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김근태 상임고문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꼽힙니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맨 앞자리에 섰던 김 고문의 일대기를 김명준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기자 】
김근태 상임 고문은 1965년 대학 입학과 동시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독재에 맞서 학생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1974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배돼 피신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983년엔 첫 공개적인 민주화 운동 조직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해 초대 의장을 맡았습니다.
민청련이 이적단체로 분류되자 안기부에 끌려가 살인적인 고문을 받았습니다.
김 고문은 당시 경험을 "스스로 죽고 싶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잡고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로 정치권에 뛰어들었습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서울 도봉갑에 출마해 17대 총선까지 내리 3선 배지를 달았고,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했습니다.
당이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스스로 '독배'를 들겠다며 의장직을 맡았습니다.
▶ 인터뷰 : 김근태 /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06년 6월)
- "말을 먼저 앞세우기보다는 국민의 말씀을 잘 듣도록 하겠습니다. 사즉생의 각오로 하겠습니다."
부드러운 성품이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계급장을 떼고 논쟁하자'고 할 만큼 소신도 강했습니다.
김 고문은 몇 달 전만 해도 진보 진영의 대연합을 통해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인터뷰 : 김근태 / 민주통합당 상임고문('11년 6월)
- "정치적 열정이 모아져야 민심의 대폭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범야권과 한나라당의 일대일 구도를 이뤄야 합니다."
평생을 민주화에 헌신한 김 고문은 결국 고문의 후유증으로 얻은 병마와 싸우다, 맑고 곧았던 삶을 마감했습니다.
MBN뉴스 김명준입니다. [ blowdry@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