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혹자는, 한국 영화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엄청난 자본력을 지닌 할리우드 영화와의 경쟁에서 대등한 위치로 성장하고 우리만의 파워 콘텐츠를 인정받으려면 결국 스토리의 힘이 강력해야 한다고. 외적인 흉내가 아닌 본질적인 내실을 보다 치밀하게 다져야 한다고.
강렬한 스토리 텔러로 명망 높은 짐 쉐리단 감독과 ‘칸’이 인정한 여배우 루니 마라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 영화 ‘로즈’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작품은 세상이 반대한 사랑에 모든 것을 내던진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의 아이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50년간 정신병원에서 갇혀 지낸 여주인공 로즈(루니 마라)는 아들이 살아있다는 믿음 하나로 생을 끈질기게 붙잡아 온 용감하고도 아름다운 인물이다.
그녀의 비밀스러운 과거가 베일을 벗는 순간, 관객들은 이 아름답고도 미스터리한 이야기에 금세 빠져버릴 수밖에 없다. 1943년의 아일랜드, 억압적인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자유롭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로즈에게 남자들은 하나 같이 눈을 떼지 못한다. 그녀는 이로 인해 의도치 않는 오해 속에서 고립돼 가지만, 파일럿 ‘마이클’과의 사랑이 그녀를 구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첫 눈에 빠져들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결국 이별하게 되고 홀로 남겨진 로즈는 처절한 삶을 살게 된다.
아무리 명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그 정서를 담는 데 실패한 무수한 사례와는 달리 영화는 원작의 감동을 오롯이 옮겨놓는 데 성공했다. 보수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매혹적인 여주인공이 외부의 제약에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둘러싼 세속적인 인물들과의 관계, 충격적인 진실까지도 아름답게 완성시켰다. 예상치 못한 진실과 마지막 반전은 아름다운 로맨스에 긴장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결말의 감동을 극대화시킨다.
정신병원에서 50여년의 세월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기품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레이디 로즈의 강렬한 존재감과 비밀로 간직했던 운명적인 사랑에 이야기하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안정된 연기 또한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젊은 로즈와 노인 로즈를 연기한 두 사람은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일관성을 가지고 영화의 서사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완성시킨다
여기에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 프로덕션 디자인까지 가미돼 디테일의 끝을 보여준다. 로맨스의 근원적인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형성을 뛰어 넘은 도전적인 서사로 색다른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우아한 연출력과 명품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제대로 시너지를 내는 작품이다.
오는 12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1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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