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기 좋은 날’, ‘로맨틱 아일랜드’, ‘오이시맨’ 등 다양한 컬러의 작품을 거친 그는 1천만 관객몰이를 하며 흥행한 ‘해운대’에 이어 ‘10억’, ‘퀵’ 등 씬 스릴러에 쉼 없이 뛰어들었다. 매 작품마다 인상적인 연기로 남자 배우 기근에 빠진 충무로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최근작 ‘오싹한 연애’ 역시 단순한 로맨틱코미디가 아닌, 호러가 가미된 로맨스물이라는 점에서 범상치 않다. 시나리오가 좋아서 선택했다는 그의 ‘촉’은 여지없이 맞아 떨어졌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귀신 얘기를 들으면 집에 가서 샤워하기도 무섭다”던 이민기였고, 그간 로코 장르는 “끌리지 않아서 안 했다”던 그였지만 “뻔하지 않아 신선했다”는 ‘오싹한 연애’는 달랐다.
올 겨울 최고 로맨틱코미디 기대작으로 꼽혀왔던 ‘오싹한 연애’는 기대작 수준을 넘어서 대박 로코 반열에 올랐다. 개봉 3주차까지 흥행 기세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200만 관객몰이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비실한(?) 이민기에게 의외로 잘 되면 호러 킹이 되는 수가 있겠다 농을 건네자 “어마어마한 작품이라면 해야죠”라고 싱긋 웃는다. ‘오싹한 연애’를 선택한 것과 같은 맥락이란다.
‘오싹한 연애’에서 여리(손예진 분)와 조구(이민기 분) 사이 연애의 장애가 되는 요인은 바로 귀신이다. 귀신의 반대(?)로 인해 자칫 헤어질 위기에까지 놓였지만 비실한 깡도, 몸서리쳐지는 외로움도 진심 앞에선 이유가 되지 않았다.
학창시절 모델이 되겠다 결심했을 때도 고교 담임 선생님은 평범한 길을 가라며 만류했지만 이민기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모델 일을 해서 먹고 살겠냐고 말씀하셨지만, 다른 거 하면 제가 먹고 살겠어요. 공부는 하는 사람만 하면 되는 거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말씀드렸더니 이해해주셨죠.”
그렇게 모델로 활동하던 이민기는 연기자라는 또 하나의 평생이 될 업을 택했다. 단역, 조연을 지나 어느 새 충무로가 군침 흘리는 주연 배우가 됐다. 거친 듯 반항적인 듯 하면서도 평범하고 때론 귀여운 이미지로 여심을 홀리는 그는, 어떻게 충무로의 사랑을 받는 배우가 됐을까.
“음... 그런 생각이 들어요.뭔가 빈틈이 있어보이고 허술해보이는, 그래서 쟤는 원래 그런 것 같은 느낌을 장점으로 봐주시는 것 같다 할까요. 그 바탕에 있는 제 마인드가 그랬거든요. 어느 정도 진짜가 아니면 안 돼 라는 게 있었고. 느껴지는 게 아니면 안 돼. 발성을 일부러 만들어서, 일부러 멋진 표정 하고. 그런 게 아니고, 삑사리가 나더라도 감정적으로 해야 하고. 기본 틀이 느껴지는 것 만큼 보여주자는 마음이 장점이 된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론 그걸 단점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분명 계시거든요. 쟤는 왜 연기 잘 못 하는 거 같은데 왜 계속 캐스팅 되지? 이런 분들도 계시니까. 그런 점에서 계속 생각을 넓혀가고 있는데, ‘해운대’ 이후 장르적인 영화를 해보면서, 어느 정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바운더리는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영화가 필요로 하는 그 역할의 연기. 이 영화에서 이 캐릭터로 보여줘야 할 모습. 내 고집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씩 변해가는 거죠.”
그의 답변은 솔직했고, 분석적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명쾌했다.
“연기 할 때는 매번 그런 거 같아요. 아무래도 상대방의 장점을 보게 되니까요. 어렸을 땐 ‘고백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주위에서 ‘작품 끝나고 다시 봐 봐라’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게 맞는 거구나 싶었어요. 매 작품을 할 땐 상대 배우와 호흡이 잘 맞아 좋지만, 역할로서 좋은 것과 여자로서 괜찮다는 건 다른 부분이죠.”
인기가 많아질수록 ‘군중 속의 고독’을 실감하게 되지 않느냐 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이민기. 하지만 “지금은 일이 먼저다 보니 내 마음도 어중간한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지금 나만으로도 힘든데, 누군가를 만나 더 힘들어지는 것보단 지금이 좋아요. 같은 일 하는 사람은 안 만나야지 하는 소신도 있고요. 이러다 결혼 못 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웃음), 사람은 늘 변하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손예진과의 호흡에 대해 묻자 굉장한 답변이 돌아왔다. “손예진 선배를 만나서 느낀 것도, 옆에서 본 것도 많은데요. 좀 더 넓은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 있겠구나, 내가 확고하게 믿었던 신념이, 신념이 아닌 감옥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도 그럴 것이 손예진은 예쁘고 연기 잘 하기만 하는게 아닌, 어느새 데뷔 10년도 넘은 영민한 배우였다.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많지만, 저마다의 장점이나 장기가 다 다르단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몫을 제대로 해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서 할 수 있는 걸 잘 찾아가는게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물론 그것만 하면 갇혀버리니까, 여기저기 왔다갔다 잘 해야 하는 것 같고요.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 같아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팽현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