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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또 분양` 논란을 일으킨 신반포센트럴자이 견본주택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통제가 힘들어 이 같은 풍경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충우 기자] |
하지만 최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공공 분양주택부터 단계적으로 후분양제 도입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발언하며 건설·부동산업계 최대 화두로 급부상했다.
후분양제는 장단점이 명확한 만큼 도입에 대한 찬반양론도 극명하게 갈린다. 찬성론자는 소비자 권익 보호와 주거정의 실현이란 대의명분을 앞세운다. 분양 불패에 젖어 부실시공을 일삼는 건설업계의 낡은 관행을 뜯어고치겠다는 취지다. 반면 반대론자는 오랜 기간 선분양이 대세로 자리 잡았던 국내 부동산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후분양을 밀어붙이면 건설업계 양극화, 주택 공급 감소에 따른 분양가 및 집값 상승 등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 "주거 정의 실현" 정치권서 검토
지난 12일 열린 국토부 국정감사에서 김현미 장관의 후분양제 도입 발언이 나오자 많은 사람이 갑작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관련 논의는 국토부 내부적으로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다음날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참석한 박선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후분양 활성화를 위한 실무적 검토는 해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후분양제 도입을 사실상 확정 지은 기폭제는 최근 불거진 아파트 부실시공 문제다. 중견 건설사 A사가 경기도 동탄2신도시에 지은 1316가구 규모 아파트는 올해 3월 준공 후 9월까지 8만건 이상의 하자보수 신청이 접수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기도와 화성시는 강력한 행정제재를 예고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부실시공으로 문제를 일으킨 건설사의 아파트 선분양과 주택도시기금 대출을 제한하는 법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A사 외에도 최근 새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부실시공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대충 지어도 분양이 워낙 잘되니 감당 가능한 물량 이상을 욕심 내며 생겨난 고질적 문제다. 국토부에서 운영하는 하자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하자보수 분쟁 신고는 2010년 69건에서 지난해 3880건으로 6년 새 56배 급증했다. 하자가 발생하더라도 집값 하락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입주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드러난 피해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후분양제 도입의 가장 큰 장점은 건설사의 부실시공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소비자는 어느 정도 완성된 아파트를 직접 확인한 후 구입할 수 있어 부실시공 건설사는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분양 후 시행사나 시공사 부도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는 위험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다.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3000만원짜리 승용차를 살 때도 꼼꼼히 확인해보고 구입하는데 주택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계약부터 한다"고 선분양제의 폐해를 지적했다.
후분양제는 주택 투기거래 근절 효과도 있다. 최근 가장 활발한 주택 투기거래가 분양권 전매인데 분양에서 입주까지 2년 이상의 시차가 있는 선분양과 달리 후분양 아파트는 분양과 입주 사이의 시차가 6개월~1년 수준이어서 분양권 전매시장 자체가 형성되기 어렵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주변 시세 수준에서 분양가를 책정하다 보니 분양 웃돈(프리미엄)에 대한 기대도 힘들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후분양제는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이 지적받고 있다. 첫 번째는 분양가 상승에 따른 소비자 부담 증가다.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토지 가격, 물가 상승분이 모두 분양가에 반영된다. 시공비를 자체 신용으로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자는 이자비용도 분양가에 포함시키게 된다. 선분양제하에서는 수분양자가 이자비용을 부담했지만 시세 상승분을 챙길 수 있어 큰 불만은 없었다.
후분양제에선 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고분양가를 제어할 장치가 없다는 논란이 있다.
함영진 센터장은 "강남 인기 재건축 단지들은 HUG의 분양가 상한 제한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후분양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출금리가 높아지는 점도 소비자 입장에선 부담이다. 기존에는 HUG의 중도금대출보증을 활용해 시중 주택담보대출 대비 저렴한 금리로 집단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후분양제가 되면 이 같은 혜택을 받기 어려워진다. 소비자들은 주택 마련을 위한 자금 계획도 다시 짜야 한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계약금, 중도금, 잔금 형태로 2년간 나눠 내던 선분양제와 달리 후분양제에선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양극화도 후분양제의 부작용이다. 중도금 집단대출이 막히면 건설사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의 방식으로 시공비를 조달해야 하는데,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이자비용은 낮아진다.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중견기업의 사업 여건이 더욱 악화되는 것이다. 부실 기업의 자발적 구조조정도 기대할 수 있지만 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더 크다. 결국 후분양제로 가면 건설업계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질 것이란 예상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자금력이나 신용도가 부족한 중견, 지방 중소 건설사들은 일순간에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규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높다. 197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지어진 아파트의 재건축 시기가 도래하는 데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새 아파트 수요는 한동안 늘어날 전망이다. 이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업자 수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주택시장은 공급자 우위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주거 안정의 필수 요소로 꼽히는 원활한 주택 공급, 분양가 안정은 요원해진다. 신정섭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차장은 "후분양제로 금융비용이 크게 늘어나 사업성이 악화되고 분양 리스크로 인한 신규 분양 물량 감소도 예상된다"면서 "단기간 공급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분양·후분양의 장단점을 떠나서 정부가 특정 분양제도를 강제하는 것 자체가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선분양제는 1960년대 이후 산업화·도시화로 주택 수요가 급증하면서 자연스럽게 국내 주택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당시는 정부도 기업도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재적 입주자의 돈으로 공사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올랐기 때문에 수분양자 역시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선분양이 일반화되면서 국내 주택 공급 및 관련 금융시장 역시 선분양제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이 때문에 후분양이 정착되려면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 확립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함영진 센터장은 "오랜 기간 시공사는 지급보증을 통해 건설비를 조달했다"면서 "금융구조의 선진화 없이 후분양제가 정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업자들의 자발적 후분양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인센티브를 확충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량 사업자, 비과열 지역에 한해 주택도시기금 등 공공자금으로 시공비를 저렴하게 융자해줘 집단대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박선호 실
■ <용어 설명>
▷ 후분양제 : 구매자들이 조감도만 보고 2~3년 후 완공될 주택을 선택하는 선분양제와 달리 주택이 거의 지어진 상태에서 분양하는 제도.
[김기정 기자 / 정순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