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손진아 기자]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 속 배우 손예진의 절규에 눈물 훔치지 않은 이가 있을까. 가녀린 몸으로 온몸을 바쳐 연기하는 손예진이 또 한 번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손예진은 ‘덕혜옹주’로 한 여인의 숨겨진 한(恨) 많은 이야기를 섬세하고 깊게 그려내며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를 환기시킨다.
‘덕혜옹주’는 역사의 격랑 속에 비운의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를 원작으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팩션(Fact+Fiction)으로 스토리에 활력을 더했다.
손예진은 극 중 덕혱옹주 역을 맡았다.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대, 아무런 힘도 남아있지 않았던 황실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일제와 친일파의 정치적 도구가 되어 만 13세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일본으로 떠나야 했던 덕혜옹주는 그 시대의 슬픈 역사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일단 이렇게 호평이 많았던 영화가 있었나. 많이들 호평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얼떨떨한 마음도 많다. 덕혜옹주는 역사 속 실존 인물이고 뭔가 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영화 보면서 많이 울었었다. 눈물 나는 걸 컨트롤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
손예진은 인터뷰 내내 덕혜옹주로 살았던 마음과 느낌이 가시지 않은 듯 작품에 대해 설명하며 종종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3월에 촬영이 끝나고 옹주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촬영할 때보다 영화 홍보하는 기간에 더 깊게 인물에 이입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며 그는 “막상 연기할 때보다 영화로 보니까 더 가슴 아픈 걸 느낀다”며 웃어 보였다.
역사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연기를 위해 자료, 사진들을 많이 참고했다는 손예진은 또 한 번 인생캐릭터를 완성해냈다. 거듭된 고민으로 완성된 손예진표 연기는 표정, 눈빛만으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세밀한 문체로 담아낸 원작만큼 덕혜옹주가 겪었을 고난의 시간을 온몸으로 표현한 그는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나갔다.
“첫 대본은 몇 년 전에 받았다.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다. 원작을 기본으로 많이 했는데, 영화화되면서 망명 작전이 크게 들어가게 됐다. 어떤 지점을 중점으로 쓰냐에 따라 달라졌다. 각색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빼고 들어가고, 왔다 갔다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만들어가면서 중요한 장면이 정말 많아지긴 했다. 2시간 안에 한 여자의 인생을 다 보여줘야 했고, 덕혜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 보여줘야 했다. 실제 덕혜가 겪었던 일들, 강제 유학하고 강제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자살을 하는 등 순차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장면들이 갖고 있는 게 큼직했기 때문에 모든 장면이 중요했다.”
특히 손예진의 내공은 백발의 노인이 된 덕혜옹주에서 제대로 터진다. 고국의 땅을 밟을 기회를 눈앞에 두고 절망에 빠지는 모습부터 고국을 향한 그리움에 피눈물을 쏟는 그의 소름 돋는 연기는 덕혜옹주의 아픔을 그대로 전달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을 완성해냈다.
“공항신을 찍을 때 많은 배우들과 스태프 모두 숙연했던 것 같다. 미란 언니가 그 장면을 반나절 정도 찍었는데 하루 종일 울더라. 언니가 안 나오는 순간에도 계속 울었다. 왜 이렇게 우냐고 물어보니 자기고 이런 게 처음이라고 하더라. 실제로 덕혜옹주가 귀국할 당시, 잘 걷지 못하면서 왔다고 했다. 노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걸음도 좀 더 터벅터벅 걷게 되고, 등도 더 굽어보이게 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인 연기가 나왔던 것 같다. 상상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손예진은 ‘외출’에 이어 ‘덕혜옹주’로 허진호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당연히 이미 한 번 함께 작업을 해본 사이기에 ‘덕혜옹주’로 허 감독과의 호흡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허진호 감독님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편”이라며 “감독님에겐 정답이 없다. 하지만 작업하다 진짜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신다. 굳이 억지로 만들어 가려고 하는 건 없었다. ‘덕혜옹주’ 촬영하면서 역시나 감독님을 많이 믿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화 ‘연애소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을 통해 ‘청순의 대명사’였던 손예진은 청순함의 표상에 안주하지 않았다. ‘무방비도시’ ‘작업의 정석’ ‘공범’ 등 전혀 다른 색깔의 작품에 도전하며 다양한 캐릭터 변신을 감행했다. 그의 끝없는 도전은 연기 스펙트럼을 더욱 넓혀 나갔고, 어떤 옷을 입어도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진정성 있는 연기로 대중의 신뢰를 받았다.
“연기 스펙트럼이 쌓이면서 여유가 많이 생겼다. 일을 하며 사람을 만나면서 생기는 부담이 적어지고 사람과의 만남, 작품과 일을 훨씬 즐기게 됐다. 감사한 마음도 생겼다. 그만큼 주인공으로서의 책임감이 아주 많이 강해진 건 있다. 결과를 놓고 배우가 좌지우지 되면 안 되는데 개봉을 앞두면 걱정이 많이 된다. 흥행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고.(웃음)”
손예진은 ‘배우’라는 길을 15년째 걷고 있다. 작품에 대한 부담감과 그 뒤에 따르는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이를 잘 극복하고 그 무게를 잘 견뎌야 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가 꾸준히 배우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했다.
“기본적으로 처음을 생각하면 그냥 연기를 하고 싶었다. 화려하게 연예인보다 연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어떤 걸 할 때 제일 행복할까를 고민해보면 되게 단순해진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을 때, 잠을 푹 잘 때도 행복하다.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연기를 하는 순간이 정말 행복한 것 같더라. ‘잘 봐주세요’라는 것과는 다른 지점에 일이다. 연기를 하는 순간은 너무 고독하지만 그 순간이 되게 좋다. 그래서 계속 그러고 싶다.(웃음)”
손진아 기자 jinaaa@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