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골목을 보면 서로 자기가 원조라고 간판에 써놓고 가게 운영을 한다. 원조가 맛있고, 고객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여기 2003년부터 시작된 13년차 로맨틱 코미디 원조가 있다. ‘옥탑방 고양이’(2003)를 시작으로 ‘어린 신부’(2004),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2005), ‘넌 어느별에서 왔니’(2006)까지. 로코물을 섭렵한 배우 김래원(35)이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를 통해 오랜만에 원조집의 위엄을 뽐냈다.
김래원은 최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오랜만에 로코물에 출연한 소감을 밝혔다.
““굳이 로코 장르를 피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간 영화 시나리오를 많이 받았죠. 물론 로코 영화도 제안 있었지만 딱 매력적이 않아서. 저한테 흥미로웠던 작품을 해왔던 거예요. 그런데 ‘닥터스’의 경우엔 여태껏 안 해 본 메디컬 장르였고,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김래원의 ‘닥터스’ 출연은 극적으로 성사 됐다. 당시 영화 촬영 중이었던 김래원은 한 달 반이나 촬영을 진행해온 ‘닥터스’에 뒤늦게 합류했다. ‘닥터스’ 방송 2주 전, 처음으로 의사 가운을 입었다.
“부담이 됐었는데, 막상 연기해보니 괜찮은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작품이 있으면 또 할 계획도 있고요. 원래 로코 좋아하고 애초에 제가 연기자를 시작했던 장르이기도 하고요. 교만이 아니라 정말로. 저만의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 같았으면 굳이 이런 말을 안했을텐데 로코를 또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김래원은 ‘닥터스’에서 다정다감하고 한 여자만을 위해주는 의사 홍지홍 역을 맡아 여성 시청자들을 ‘심쿵’하게 했다. 특히 홍지홍 특유의 말투는 ‘역대급’이라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김래원은 “아무 생각 없었는데”라며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대사가 어려운 게 많았어요. 오글거리거나 닭살스러운 대사를 그냥 그대로 하면 그냥 닭살일 것 같더라고요. 제가 못하겠어서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하다가 그런 것들이 나왔어요. 근데 나중엔 감독님이 이렇게 해주시면 안 되냐고 요구를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나중엔 제가 일부러 하기 싫었어요.”
‘닥터스’의 김래원은 숱한 명대사를 쏟아내며 여심을 흔들었다. 특히 박신혜와의 재회 장면에서의 “결혼했니? 애인 있어? 그럼 됐다”라는 대사는 여심을 3단 콤보로 자극하며 ‘닥터스’ 최고의 심쿵 포인트로 남았다.
“그 대사의 순서를 제가 바꿨어요. 작가 선생님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요. 작가 선생님이 설정한 홍지홍은 쭈뼛거리고 눈을 못마주치고 말하는 홍지홍이었는데 제가 바꿔버렸어요. 그 장면만 보면 홍지홍은 상남자인데 제가 작가님한테 ‘난 상남자로 하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제가 바꿔 말해 그 장면이 잘 됐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닥터스’를 통해 호평이 쏟아졌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특히 김래원은 “드라마를 하면 중반 이후에는 시간에 쫓기게 된다. 제작진이나 배우들 전부 다 아쉬웠을 것”이라며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저는 대본을 많이 보는 편이예요. 이번 회는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의미를 부여해요. 그런데 후반부에는 대본이 나오지 않으니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나중에 보니 연기를 잘못한 부분도 있더라고요. 작가님도 보시고 속상하셨을 거예요.”
‘옥탑방 고양이’로부터 벌써 13년이다. 13년 지난 김래원의 로코 연기는 어떻게 변했을까. 김래원은 “그 때는 밑도 끝도 없이 재밌게 보이기 위해서만 노력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저는 배우를 오래했잖아요. 작품하면서 역할들의 장점만 가지려고 해요. 이 친구가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힘들지만 이게 건강하고 자연스러운거구나. 그런 생각이 저 스스로가 성장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예전에 선배들께서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배우고 되겠다’고 하셨는데 무슨 말인지 이제는 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