat)는 지난 1973년 첫 출시 이후 전세계적으로 1500만대 이상 판매된 폭스바겐의 중형 베스트셀러다. 새로운 모델을 발표할 때마다 꾸준한 인기를 얻어, 평균을 내보면 세계 시장에서 1시간에 40대 넘게 팔리는 차다.
이번에 국내에 출시된 파사트는 7세대 미국형 모델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편의사양은 미국 시장에 맞게 제외됐지만 주행성능은 여전히 독일 스타일을 간직하고 있다.
부드러운 디젤 엔진, 똑똑한 변속기, 광활한 뒷좌석 및 트렁크 공간을 겸비한 4천만원대 독일 중형차 폭스바겐 신형 파사트를 시승했다.
◆ 간결하고 질리지 않을 디자인, ‘정통 세단’이 추구하는 美
신형 파사트의 외관 디자인은 한층 젊어졌다. 수평 라인을 강조한 폭스바겐 패밀리룩이 적용돼 남성적인 느낌도 강조됐다. 차체를 아우르는 선은 여전히 간결하다.
앞모습은 이전 모델에 비해 공격적 성향이 강해졌지만 옆모습에서는 이전 모델의 아우라가 남아있다. 마치 아우디 세단에서 느껴지는 ‘단순함의 미학’이 파사트에도 배어 있는 듯 하다. 테일램프의 디자인도 더욱 단순화돼 세련됨을 내세웠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다. ‘정통’ 혹은 ‘표준’이라고 느껴진다.
유럽 파사트와 미국 파사트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밖에도 국내 출시되는 파사트는 유럽 파사트와 그릴, C필러, 테일램프 등 디자인이 조금씩 다르다.
◆ 실내 디자인, "보편과 상투는 종이 한 장 차이"
폭스바겐의 실내 디자인은 페이톤, 투아렉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슷하다. 멋보다 기능적 측면이 더 강조됐다. 버튼들은 딱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조작 방법도 간단하다. 별다른 첨단 시스템은 없지만, 운전에 방해를 주지 않고 직관적이어서 오조작 할 일도 없어 보인다. 기본에 충실한 모습은 실내 디자인의 표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라인업은 매우 다양한데 각각의 변별력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또 모델별로 우드그레인이나 알루미늄 트림 등을 사용하지만 차별성이 크지 않다. 상투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신형 파사트는 프리미엄을 내건 중형 세단이지만 실내에서 고급스러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이전 모델이 더 세련돼 보이기까지 한다.
또 페이톤처럼 우드그레인을 실내 곳곳에 사용했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리고자 한 것인데 최근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는 주로 나뭇결이 살아있는 원목 느낌을 내거나 짙은 색으로 단순화 시키는 경향이다. 이에 비해 신형 파사트는 여전히 구시대의 우드그레인을 보는 듯 하다. 유럽 감성보다 미국인을 위한 색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 광활한 실내공간, 너무 넓어 휑한 느낌마저
파사트는 기본적인 세단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좌석의 머리공간이 넉넉하고 타고 내리기 수월하다. 어깨공간의 부족함도 없다.
신형 파사트의 휠베이스(2803mm)는 현대차 쏘나타(2795mm)보단 길고 그랜저(2845mm)보단 짧다. 하지만 수치가 숫자에 불과하다. 실내는 그랜저보다 넓게 느껴진다. 앞좌석 의자를 뒤로 충분히 밀어도 뒷좌석에는 별다른 불편을 주지 않는다. 성인남성이 뒷좌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을만 하다.
뒷좌석 시트는 엉덩이가 깊게 파여 있고 등받이가 조금 기울어져 있어 시트에 몸이 착 달라붙는다. 하지만 시트 방석이 기울어졌으니 다리가 짧은 승객이라면 발이 공중에 떠서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전륜구동 차량인데도 불구하고 센터 터널이 높게 올라와 있어 가운데 앉기는 불편해 보인다.
뒷좌석 공간은 넓지만 편의사양은 많지 않다. 흔히 기대하는 시트 열선을 물론, 에어컨/히터 송풍구나 햇빛가리개 등은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연식변경 모델을 통해 이같은 편의사양을 추가할 예정이다.
◆ 미국에서 생산되지만 주행성능은 여전히 독일차
국내에 출시되는 신형 파사트가 비록 미국형이긴 하지만, 주행 감각은 철저히 독일 감성을 따랐다. 특히 핸들 조작감은 현대차 그랜저나 도요타 캠리 등 경쟁차종보다 훨씬 뛰어나다.
신형 파사트에 장착되는 2.0리터 TDI 엔진은 골프나 제타에 사용되는 엔진과 같다. 최고출력은 140마력, 최대토크는 32.6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최고출력이 다소 낮게 느껴지긴 하지만 폭스바겐 기술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DSG 자동변속기가 물샐틈없이 엔진의 부족함을 채워준다.
변속은 매우 매끄럽게 이어지면서도 과감하다. D모드에서는 빠르게 단수를 높여 부드러운 주행과 함께 연료효율을 극대화시킨다. S모드로 변경하면 엔진회전수가 올라가면서 변속기가 스스로 시프트다운을 하거나 변속시점을 최대한 늦춰 다이내믹한 주행을 가능하게 한다.
탄탄한 하체와 골격은 우수한 핸들링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다. 특히 신형 파사트는 각각의 차체를 용접할 때 모든 면에 빈틈없이 박음질 하듯 레이저 용접을 해서 차체 강성을 극대화시켰다.
고속으로 코너를 진입해도 궤적을 잃지 않는다. 전륜구동이지만 언더스티어를 쉽게 발생시키기 어렵다. 억지로 방향을 전환하면 타이어는 비명을 지르지만 차체 거동은 침착하다.
서스펜션은 어느 순간에도 차체를 잘 받쳐준다. 고속으로 주행을 하다 요철을 통과해도 단번에 충격을 상쇄시킨다. 깔끔하다. 그렇다고 서스펜션이 너무 단단해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 볼처럼 탄력적이다. 코너에서도 최대한 수평을 유지한다. DSG 6단 자동변속기 또한 탁월하고 직결감이 우수한 가속을 보여준다.
하지만 역시 140마력의 최고출력은 '스포츠'를 논하기는 부족해 보인다. 스포츠주행을 한다 해도 공격적이지 않다. 가속이 꾸준하긴 하지만 폭발적이지 않다. 탁월한 서스펜션과 핸들링을 가졌지만, 급가속에서는 경쟁모델에서 다소 뒤지는셈. 일반 소비자들이 느끼기에는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경쟁차종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 편의사양 빠져도 본질이 바뀌진 않는다
최근 폭스바겐이 내놓은 차들에는 의례 스타트앤스톱, 전자식 파킹브레이크, 오토홀드, 자동주차보조시스템, HID 헤드램프, LED 주간주행등 같은 편의사양들이 장착돼 왔다. 그러나 신형 파사트에는 이런게 장착되지 않았다.
기존에 폭스바겐 차종들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옵션을 더해왔다면 이번 파사트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만 갖춘 무난한 준대형차로 보는게 맞겠다.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는 도요타 캠리도 마찬가지로 이런 편의사양이 일체 장착되지 않는다.
신형 파사트는 초기 구매시 흥미를 끄는 화려한 꾸밈 요소를 과감히 제외시키고 자동차 본연의 가치를 추구한 차다. 이로서 달리기 성능이 향상되고 공간이 넓어졌으며 연비 또한 향상됐지만 가격은 오히려 480만원 저렴해진 것이다.
쓰지도 않을 기능을 장착해 가격을 올리는 것보다 이같이 실리를 챙기는게 바람직 하다는 미국식 실용적 판단에서다. 눈이 높아진 한국 소비자들이 자동차 본연의 가치를 중시할 것인지 화려한 옵션을 추구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김상영 기자 /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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