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서울 전세가격이 오르는 동안 초고가 전세거래도 꾸준히 늘어났다. 2015년만 해도 45건이던 보증금 20억원 이상 초고가 전세는 2016년 70건, 2017년 143건, 2018년 198건으로 매년 급증했다. 3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올해 1월 1일~7월 31일에도 20억원 이상 전세는 서울에서 78건 거래됐다. 작년보다는 적지만 재작년 같은 기간(57건)보다는 많은 수치다. 최근 집값이 급등하면서 전세 수요 상당수가 주택 매매로 전환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고가 전세 시장이 상대적으로 굳건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19년 현재까지 최고가 전세보증금은 45억원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상지리츠빌카일룸 244㎡와 청담동 효성빌라 271㎡에서 2건이 거래됐다. 역대 최고 전세보증금이었던 작년 기록(40억원·상지리츠빌카일룸 237㎡)을 이미 넘어섰다.
지역별로 보면 초고가 전세는 서초구에 가장 많다. 7월 31일까지 거래된 78건의 절반이 넘는 49건이다. 다음으로 강남구가 22건이고 용산구에서 4건, 성동구에서 3건이 나왔다. 강남권에 속하는 송파구나 서울 서남권 대표 부촌인 목동엔 없다. 매일경제신문사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초고가 전세보증금은 매매가격 대비 비율이 대부분 65~70%로 집계됐다.
20억원 이상 초고가 전세를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력이 상당한 자산가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사는 이유가 절세 목적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게 세무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세보증금 20억원짜리 주택은 보통 시세로 30억원 정도다. 시세 30억원 주택의 올해 보유세는 약 2000만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집값이 급등하는 중에도 이들이 전세를 선택하는 이유를 부동산 업계에선 '정부 규제'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이번 정부는 세제 등으로 고가주택 소유자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주택을 구매할 경우 정부가 자금 출처 조사를 하기 때문에 원치 않게 재산 내용이 모두 드러나는 위험을 초고가 전세 수요자들이 피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초고가 전세의 대부분은 사업가나 연예인, 외국계 기업 임원 등 신분 노출을 꺼리는 수요가 많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초고가 전세는 그다지 나쁜 점이 없었다. 보증금이 20억원이면 고스란히 은행에 정기예금으로 넣어두더라도 1년에 4000만원 안팎의 이자 수입이 생겼기 때문이다. 확정일자 등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임대수익 때문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월세 신고가 의무화된다면 초고가 시장의 판도도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임대인은 누락할 수 있던 소득이 모두 노출된다. 현재 임대소득이 연 2000만원 이상이면 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이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꽤 무거워질 전망이다.
임차인 입장에선 장단점이 동시에 있다. 장점으로는 실거래가로 신고한 전월세 주택은 임차인의 확정일자가 자동 부여돼 별도 장치가 없어도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꼽힌다.
또 주변 시세와 비교도 쉽다. 반면 초고가 전세보증금에 대한 과세 가능성은 큰 위험요소다. 실제로 고액 전세보증금에 대한 세금 부과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또 고가 전세 거주자들 가운데 부모로부터 증여된 돈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세금 추징이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월세 신고제가 시행되면 초고가 전세시장에 어떤 방향으로든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보증금을 보호받는 등 장점이 있지만 편법증여 조사·과세 등의 위험이 있어 시장이 위축될 확률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손동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