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스 반 산트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한 인간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마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구스 반 산트 감독일 것이다.
1952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구스 반 산트는 학창 시절 앤디 워홀의 전위영화 ‘엠파이어 빌딩’으로 영상매체에 눈을 떴다. 이후 거대한 나라 미국 속 소도시를 찾아다니거나 밴드활동을 하고, 직접 뮤직비디오도 촬영하며 진취적인 청년기를 보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주류보다 비주류에 속했던 구스 반 산트는 중심을 벗어난 이들의 이야기를 고찰하는 영화로 영화계 신선한 충격을 몰고 왔다.
↑ 영화 ‘굿 윌 헌팅’ 포스터 사진=영화사 오원 |
◇ 상처 받은 이를 끌어안는 ‘굿 윌 헌팅’(1997)
1985년 영화 ‘말라 노체’로 데뷔한 구스 반 산트는 ‘자살하는 5가지 방법’(1987), ‘드럭스토어 카우보이’(1989), ‘아이다호’(1991), ‘투 다이 포’(1995)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거쳐 ‘굿 윌 헌팅’에 도달했다. ‘굿 윌 헌팅’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만은 쉽게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진솔하고 묵직하다.
대학 청소부로 일하는 윌 헌팅(맷 데이먼 분)은 천재다. 교내 게시판에 붙은 수학 문제를 단번에 풀어내는 윌 헌팅을 설명하기에 천재라는 단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다. 그리고 그의 천재성을 선구안으로 바라보는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 분) 교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간다.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생채기를 내기도 하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두 인물은 먹먹한 울림을 안긴다. 누구도 몰라주는 이면을 알아보는 타인을 만난 이들의 일상에는 작지만 큰 변화가 생기고 이는 곧 인생 전체를 바꿀 물결을 만든다.
구스 반 산트의 담백한 연출과 주연이자 각본을 맡은 맷 데이먼, 대체할 수 없는 로빈 윌리엄스가 견고히 쌓아올린 우정의 무게는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졌다. ‘굿 윌 헌팅’은 제70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무려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각본상과 남우조연상이라는 쾌거를 얻었다. 불만을 품은 채 잔뜩 뒤틀린 천재와 그를 보듬는 참스승을 가식과 편견 없이 바라본 덕분이었다.
↑ 영화 ‘엘리펀트’ 포스터 사진=영화 ‘엘리펀트’ 포스터 |
◇ 섣불리 말 걸 수 없는 뒷모습 ‘엘리펀트’(2004)
놀랍게도 구스 반 산트는 예정된 탄탄대로를 마다하고 다시 비주류로 돌아갔다.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는 감독의 성향이 그 연출관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구스 반 산트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만족시킨 ‘굿 윌 헌팅’이라는 좋은 할리우드 영화 이후 ‘제리’(2002), ‘엘리펀트’(2004), ‘라스트 데이즈’(2005), ‘파라노이드 파크’(2007)를 차례로 내놓으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그중 ‘엘리펀트’는 인간의 뒷모습을 가장 잘 응시한 영화로 꼽힌다.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제5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제목인 ‘엘리펀트’는 코끼리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여러 의미에서 다양한 비유와 상징을 가지는 동물이다. 구스 반 산트는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그날과 그 이전의 몇몇 나날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코끼리의 몸통에 접근한다.
↑ 영화 ‘엘리펀트’ 스틸컷 사진=영화 ‘엘리펀트’ |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가을날, 사진찍기가 취미인 엘리는 수업을 가던 중 펑크 로커들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한다. 네이트는 축구를 마치고 여자친구 캐리와 점심 식사를 한다. 카페테리아에는 수다를 떠는 학생들이 앉아있다. 지극히 평범한 순간들의 나열이지만 여기에 알 듯 모를 듯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균열들이 틈을 만들며 잠자던 코끼리를 깨운다.
‘엘리펀트’는 구스 반 산트가 ‘굿 윌 헌팅’에서부터 이어온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연령대가 더 낮아지고, 톤이 차가워졌을 뿐이다. ‘엘리펀트’의 카메라는 인물들의 뒷모습을 쫓는다. 특별나게 말을 걸지도, 옆으로 서서 걷지도, 그렇다고 앞서 가서 앞모습을 찍는 게 아니라 그저 뒷모습을 관조한다. 마음에 코끼리를 품은 아이들 역시 속내를 내비치는 일이 없다. 무엇보다도 어른들은 이 이야기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비극의 전초는 물론 그 이후까지도 제 기능을 해내는 어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관습적 담론이나 아이들의 고통을 청소년기 일탈쯤으로 치부하지 않은 구스 반 산트의 시선은 차갑고 차분하다. 어떠한 미학적 성취를 위해서라기보다 우리가 놓인 현실이 그렇고, 실제 사건이 그랬기 때문일 터다.
↑ 영화 ‘돈 워리’ 포스터 사진=그린나래미디어(주) |
◇ 암흑 속 또 하나의 온기 ‘돈 워리’
구스 반 산트가 ‘굿 윌 헌팅’과 같은 온기를 다시 한번 세상에 불어넣는다. 신작 ‘돈 워리’를 통해서다.
‘웬 위 라이즈’ 이후 2년 만에 신작인 ‘돈 워리’는 알코올 중독에 전신마비 신세였지만 절망하지 않은 남자 존을 통해 자신을 용서하는 시간을 선물하는 유쾌한 영화로 지난 25일 국내 개봉했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상태가 된 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미국의 만화가 존 캘러핸의 실화를 담았으며, 호아킨 피닉스가 존을 맡고 그의 정신적 지주인 도나는 조나 힐이 연기한다. 또 존의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아누 역은 루니 마라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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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스타 대중문화부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