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스페셜 내 친구 MBC의 고백’ 사진=MBC ‘MBC 스페셜’ |
14일 'MBC 스페셜, 내 친구 MBC의 고백'을 통해 새롭게 시작하는 'MBC스페셜'의 첫 카메라는 우리 사회 가장 큰 적폐 중 하나였던 MBC 스스로를 비춘다.
7명 해직, 200여 명 비제작부서 발령, 제작 일선에 남은 이들은 무기력해져 갔던 지난 시간. 공영방송 MBC의 신뢰도는 끝도 없이 떨어졌고 시청자는 MBC를 외면했다.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로 돌아가기 위해 첫걸음을 떼는 MBC, 그 시작은 MBC 구성원들이 스스로 쓰는 겸허한 반성문이다.
신뢰도 1%, 영향력 1%. 국민에게 MBC는 더 이상 언론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난 촛불 혁명,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X비씨', '엠X신'을 연호하며 격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사회 각계 전문가들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취재원들이 MBC와의 인터뷰를 거절했고 MBC 뉴스의 시청률은 끝없이 추락했다. 실제로 'MBC스페셜'이 서울 각지에서 만난 시민들 대부분은 MBC를 공정하지 않은 언론사로 평가하며 MBC 뉴스는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권, 대기업, 학계 등 성역 없는 취재로 국민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던 내 친구 MBC는 죽었다. 시민들의 머릿속에 남은 MBC는 '무한도전'이 유일했다.
세월호, 고 백남기 농민, 밀양 송전탑, 성주 사드 배치 등 MBC 뉴스는 우리 사회 중요한 현안이 떠오를 때마다 왜곡, 편파 보도를 일삼으며 연이은 보도 참사를 일으켰다. 보도 책임자들은 세월호, 위안부, 백남기 등을 금기어로 규정하고 특정 영상을 배제하는 등 구체적인 보도지침으로 기사를 검열했다.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했던 자리에는 정부의 입장만을 그대로 받아쓰는 어용 기사가 줄지었고 그런 가운데 세월호 승객 전원구조 오보, 참사 당일 사망 보험금 브리핑 등 사회적 흉기 수준의 뉴스가 쏟아졌다.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뉴스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MBC 기자들. 다시 국민의 편에 선 뉴스로 돌아가기에 앞서 지난 기사들의 검열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그 속에서 MBC 뉴스를 지켜내지 못했던 심경을 직접 고백한다.
↑ ‘MBC 스페셜 내 친구 MBC의 고백’ 사진=MBC ‘MBC 스페셜’ |
보도 통제는 비단 뉴스만의 일이 아니었다. MBC 가장 날카로운 펜이었던 '피디수첩' 역시 일상적으로 아이템을 검열 당했다. 황우석 논문의 조작을 밝히고 광우병 소고기 수입의 문제점을 진단하며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피디수첩'은 서서히 망가져 갔다. 민주주의, 국가, 청와대, 세월호, 4대강 등 정권에 예민한 단어들은 철저히 통제 됐다. 세월호 3주기 편을 연출했던 '피디수첩' 장호기 피디는 내레이션 원고 중 국가, 청와대, VIP란 특정 단어들 때문에 더빙 내내 전화에 시달렸다며 둘 중에 한 단어만이라도 쓰게 해달라고 협상했던 스스로의 나약함을 고백했다. 펜이 무뎌지면서 시청자들은 '피디수첩'을 잊어 갔다. 심지어 대부분의 시민들은 '피디수첩'이 아직 방송을 하고 있는 지조차 몰랐다고 답했다. 참사 후 3년 만에 세월호를, 기획한 지 1년이 지나서야 4대강을 취재할 수 있었던 '피디수첩' 제작진. 뒤 늦은 보도로 국민 앞에 사죄해야 했던 순간들을 복기하며 뼈아픈 참회의 시간을 가진다.
2012년 파업이 끝나고 방송에서 배제된 후 사회공헌실에서 근무한 손정은 아나운서는 MBC의 몰락이 비단 방송사를 장악한 거대 권력과 부역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자성했다. 그러면서 MBC를 다시 돌려놓기 위해 우리 안에 오만은 없었는지 돌아보고 개개인이 구체적으로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고 되짚었다.
손정은 아나운서의 말처럼 'MBC스페셜'이 만난 60여 명의 MBC PD, 기자, 아나운서들은 공영방송 정상화의 시작이 우리 모두가 공범자임을 덜 싸우고 더 싸웠음을 떠나 끝까지 싸우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MBC를 말한다' 설문조사에 기꺼이 응해 준 시민 조진희 씨는 언론의 역사를 돌아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