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닐 조단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1950년 아일랜드 슬리고 카운티 출생인 닐 조단 감독은 도발적이고 짓궂다. 살짝 올라간 입 꼬리가 인상적인 그는 자신의 영화 속 짓궂은 인물들과 빼닮았다.
닐 조단의 영화에는 순진하거나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주인공이 나와 상대의 심장 깊숙이 비수를 찔러 넣는다. 닐 조단은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들을 통해 알 듯 말 듯 묘한 인간 심리, 그중에서도 특히 공포심을 짓궂지만 섬뜩하게 그려낸다.
90년대 영화계 문제아로 불린 닐 조단의 영화는 어쩌면 위선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 날리는 시원한 코웃음이 아닐까.
↑ 영화 ‘크라잉게임’ 포스터 사진=영화 ‘크라잉게임’ |
◇ 1990년대, 닐 조단이라는 센세이션 ‘크라잉게임’(The Crying Game, 1992)
어떠한 반향과 선풍을 뜻하는 센세이션. 이제는 너무나 식상한 표현이 되어버렸지만 90년대 닐 조단을 표현하기에는 이만큼 적격인 단어가 없다.
‘크라잉게임’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납치된 영국 병사 조디와 그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IRA 요원 퍼거스의 미묘한 교류를 그린 영화로, 닐 조단은 이 작품을 통해 일약 스타 감독덤에 올랐다.
언뜻 보면 두 남자의 절절한 우정을 그린 평범한 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닐 조단은 이를 배반한다. 중반부에 접어들며 이야기는 전혀 다른 전개를 맞는데, 조디는 퍼거스에게 자신의 연인 딜을 만나라는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IRA에서 도망친 퍼거스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상태로 딜을 만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웬걸, 딜이 남자란다. 퍼거스는 딜을 거부하고 일상을 회복하려 노력하지만 IRA 요원이자 전 연인 쥬드가 나타나 이마저도 방해한다. 퍼거스는 조디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선량한 천성 탓에 곤경에 처하고 각 인물들은 서로를 향해 위악의 총을 겨눈다.
↑ 영화 ‘크라잉게임’ 스틸컷 사진=영화 ‘크라잉게임’ |
‘크라잉게임’은 당시로서는 아주 파격적인 스토리와 반전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때만 해도 동성애 코드를 영화 매체에서 다루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저마다의 천성과 인간 보편의 본능을 도발적으로 그려 뚜렷한 주제의식을 드러낸 것도 센세이션에 일조했다. 더 나아가 닐 조단은 계급의식, 인종차별, 정치문제까지 지적한다.
이 탓에 ‘크라잉게임’의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처음에는 전쟁, 버디 무비였다가 로맨스로 번지더니 결말로 갈수록 명확해지기는커녕 점점 꼬여만 간다. 그렇다고 닐 조단이 말도 안 되는 요소들을 다 쑤셔 넣은 건 아니다. 닐 조단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뉴욕비평가협회상, 런던비평가협회상, 미국작가조합상 등에서 수차례 각본상을 수상했으니 말이다.
도통 명확하진 않지만 적나라하고 도발적이라서 짓궂은 ‘크라잉게임’. 덕분에 현재까지도 ‘식스 센스’ ‘유주얼 서스펙트’와 함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반전 걸작으로 뽑힌다.
↑ 영화 ‘푸줏간 소년’ 포스터 사진=영화 ‘푸줏간 소년’ |
◇ 위악을 뒤집어 쓴 ‘푸줏간 소년’(The Butcher Boy, 1997)
아일랜드 예술 작품들은 음습하다는 말이 있듯 ‘푸줏간 소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패트릭 맥케이브의 동명 소설을 저자와 닐 조단이 함께 각색했으며, 제4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최고상인 은곰상 수상작이다.
소년 프란시는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와 자살중독자 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이렇게만 들으면 프란시는 음울 끝판왕일 것 같지만 의외로 뻔뻔하게 자리 자리를 지켜낼 줄 아는 소년이다. 다만 텔레비전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매일 구타당하긴 유일한 친구 조와 짓궂은 장난을 즐기며 제 나름대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버지에게 맞은 날, 프란시는 참다못해 이웃 마을로 가출하고 그 사이에 어머니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소년은 여전히 조와 짓궂은 장난을 즐길 뿐이다. 어딘가 위태롭지만 그렇다고 콕 집어 문제를 끄집어낼 수 없는 상황에서 프란시는 위선적인 뉴전트 부인의 아들을 괴롭히고, 이 일로 인해 수도원으로 끌려가고 만다.
↑ 영화 ‘푸줏간 소년’ 스틸컷 사진=영화 ‘푸줏간 소년’ |
수도원에서도 프란시의 특이한 행동은 계속 된다. 하지만 소아성애자 목사를 위해 매일 여자 아이의 옷을 입고 그를 즐겁게 해주는 일은 프란시를 다시 마을로 돌아가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이 된다. 마을에 돌아와 푸줏간 청소부가 된 프란시와 또래 소년들의 환경은 너무나 동떨어지고, 그는 더욱 멸시 받고 소외되기 시작한다.
닐 조단이 ‘푸줏간 소년’으로 배반한 건 고정된 시선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마냥 어둡기만 할 것이라는 편견을 1차적으로 전복했으며 아이의 방어기제가 위선이 아닌 위악이라는 게 2차적 전복이다.
모두에게 외면당한 프란시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실천은 위악이다. 주변의 냉대와 무관심은 소년의 폭력과 광기로 번지고 결국 그 누구도 폭주를 막지 못한다. 소년이 더 이상 짓궂은 농담을 던지지 못하게 되는 그 순간, ‘푸줏간 소년’은 적잖은 충격을 안긴다.
↑ 영화 ‘마담 싸이코’ 포스터 사진=(주)쇼박스 |
◇ 외로움과 스릴러가 만나면 ‘마담 싸이코’(Greta, 2018)
닐 조단이 8년 만의 신작 ‘마담 싸이코’로 또 한번 짓궂은 장난을 친다.
지난 26일 개봉한 ‘마담 싸이코’는 지하철에서 베푼 사소한 친절로 끔찍한 스토커와 친구가 되어버린 여자의 현실 공포를 다룬 스릴러다.
극 중 마담 싸이코 그레타(이자벨 위페르 분)의 피해자인 프랜시스(클로이 모레츠 분)는 엄마를 잃은 후 심적으로 거리적으로도 멀어진 아빠와 떨어져 살며 내면의 깊은 외로움을 감추고 있는 20대 초반의 여성이다.
유사한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그레타 역시 딸과 남편을 잃고 대도시 뉴욕에서 외롭게 살아가
상냥한 미소 뒤에 숨겨둔 마담 싸이코의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 모두는 현실 속 아이러니에 사로잡힌다.
MBN스타 대중문화부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