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전세만기를 앞두고 있는 이종훈 씨(35·가명) 부부는 지난주 문래동 인근 전용 59㎡ 아파트를 6억원 중반에 구매했다. 둘이 합쳐 연소득 8000만원 가량인 이 부부는 각자의 명의로 신용대출을 받고 그동안 모아둔 돈과 양가 부모님의 도움, 주택담보대출 등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해 자금을 마련했다. 이씨는 "현재 살고 있는 전세는 또 다른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복덕방에 내놨다. 만일 안되더라도 7월 이전에 계약을 한 것이기 때문에 6개월 내 전입의무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 정책으로 계속 집 값이 오르는 탓에 불안해서 이번 매수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근 집 값 상승의 공포를 온몸으로 체감한 30대가 서울 아파트의 '큰 손'이 되고 있다. 이른바 '패닉 바잉(Panic Buying·공포에 기인한 사재기)' 현상이다. 정부가 21번이나 정책을 내놨는데도 서울 집 값이 급등하자 '지금 집을 못 사면 영영 외곽으로 밀려난다'는 공포가 30대들의 집 구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30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30대의 서울 아파트 구매 건수는 1만1414건으로 전체 건수의 30.7%를 차지했다. 이는 40대(27.3%)보다도 3% 이상 많은 수치다. 지난해 30대가 28.8%로 2위인 40대(28.7%)를 근소한 차이로 앞선 것과 비교하면, 올해 1~5월엔 격차를 더 벌린 것이다.
특히 지난 6·17 대책 이후 서울 집 값이 더 오를 조짐이 보이면서 더 조급해진 30대들의 아파트 매매가 시작되고 있다. 서울 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6월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6513건으로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월별 기준으로 두 번째로 높다. 이마저도 아직 신고가 덜 된 건이 많아서(신고는 30일 이내에 해야 함) 미신고분까지 합치면 12·16 이후 가장 거래량이 많았던 지난 2월 수치(8266건)를 넘을 수도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서울 아파트 큰 손인 30대로 추정된다.
지난 주말 강서구 염창동쪽 5억원대 아파트 임장을 갔던 신혼부부 김현종 씨(33·가명)는 "워낙 매수자들이 몰리는 탓에 똑같은 아파트 매물을 다른 신혼부부 커플과 같이 보러 갔다"며 "토요일인데도 중개업소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 문의를 하는 것을 보고 집 주인이 호가를 절대 안깎겠구나 생각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에 부모님에게 2억원 가량 도움을 받아 동대문구 이문동 소재 5억원대 아파트를 구매한 미혼 장모씨(32) 역시 "부모님 도움과 신용대출, 그리고 퇴직연금을 답보로 한 대출까지 영끌해서 집을 샀다"며 "도저히 적금을 부어도 집 값 따라잡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아 구매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30대들 사이에선 부동산카페 등에서 '4년 전이었으면 훨씬 더 좋은 입지를 갔을텐데 문재인 정부 때문에 이 수준에 만족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진입하지 않으면 사다리가 끊어진다' 등의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정부가 지난 6·17 대책으로 3억원 초과 아파트 구매시 전세자금 대출을 제한하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시 6개월 내 전입 의무를 부과하면서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요가 몰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주택담보대출 시 6개월 전입 의무는 7월 1일부터 바로 시행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7월부터 대출 규제가 적용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한 일선 창구의 여신 상담 및 실행이 많게는 20%까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WM자문센터 부장은 "지금의 30대 초중반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2015년 이후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이라 서울 아파트 가격이 장기적으로 우상향 한다는 믿음이 있다"며 "아울러 부채는 나쁜 것이라 생각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저금리 시대 부채를 적절히 활용하면 오히려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서울 아파트에 투자하는 듯 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30대의 매수세가 당분간 줄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울 전세가격이 52주 연속 상승하면서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인 갭 가격이 줄고 있고, 부모님 도움과 신용대출 등을 통해 자금여력이 되는 30대들은 '전입 의무' (주택담보대출만 전입 의무가 있다) 없이 갭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성북구 돈암동 한신한진아파트 전용 68㎡는 최근 1년 새 매매가가 1억원(4억8000만원→5억8000만원) 올랐는데, 전세가도 최근 호가 기준 5000만원(3억원→3억5000만원) 오른 상태다. 한 때 2억8000만원대까지 벌어졌던 갭 가격이 다시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전세자금대출이 잘 나오면서 3억5000만원에 전세를 내놔도 금방 매물이 소화된다"며 "지난해 말부터 외지인 갭투자가 많아서 매매가격이 뛰었는데 전세가도 덩달아 올라준다면 또 투자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