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교수는 최근 서울대 강연을 시작으로 광주와 대구를 찾아 특유의 강연 정치를 펼쳤습니다.
선거가 코 앞인지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발언을 해 줄 것을 내심 기대했지만, 안 교수의 강연은 여야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먼저 지난 27일 서울대 강연에서 한 말부터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안철수 /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3월27일 서울대 강연)
- "만약 정치에 참여한다면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공동체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쪽으로 하지, 진영 논리에 휩싸여 공동체의 가치를 저버리는 판단은 지금까지 해온 행보와 안 맞는 것이다."
'특정 진영 논리에 휩싸여 공동체의 가치를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
지금 정치권이 특유의 패거리나 지역으로 묶여 서로 싸우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 편을 들어 국민 전체의 이익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지금 여야 모두에게 안 교수는 분명히 등을 돌리는 셈일까요?
지난 3일 전남대 강연에서는 안 교수의 이런 생각이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번 총선에서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 안 교수가 제시한 일종의 투표 지침을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안철수 /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4월3일 전남대 강연)
- "첫 번째는 진영논리에 빠져서 정파적 이익에 급급한 정치 안 하는 사람들, 국민과 국익을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그분 뽑는 게 맞아. 두 번째는 과거 얘기보다 미래 얘기하는 분 있으면 적임자. 세 번째는 단순하게 진노/대립/분노 얘기하는 것보다 온건하고 따뜻한 분들. 말이라는 게 인격을 드러내는데 인격이 성숙한 사람 뽑으면 좋을 것 같다."
'정파적 이익에 급급한 정치를 하지 않는 후보, 과거보다는 미래를 얘기하는 후보, 대립을 얘기하지 않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
지금 여러분 주변에는 안철수 교수가 말한 이런 후보가 있습니까?
주변에 출마한 후보들이 모두 특정 진영과 정파에 기대고,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대립과 분노에 젖어 있지는 않은가요?
어쩌면 안 교수가 말한 이런 후보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정치 평론가는 농담삼아 안 교수의 이런 지침에 맞는 사람은 안 교수 자신뿐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안 교수의 얘기는 곧 현 정치권에 미래를 기대할 수 없고,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후보들에게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고 뜻이라고 하면 무리한 해석일까요?
안 교수는 젊은 사람들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며 꼭 투표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안 교수 지침에 맞는 후보가 없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투표를 포기해야 할까요?
안철수 교수의 이런 탈이념, 탈진영의 정치는 그래서 어쩌면 처음부터 자기모순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는 안 교수가 '세력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고 찍어라'는 발언이 의도와 무관하게 새누리당을 돕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새누리당이 과거를 보지 말고 인물론과 함께 미래로 갑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안 교수가 발언이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야권의 정권 심판론을 희석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한발 더 나아가 안철수 교수는 자신보다 더 새누리당스러운 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새누리당 사람이 아니라고 밀어내지 말고 새누리당과 함께 좋은 나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며 영입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쯤 되면 안 교수는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 하는 걸까요?
안 교수의 모호한 화법과 강연정치에 대한 비판이 있다면, 이를 옹호하는 변론도 있습니다.
아직도 안 교수를 잘 모른다는 겁니다.
안 교수는 정치 참여나 대권 도전에 대한 의사를 묻는 말에 한결같은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서울대 교수(4월4일 경북대 강연)
- "몇 개월 사이에 제가 50년 살아왔던 게 전부 바뀌겠어요? (대선 출마는) 제가 선택하는 게 아니고 저한테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없습니다."
사회 발전에 자신이 도움된다면 정치 참여를 고려해보겠지만, 자신이 의도적으로 권력을 잡고자 정치에 참여하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또 지금의 정치권이 정파나 특정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공동체 이익을 지향한다면 굳이 자신이 정치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위한 정치, 권력을 위한 권력은 아예 관심 밖이라는 안 교수의 주장은 일면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평론가들은 안 교수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의 정치권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을 충분히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총선에 앞서 신당을 창당했거나 특정 진영을 지지했다면 선거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놓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안 교수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권력을 스스로 멀리해 왔던 셈입니다.
안 교수는 경북대 강연에서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 게임인 '앵그리버드'를 예로 들어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안철수 / 서울대 교수(4월4일 경북대 강연)
- "앵그리버드는 새를 던져 돼지들이 쌓은 성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새들이 평화롭게 착하게 사는데 돼지들이 알을 먹어치우고 성채로 사라진다. 착하고 순한 새들이 자기 몸을 던져서 그 성채를 깨는 게 앵그리버드다. 앵그리버드에서 새알을 훔쳐 먹는 돼지는 기득권을 의미한다"
새알을 훔쳐 먹는 돼지를 기득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쁜 돼지를 향해, 아니 나쁜 지금의 기득권을 향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새는 과연 누구일까요?
안 교수의 말은 지금의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 시민 하나하나가 저항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시민이 곧 새인 셈입니다.
그런데 혹시 안 교수 자신도 기득권이 쌓아 놓은 성벽을 무너뜨리고자 몸을 날리는 새가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안 교수는 무너진 성벽 위에서 평화로운 새들의 세상이 왔을 때 새들의 왕이 되기보다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놓고 조용히 사라지는 운명일까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50%의 지지율을 가진 자신이 5%의 지지율을 가진 박원순 후보에게 시장 후보직을 양보하고 조용히 사라졌듯 말입니다.
대권이 목표가 아니라 사회의 긍정적 발전이 목표라는 안 교수의 말이 진심이라면 이런 예측이 영 엉터리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알 듯 모를 듯한 총선 정국만큼이나 안철수 교수의 미래 역시 알 듯 모를 듯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ho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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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