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찜했던 강씨는 친구와 매매계약서를 비교했고, 그 결과 두 집의 전용면적은 84㎡로 동일한데 자신이 친구보다 2000만원가량 비싸게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강씨는 중개업자에게 따졌지만 "이 동네에선 84㎡를 보통 35평으로 호칭한다"는 중개업소 주장에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거래 시 법정단위로 '제곱미터(㎡)'가 도입된 지 57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일제강점기 때 도입된 '평(坪)' 단위가 널리 쓰이면서 소비자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해석 여지가 많아 정확한 넓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평 단위는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의 사용률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계량측정협회는 7일 서울 강남구 노보텔앰배서더 호텔에서 '부동산 분야 법정단위 사용 확산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11일 밝혔다.
법정단위란 정부가 법령에 따라 규정하는 상거래 및 증명용 단위로, 부동산을 거래할 땐 '㎡'가 법정단위로 정해져 있다. 이날 발표에 나선 신홍호 한국계량측정협회 법정계량사업부 팀장은 "㎡ 사용을 정착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지만 아직 평 단위에 비해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다음 세대가 같은 불편을 겪지 않기 위해선 부동산 중개업소, 국가 기관, 언론 매체 등 다방면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평'은 한 변이 약 1.8m인 3.3㎡ 정사각형 넓이로 일본 고대~중세시대 토지관리제도인 '조리제(條里制)'에서 유래된 단위다. 일제강점기 때 '경제 침략의 첨병' 역할을 띠고 강제로 대한제국의 토지대장에 면적 단위로 도입된 후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1961년 정부가 ㎡를 법정단위로 사용하도록 계량법을 개정한 이후에도 평 단위 사용 관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법정단위 사용 정착을 위해 정부와 협회는 2007년부터 ㎡ 사용의 중요성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홍보하는 한편, 분양 광고에 평 단위를 사용하는 건설사에 벌금을 부과하는 등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협회에 따르면 10년이 지난 지금도 ㎡ 사용률은 언론 매체의 경우 80%('평'사용 안한경우) 중반, 부동산 중개업소는 60%('평'과 '㎡' 동시표기) 중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여전히 건설사나 분양대행사가 아파트 타입에 '25평형' '34평형'과 같은 이름을 붙이는 경우나 분양 가격으로 한 평을 의미하는 3.3㎡당 가격을 표시하는 잘못된 사례가 많다.
평 단위는 부동산 거래 시 오해 여지가 많아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2007년 한국감정원이 서울 1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거 전용면적이 85㎡인 아파트는 31~38평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단지마다 공급면적 또는 전용면적을 평 단위로 변환해 부르면서 말 그대로 '부르는 사람 마음대로' 면적이 정해지고 있다.
이날 모인 시민단체와 업계 관계자들은 부동산 분야 법정단위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언론·포털 업체 등이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한목소리
고성희 한국소비자연맹 실장은 "심지어 서울시나 SH공사 등 정부기관에서도 보도자료에 서비스 면적을 지칭하는 '나만의 한 평' 등 용어를 쓰고 있다"며 "정부기관에서 내는 모든 통계나 보도자료부터 ㎡ 단위로 바꿔야 하고 포털에서도 사용에 적극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용 기자 / 정지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