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양소영 기자]
‘대화의 희열’ 백종원은 어떻게 장사 천재가 됐을까. 백종원이 요식업계에 뛰어들게 된 인생사를 공개했다.
KBS2 ‘대화의 희열 시즌2’(이하 대화의 희열2)가 2일 첫방송 됐다. ‘대화의 희열’은 시대를 움직이는 한 사람의 명사와 사석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콘셉트의 토크쇼. 제작진의 간섭과 예능적 장치 없이 테이블 위에서 오가는 진솔하고 깊은 ‘대화’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이다.
새롭게 돌아온 시즌2에는 가수 유희열, 소설가 김중혁,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기자 신지혜가 출연한다. 첫 회 게스트는 요리연구가 겸 기업인 백종원. 배우 소유진의 남편이기도 한 그는 현재 요식업계와 방송계를 접수하며 가장 핫한 인물이다.
백종원은 “방송에서 비치는 이미지는 포장된 게 많다. 내가 뭐 다 알겠냐. 좋은 면이 부각 된 거다. 어릴 때부터 관심은 많았다. 나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금수저를 많이 쓴다”며 “시골에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건 맞다. 증조부가 만석꾼이었고 조부가 사립학교를 했다. 증조 할어버지와 닮았다고 생각한 건 국민학교 2학년 때 버섯 농사짓는 게 꿈이었다”고 밝혔다.
‘떡잎부터 장사꾼’이었던 백종원은 버섯 농사가 꿈이었다. 그는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장사꾼의 기질을 보였다고. 백종원은 “4학년 때 리어카를 공수해서 소풍을 갔다. 오락 시간과 보물찾기를 반납하고 공병을 수거하고 리어카 6대 분량의 공병 수집을 해서 팔았다”며 “큰돈이 돌아왔다. 5학년 1학기까지 했다. 2학기에는 소문이 나서 다들 하겠다고 하더라. 내가 번 돈은 방위성금으로 기부했다.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었다”고 말했다.
백종원이 사업에 대한 철학을 알게 된 건, 고등학교 졸업 전 했던 첫 아르바이트 때문이었다. 백종원은 “친구 형이 중고차 장사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정말 단순하더라. 배턴 터치한 딜러들이 너무 못했다. 나도 팔 수 있을 것 같아 차를 대충 외우고 첫 손님 잡자마자 40분 만에 차량을 팔았다. 며칠 만에 6대를 팔았다. 천직인가 보다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며칠 뒤 두 번째로 차를 산 사람이 백종원은 찾아와 따귀를 날렸다고. 백종원은 “운행 거리 조작 차량이라고 하더라. 허위 매물인지 몰랐는데 충격이었다. 그래서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며 일을 그만뒀다고. 이어 “내가 이 일을 하려면 자동차 구조부터 공부를 해야 했다. 그렇게 목숨 걸 만큼 재미가 없었다”며 “(그 일로) 장사의 책임이나 소비자에 대한 책임, 제품에 대한 자신감 등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그런가하면 교육학을 전공하길 바랐던 부모와 갈등 끝에 타협점으로 사회학과를 갔다는 백종원. 그는 대학 생활보다는 낚시와 장사에 관심이 있었다고.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한 건 치킨집 아르바이트가 처음이었다. 백종원은 “조그만 호프집인데 치킨을 팔았다”며 “왜 아르바이트를 했냐면 맥주를 따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호프집 할머니에게 치킨 배달과 포장을 권했고, 전단지를 직접 돌리며 손님을 모았다.
백종원은 “내가 한 것에 반응이 오는 게 카타르시스였다. 그런 매력이 장사다.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고 소비자의 반응이 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사가 너무 잘 되면서 할머니가 가게 경영을 백종원에게 맡기기도 했다고. 이처럼 ‘장사꾼’의 장점과 매력을 갖고 있었지만, 백종원은 식당을 계속할 생각은 하지 못 했다.
그는 “그때는 머리에 똥만 들었다. 거대 기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라며 “그때는 큰돈이라는 게 무역 아니면 건설이었다. 갑자기 건설 회사를 할 수 없지 않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친구가 괜찮다고 해서 인테리어부터 시작했다. 제가 팔랑귀”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백종원은 “전화기 놓고 난 후에 사무실에 있는데 전화가 안 오더라. 정말 말도 안 되는 건데, 좋아하는 건 훤히 하는데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바보다. 그냥 전화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골목식당’ 하면서도 준비가 안 되어있거나 모르겠으면 하지 말라고 한다. 같은 사람인데 좋아아하는 일에는 푹 빠져서 볼 수 있지만 내가 모르는 건 모른다”고 설명했다. 백종원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가하면 백종원은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면서 쌈밥집도 하게 됐다. 회사 근처 단골 수다방처럼 방문했던 부동산에 갔다가 우연히 식당 매물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는 그는 인사치레로 괜찮은 매물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 말 한마디가 백종원을 다시 한번 음식 장사로 이끌었다.
때마침 식당 매물이 나왔고, 백종원은 일부러 터무니없는 권리금을 제안하며 거절했다. 그러나 백종원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며 쌈밥집을 인수하게 됐던 것. 백종원은 “전 말을 잘 뱉고 나중에 수습한다. 뱉은 말은 반드시 수습한다. 그렇게 수습하다가 지금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 회사와 식당을 같이 한 백종원. 그는 “‘골목식당’의 모습이 다가 아니다. 그때의 나는 반대편에 서 있는 출연자”라고 부연했다.
쌈밥집을 운영하면서 백종원은 ‘희열’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메뉴에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맞물린 우연이 지금의 ‘백종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백종원은 “이 일이 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목조주택 사업으로 호황을 맞았던 백종원은 IMF로 직격탄을 맞았다. 해외에서 수입하던 자재비의 가격이 오르며 건물을 짓는 족족 적자가 생겼고, 약 17억 원의 빚을 지게 됐다. 백종원은 “쌈밥집 2층에 사람들을 불렀다. 자존심 다 버리고 무릎 꿇고 이 식당 하나 남았는데 이걸 정리해서 나눠가지면 얼마 안 된다. 이거라도 가져가면 어쩔 수 없다. 기회를 준다면 이걸로 반드시 일어나겠다고 했다. 만장일치로 어음을 연장하겠다고 해줬다. 정말 급한 것들은 따로 했다. 일수 써서 막았다. 사채로 막고 그랬다”고 털어놨다.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백종원은 좌절감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가지만 안되지만 했었다. 금전적으로 힘든 것보다 자존심이 그랬다. 잘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하니까. 그때 굉장히 모멸감을 느꼈다”며 “당연히 내가 잘못한 거다. 그때 정말 변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결심을 하고 떠난 홍콩에서 여러 식당을 가게 된 백종원. 그는 마음을 돌렸고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을 얻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백종원은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았냐는 질문에 “제가 음식점 하는 걸 반대했고,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제가 망한 줄도 몰랐다”며 “사업을 한 게 독립하려고 했다. 한 푼도 도움받은 게 없다”고 강조했다.
백종원은 쌈밥집을 시작으로 포장마차도 하게 됐다. 하루 4시간을 자며 2년 동안 버텼다고 밝힌 그는 “2년이 지나니까 이자는 감당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부를 누려서 행복한 게 아니라 이자를 감당하니까 행복해지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장사 천재 백종원은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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