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슬은 지난 14일 KBS 2TV ‘스파이 명월’ 담당 PD 교체를 요구하며 촬영장을 무단이탈, 15일까지 복귀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한 한예슬은 16일 새벽 2시께(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 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예슬은 현지 인터뷰에서 “드라마 제작 환경이 너무 힘들었다”며 “모든 걸 내려놨다”고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타이틀롤 여주인공이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 무단이탈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로 방송사와 제작사는 “어처구니없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른바 ‘한예슬 사태’ 3일째인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스파이명월’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강현 CP는 쪽대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 촬영현장 대기 시간이 길어진 이유의 중심에 한예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CP는 “1회차 방송 후 4일째부터 무단이탈, 촬영거부, 수정요구가 잦아졌다. 이를 수용하거나 조정하느라 대기 시간이 길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준비 소홀이나 연출 미비로 인한 지연은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정성효 CP는 “한예슬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촬영 일정을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요즘 같은 제작 환경에서 주인공의 주5일 요구를 들어주기란 물리적으로 쉽지 않았다. 부당한 요구라도 배려하고 끝까지 끌고 가려 했던 것이 우리 입장이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제작진의 회유와 배려에도 불구하고 한예슬은 14일 촬영장을 무단이탈한 뒤 끝내 현장에 복귀하지 않았다. 결국 ‘스파이명월’ 11회가 불방됐고, 그 사이 한예슬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가족이 있는 LA로 떠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와 관련, 고영탁 드라마국장은 “이번 일은 그 누구도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방송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중대한 사태라고 판단하고 있다. KBS는 이런 사태를 야기한 한예슬씨의 행동은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행위이며,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국장은 “KBS는 여주인공의 무책임한 처신으로 빚어진 ‘스파이명월’의 제작 파행을 최소화하고 끝까지 제작을 진행하고 드라마 방영을 완료해 시청자들과 약속을 지키겠다”며 “여주인공을 새로 교체 캐스팅해, 대체 배역이라는 비상수단을 강구해서라도 시청자와의 엄중한 약속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제작사 이김프로덕션은 보다 강경한 입장이다. 제작사는 “현장에서 한예슬이 본인 위주로 대본 수정을 요청하고 스케줄 변경을 요구하거나 촬영장에 지각하는 경우에도 최대한 한예슬의 입장을 배려해 다독이며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통해 현장 촬영이 원만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음에도 불구, 한예슬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중임에도 촬영을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잠적함으로써 정상적인 드라마 촬영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제작사는 유, 무형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됐다”며 민형사상 고소 등 법적 대응 의지를 시사했다.
제작사와 함께 소속사 싸이더스 역시 드라마 뿐 아니라 그간 진행해 온 영화, CF 등 다수의 활동에 걸린 이미지 실추 문제까지 포함, 100억대 이상 규모의 손해배상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이 큰 몫을 했지만 한예슬의 독단적인 행동이 결정적이었다. 드라마 주인공으로서 시청자와의 약속을 저버린 데 대한 책임론이 동정론보다 거센 상태다. 특히 열악한 제작 환경에 본인이 총대를 맨 듯 한 뉘앙스의 발언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이를 응원하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원로급임에도 왕성한 연기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이순재는 같은 날 열린 MBC 새 주말드라마 ‘천 번의 입맞춤’ 제작발표회에서 한예슬에게 “하루 빨리 현장에 복귀해 사과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순재는 한예슬 사태에 대해 “우리의 행위는 제작자와 배우의 관계가 아니라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어떤 이유가 있었던지 현장을 떠날 수가 없다. 시청자와의 약속이 최우선”이라며 “이번 일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빨리 돌아와서 본인이 사과하고 드라마에 다시 참여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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