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정은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10년 가까운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난 2007년 귀국해 솔로 및 세션 연주자로 두각을 나타내왔다. 비밥부터 퓨전재즈, 블루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어법을 구사할 줄 아는 국내 세션계의 내로라하는 실력파다.
귀국 후 국내 재즈 신을 거점을 활동해왔으며 재즈 앨범을 발표하기도 한 그이지만 지난 2월 발표한 앨범 ‘굿바이 매캐든’은 좀 특별하다. 평소 공공연히 밝혀 온 블루스 앨범에 대한 숙원의 결정체이기 때문.
“미국에서 정식으로 재즈를 공부했죠. 어려서부터 블루스를 좋아했지만 재즈 쪽으로 활동하다 보니 마음 속에는 늘 블루스에 대한 아련함이 있었어요. 블루스는 내면의 감성, 소울을 표현하는 데 있어선 단연 어떤 음악 장르보다 뛰어나죠. 제가 매력을 느낀 부분도 그거고요. 언젠가 블루스 음악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연주자로서 음반을 내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더군다나 아직 국내에선 마니아 음악으로 분류되는 블루스 장르 앨범이라니. 하지만 찰리 정은 묵묵히 계획을 세워 추진해왔다.
“초반부터 블루스 앨범을 내야겠단 생각은 했지만, 결정적으로 앨범 계획을 구체화하게 된 건 2009년 말레이시아와 태국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면서였죠.” 당시 페스티벌에서 찰리 정은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이후 그는 주위에 음반 계획을 공언해왔다. “주위에 얘기하면 할 수 밖에 없으니까”라는 농 섞인 진중함이 돌아왔다.
“녹음 당일은 마치 무슨 경기에 나가는 것 같은, 긴장감과 강박감이 들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는 그의 첫 블루스 앨범은 데뷔 앨범 최초로 리얼타임 원테이크로 진행됐다. 연주가 개개인의 연륜은 기본, 오랜 준비와 호흡이 완성해 낸 완성도 높은 블루스 음반의 탄생이었다.
슬로우 넘버인 ‘When Did You Leave Heaven’, ‘Thousand Red Island’, 경쾌한 컨템퍼러리 곡 ‘Olympic Fire’, ‘Khaosan Road’, 블루스 스탠더드를 보여주는 ‘Key To The Highway’ 등 다양한 느낌의 수록곡들 가운데서도 찰리 정의 연주는 빛을 발한다.
타이틀곡 ‘Goodbye McCadden(굿바이 매캐든)’은 가장 마지막에 만든 곡이다. “매캐든은 LA에서 오랫동안 지냈던 장소, 거리 이름이죠. ‘굿바이 매캐든’이라는 제목은, 어린 시절 공부하고 했던 추억들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이젠 뮤지션으로서 아시아에서 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새로운 시작에 의미를 뒀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가장 애틋하게 다가오는 곡은 ‘카오산 로드’다. “특별한 느낌을 받았어요. 굉장히 자유로운 느낌이었죠. 통기타를 들고 연주를 하면 배낭여행 온 외국 대학생들이 따라다니기도 했죠. (웃음) 까오산거리에 있는 높은 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이 참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런 느낌을 표현해봤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독학으로 기타를 배운 찰리 정은 현존하는 기타의 신으로 불리는 에릭 클랩튼의 블루스 음반을 들으며 연주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고교시절엔 밴드로, 대학교 시절엔 그룹사운드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블루스의 매력에 심취했다.
본격적으로 블루스 음악을 접한 건 1999년 군 제대 후. 미국으로 음악 유학을 떠나면서부터다. “처음엔 막연한 심정에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기타를 배우고자 서울에 왔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미국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착하게 됐죠.”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트리오로 미주 지역 투어를 했고, LA 흑인재즈클럽 호스트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흑인 R&B 그룹 Val Diamond Band의 일월으로 100회의 공연을 한 것을 비롯해 라이브, 레코드 세션으로 활발한 현지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미국에 정착해 지낼 때만 해도 귀국할 계획이 없었다는 찰리 정은 개인 사정상 귀국을 결심, 한국에서 열심히 활동하리라는 다짐을 굳혔다. 귀국 후 함께 한 뮤지션들로부터 “광기가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독창적인 연주 세계를 지닌 그다.
“천재적이라거나 특출나다까진 아니지만, 연주할 때 몰두하는 편이에요. 단순하달까요. 제가 하는 일 밖에 모르고, 그렇다 보니 표현하는 데 있어서 순수한 것 같습니다.”
찰리 정이 연주에 심취해 격한 표정이나 제스처가 나오는 순간은 팬들 사이에 종종 화제가 되곤 한다. “연주할 때 격해질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의 제 소울은 감수성 어린 소년 같은 그런 느낌이죠. 무대에서 에너지를 많이 내는 편이에요.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시겠지만 그저 제 감정을 표현할 따름입니다.”
“다양한 음악을 듣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다양한 음악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많지 않습니까. 어릴 때부터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모티브로 삼아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막연히 좋아서 손에 잡은 기타를 지금까지도 놓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그 때 그 열정 이상으로 기타를,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좋아서 열심히 하는 사람을 그 누가 막을 수, 이길 수 있으랴. 공연장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는 찰리 정의 무대는 26일 서울 홍대 클럽 에반스에서 볼 수 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포니캐년코리아]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