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그게 어떻게 진심일 수 있겠어?"
점점 빠져든다. 인물들의 숨은 진심에, 메가폰의 수수께끼 같은 진실 게임에. 어쩌면 오래전 도망쳤을 지도 모를 내 안의 소리에까지. 여전히 비밀스럽고도 통쾌하고 복잡한 듯 단순하다. 그러나 그간의 작품들 가운데 홍상수 감독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느낌이 드는, 영화 ‘도망친 여자’다.
주인공 감희(김민희)는 번역가인 남편과 결혼한 뒤 5년간 단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붙어있어야 한다”는,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여자, (비록 남편이 출장으로 인해 갖게 된 자유이긴 하지만) 감희는 오랜 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 차츰 자신의 내면과 그 동안 도망쳐왔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은 얼마 전 이혼한 영순(서영화)다. 원래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져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오랜만에 집으로 찾아온 감희 때문에 술도 많이 마시고 (채식주의를 지향하지만) 고기도 많이 먹는다. 마치 엄마처럼 따뜻한 배려로 시종일관 감희를 배려하고 아끼지만 집 안의 가장 더러운 공간인 3층은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감희는 이에 3층의 비밀이 뭔지를 물으며, “언니는 나를 믿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여정은 영화 관람. 감희는 그곳에서 우연히 옛 친구 우진(김새벽)과 만난다. 유명해진 자기 남편이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 내미가 떨어지고 있는 우진은 감희에게 과거의 잘못을 사과한다. 감희는 괜찮다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고, 괜히 그런다고 말한다.
영화 속 감희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붙어있어야 한데. 그게 자연스러운 거래”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나는 운이 좋다” “괜찮은 것 같다”는 반응을 덧붙인다. 허기진 모습으로 계속해서 음식을 먹는데 어쩐지 복스러운 느낌보단 안쓰럽다.
이번에도 서사의 진폭은 최소화 했고 구성은 단순하다. 피사체들의 극대화된 즉물성, 함축적인 수수께끼의 연속은 사랑스럽고도 섬세하고 비밀스럽다. 무엇보다 홍상수 세계만의 독특하고도 여운 가득한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오는 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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