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0 후속대책 ◆
지난 11일 서울 반포역 인근 A아파트. 전용면적 84㎡ 전세 매물을 보겠다는 매수자 6개 팀이 한꺼번에 몰렸다. 가족당 2~3명에 각각 공인중개사까지 포함돼 20명에 가까운 인원이 한꺼번에 이동하다 보니 엘리베이터도 두 차례에 걸쳐 나눠 타고 올라가 집을 둘러봤다. 이미 예고된 임대차3법(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에 7·10 부동산대책이 임대료를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전·월세 매물이 자취를 감췄고, 이런 이유 때문에 급해진 수요자들이 주말에 대거 몰린 것이다.
해당 매물을 둘러본 유동근 씨(34·가명)는 "종합부동산세 인상분이 결국 전·월세로 전가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전·월세 인상 전에 빨리 계약부터 하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서초구 인근 다른 아파트단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전세 계약을 찾는 사람이 몰리면서 주말 저녁 늦게까지 북적거린 중개업소가 많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임대차3법 소급 적용을 시사하면서 전·월세 가격이 폭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급 적용 이전에 전셋값을 높이려는 집주인과 전세 매물이 없어지면 전셋값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 임차인이 서로 맞물리면서 전·월세 신고가를 기록한 단지가 늘고 있다.
12일 국토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7㎡는 6·17 부동산대책 이후 전셋값이 6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4억5000만원에 불과하던 전셋값이 1억5000만원가량 뛴 것이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최근 6억원 이상 매물만 나오고 있다"며 "이마저도 매물이 부족해 집주인이 부르는 대로 계약이 체결되는 것이 대다수"라고 상황을 전했다. 대치동 래미안팰리스 전용 85㎡ 전세는 16억원,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용 85㎡ 전세 역시 최근 10억원을 찍으며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강남뿐만 아니라 강북도 전셋값이 상승하는 추세다. 강북 대장주 중 하나인 경희궁자이 전용 85㎡ 전세는 6·17 대책 이후 9억5000만원에 계약이 체결됐다.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2억원가량 뛴 것이다.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5㎡ 전세도 8억원 초반대로 1년 새 1억원 넘게 상승했다.
핵심 입지 전세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이 임대차3법을 예고하고 한술 더 떠 '소급 적용' 가능성까지 내비치면서 부동산 현장은 극도의 혼란을 빚고 있다. 가령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은 현재 2년인 전세 계약 기간을 없애 '무기한 전세'가 가능하도록 하고, 계약 갱신 시 이전 보증금의 5% 이내에서 증액할 수 있도록 상한선을 뒀다. 부동산 카페에선 '무기한 전세를 주면 임차인이 사실상 소유주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안(4년 계약·연 5% 이내 보증금 인상률 제한) 역시 논란이 많다. 시세 대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전세를 내줬던 임대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5% 이내에서만 보증금을 인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임대인은 "세입자가 힘들다고 통사정해서 마음이 약해져 처음부터 저렴하게 임대를 줬다"며 "시세로 보면 2억~3억원 더 인상해야 하는데 제한이 걸리면 어떻게 하냐. 이는 명백한 재산권 침해"라고 하소연했다.
계약갱신청구권 소급 적용도 논란이다. 2년 전세 계약 만료 후 6개월 이상 집을 비워둔 뒤 입주하려고 했지만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청구하면 내 집에 못 들어가는 일이 생긴다. 정부와 여당이 '실거주 목적'이면 계약 갱신이 없다고 못 박았지만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소급 적용하면 단기적으로 전세가를 잡는 효과가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임대 물량이 감소하면서 오히려 전·월세 가격만 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현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