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은 생명을 살리는 음식으로서의 많은 데이터를 남겨왔습니다. 나는 그것에 이어 또 다른 자연의 순수함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밥정’보다 진한 진심으로 꽁꽁 언 누군가의 마음을 녹인다. 그리움으로 구멍 난 어떤 이의 가슴을 채우기도 한다. 부러질듯한 밥상에 담긴 온기가 뭉클한 감동으로 넘쳐 흐르는, 다큐멘터리 영화 ‘밥정’이다.
12살 때 집을 뛰쳐나와 산으로 들로 전국을 떠돌아다닌 소년. 그저 사람이 좋아, 식당을 전전하면서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요리를 배우고 또 대접하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요리’에 올인하기로 결심한다. 못 먹는다고 버려진 식재료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특이한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요리사, ‘방랑 식객’으로 불리는 임지호 쉐프의 이야기다.
한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약초를 배웠고 야생의 재료로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로 유명한 임 쉐프. 일식점, 중식점, 한식점 등에서 일을 배우다 우리나라의 전국 곡곡을 돌아다니며 전국의 식재료를 구해 ‘뭘 만들 수 있을지’를 연구하다 자신 만의 노하우로 자연친화적인 건강식의 대가로 발 돋음 했다.
영화 ‘밥정’은 귀한 재료들을 보면 부모님의 생각이 간절해지지만, 생전 단 한 번 제대로 된 맛있는 밥상을 차려드리지 못한 게 가슴이 아린, 임 쉐프의 특별한 한상 차림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어릴 때 친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집에 계신 어머니가 친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에 긴 방황을 했다는 가 그리움으로 짓고 진심으로 눌러 담아 한상차림을 정성껏 차린다. 지리산에서 만난 김순규 할머니를 길 위의 어머니로 10년간 정을 나누지만 끝끝내 찾아온 3번째 이별 앞에 낳아주신, 길러주신, 그리고 정을 나눠주신 3명의 어머니를 위해 3일 동안 108접시의 음식을 장만하는 것.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밥정’을 알고 그것을 나누며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 막연한 그리움을 음식에 정성스레 담으며 남모를 슬픔을 삼키는, 아니 실은 어머니를 향한 짇고한 그리움에 여행을 멈추지 않는 사람, 그것이 바로 임지호 쉐프였다. “언젠가 이 그리움의 여정을 끝낼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그의 덤덤한 목소리는 그 어떤 울먹임보다 묵직한 울림을 안긴다.
슬픔을 참으며 자연을 한껏 들이 마신 뒤 요리를 시작한 임 쉐프의 손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깊은 밤이 찾아와도 멈추질 않았다. 밤새도록 그의 칼질은 계속됐고 음식 냄새도 끊이질 않는다. 점차 가빠지는 숨소리, 지글지글 기름 달궈지는 소리와 함께 잠시 엎드려 숨을 돌리는 그의 모습에 어느새 객석 어디선가 작은 흐느낌이 들려오기도.
날이 밝자 온 정성으로 차려낸 ‘밥상’이 스크린을 꽉 채운다. 가족들 모두가 그 밥상을 보고는 “고맙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지만 임 쉐프는 그저 환하게 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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