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한 아내`에서 열연한 조여정. 사진|유용석 기자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친절한 웃음 뒤에 감춰진 싸늘한 눈빛. 배우 조여정(36)은 최근 종영한 KBS2 드라마 '완벽한 아내'에서 아동 학대를 받은 후 구정희(윤상현 분)에게 집착하는 이은희 역할을 맡았다. 그는 주인공 심재복(고소영 분)의 삶을 흔들었다. 한국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사이코패스를 연기한 조여정은 방송 내내 박수를 받았다.
"시놉시스에는 이은희가 '문제적 주부'라고만 돼 있었죠. 회차가 거듭될수록 개성이 강해져서 너무 어려웠어요. 시청자들이 보기에 거부감이 들지 않게끔 하려고 고민했죠. 제작진의 노력 덕분에 이은희가 덜 미움을 받은 듯해요. '저 사람도 딱한 인생이다'라는 걸 전하려고 했습니다."
이은희는 대학생 때 구정희의 공연을 본 뒤 그를 마음에 품었다. 어린 시절 상처 받은 그에게 구정희는 새로운 삶을 뜻했다. 그러나 왜곡된 사랑의 표현은 스토킹으로 이어졌고, 구정희와 멀어졌다. 시간이 흘러 구정희와 심재복은 가정을 꾸렸고, 이은희는 문은경에서 이은희로 이름을 바꾸고 구정희 인생에 다시 등장했다.
"연기하면서 캐릭터가 무서웠다기보단 촬영을 끝내고 나서 '얘 왜 이래'라고 했죠. 이은희와 저는 겹치는 부분이 없어서 더 어려웠어요. 배우의 욕심 때문에 역할을 맡긴 했지만, 자신은 없었죠. 자꾸 내게 어려운 숙제를 던져야 연기도 나아지지 않을까 했어요. 키만 성장을 멈췄지, 연기는 성장 중이에요. 한창 성장할 나이죠(웃음)."
조여정의 어머니는 매회 '완벽한 아내'를 보고 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짧은 격려 문자를 보내던 어머니는 이은희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해 정상인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은희가 반성하는 모습도 좋았다'고 했다. 조여정이 이은희의 속내를 감춘 연기는 어머니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 문자를 받고 '성공했구나' 했죠. 그래야 재밌으니까요(웃음). 처음 등장할 때는 신이 별로 없었죠. 심재복에게 '언니' '언니'하다가 사라졌어요. 이후에는 '정희씨' '정희씨'라는 대사가 많았죠. 그래도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어려웠어요. 이은희를 연기해 고민이 많았고, 연기가 늘었죠. 이은희에게 고마워요."
지난 1997년 잡지 모델로 데뷔한 조여정에게는 '베이글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귀여운 얼굴에 부각된 몸매가 시선을 끌었다. 연기보다는 외모가 조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조여정은 2014년 영화 '인간중독' 이후 '표적' '워킹걸'과 드라마 '이혼 변호사는 연애중' '베이비시터' 등 여러 캐릭터와 만나 물오른 연기력을 뽐냈다.
↑ `완벽한 아내`에서 열연한 조여정. 사진|유용석 기자 |
"그동안 로코(로맨틱 코미디) 작품을 많이 했죠. 어느 순간 이런 작품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느꼈어요. 장르나 캐릭터를 고민하는 시기죠. 동글동글한 제 외모와 충돌하는 캐릭터를 하면 관객들이 새롭게 받아들일 듯했죠. 몇 년 동안 외로운 역할을 해서 그런지 다음 작품에서는 사랑받는 인물도 하고 싶네요(웃음)."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이코패스 역할은 주로 남자 배우들이 맡았다. 2000년대 전후로 조직폭력배 등 거친 남자의 세계를 다룬 작품이나 잔인한 살인범을 앞세운 장르물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여자 배우들은 제한적인 등장인물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조여정이 연기한 이은희는 그래서 더 특별한 캐릭터다.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아지면 좋죠. 작품을 할 때마다 그런 바람을 갖고 시작해요.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최근에는 1년에 한 편씩은 작품을 하고 있어요. 연기할 때가 재밌죠. 좋아서 재밌다기보다는 고민하고 힘든 과정을 거치는 게 재밌어요. 아직도 촬영을 바로 앞에 두면 두렵습니다."
조여정은 작품을 두고 '도전'이 아닌 '시도'를 한다고 했다. 대본을 받았을 때 마음이 가는 캐릭터에 끌렸고, 이은희도 그랬다. 시청자들은 이은희가 조여정의 '인생 캐릭터'라고 평가했다. 그의 시도가 기막히게 성공한 것이다. 벌써 연말 연기대상에서 상을 받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데뷔 후 처음으로 드라마 시상식에 참여했어요. 회사 분들도 '정말 처음이냐'며 놀라셨죠. 정말 중요한 건 드라마를 통해 호응을 얻었다는 그 자체인 듯해요. 그게 상이고 기쁜 일이죠. 이은희가 인생캐릭터가 됐다는 평을 들을 줄 상상도 못 했죠."
조여정은 인터뷰 내내 밝은 미소로 "감사하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로는 '저 친구 노력 많이 한다'를 꼽았다. 이은희의 말투나 표정을 치열하게 해석했던 지난 3개월에 대한 극찬이었다. '완벽한 아내'는 흥행을 떠나 조여정 자신에게 깊게 박힌
"애청자분들에게 1000만 곱하기로 감사하죠. 호응이 없었으면 힘이 나지 않았을 거예요. 악역이고 미울 수 있는 이은희를 애정 있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제 노력과 진심이 조금씩 통한다고 느꼈어요. 시도는 항상 성공하는 게 아니죠. 다음 작품도 잘 봐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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