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우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인물이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향, 바람이요.”
배우 한주완에게 2015년의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MBC 월화드라마 ‘화정’의 50부 대장정을 장렬한 최후로 마무리하면서 연륜과 깊이를 보여준 그는, 정든 캐릭터를 떠나보내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화정’에서 한주완이 맡은 강인우는 ‘소신’으로 대변되는 인물이었다. 특히 정의에 대한 소신과 아들이라는 지위 사이에서 갈등하다 끝내 정의를 택한 그는 아버지 강주선(조성하 분)과 대립하다 운명처럼 아버지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
이처럼 강렬한 인물이지만 역사 속 정명공주사(史)에 비춰보면 ‘화정’의 강인우는 가상의 캐릭터였다. 정명을 마음에 품었지만 우정을 택한 그는 먼 발치서 정명을 바라보면서도 순정을 간직한, ‘멋진 남자’였다.
“강인우는 마치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인물인 것 같아요. 역사서에 존재하지 않는, 스쳐가는 바람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염원했던 한 공간을 매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풍(風) 망(望), 모두 일리있는 분석이다. 그렇게 강인우는 희망을 품은 바람이 됐고, 비록 한주완은 “스쳐 지나갔다” 표현했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살아 숨쉬는 염원과 바람이 됐다.
한주완이 꼽은 강인우의 매력은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면”이다. “강인우는 많은 내적 갈등 속에서도 종국에는 방점을 찍어준 인물이에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꼭 있었으면 싶은, 사람들의 바람을 매워준 인물인데 그런 면에서 이상을 이룬 것 같아요. 그게 희생으로 표현된 거겠죠. 친구를 위한 희생. 아버지의 변화를 이끌 수 있었다면 보상으로 보이겠지만, 보상 없는 그냥 희생을 한 것이죠.”
그리고 한주완에게 ‘화정’은 “공존에 대한 고찰”이었다. “이상사회를 꿈꾸며 서로 다른 견해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피를 흘렸잖아요. 지금도 피를 많이 흘리고 있고요. 하지만 더 나은 제도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사랑인 것 같아요. ‘화정’에서 강인우는 친구를 위한 사랑으로 희생한 것이고, 부딪치고 깨지고 그리고 또 부딪치고 깨지고. 그렇게 나아가는 거겠죠. 강인우는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빈 공간을 매워줬다고 생각해요.”
극중 정명-홍주원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듯 했지만 예상 외로 금세 시들었다. 아쉬움도 남았지만 한주완은 설정상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일 것이라 받아들였다.
“자기의 사랑을 쟁취하려고 해도, 사실 가능성이나 여지가 조금은 있어야 할텐데, 그런 여지가 전혀 없었어요. 둘이 좋다는데, 그것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는데 제가 뭘 어떻게 못 하죠. 그게 인지상정이라 생각했어요. 거기서 뭘 더 욕심낸다면 눈치 없게 괴롭히는 것 밖에 안 되겠죠.”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한 한주완은 2009년 영화 ‘소년 마부’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연기자로 나섰다. 대중에 눈도장을 찍은 건 2013년 인기리에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부터다. 당시 신인이던 그를 캐스팅한 작가는 “뭔지 모를 에너지와 패기가 마음에 든다”고 캐스팅 비하인드를 전했다고.
본격적으로 배우로 활동한 지 3년 정도 된 현재, “배우로서의 책임감을 더 가져가려고 한다”면서도 반복되는 경험을 통한 적응으로 인해 연기에 대한 초발심이 희석되는 게 못내 아쉬운 한주완이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말이 그건가봐요. 그 때(데뷔 초)는 뭔가, 잃을 게 없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그런 게 있었죠.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작품 속 인물과 굉장히 순수하게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 제법 3년 정도 지내보니 프로페셔널한 방식에 익숙해지는 거에요. 앞으로 3년 그리고 또 3년이 지나 10년차 정도 되면, 순수하게 인물과 마주했던 지난 날들을 그리워하지 않을까요? 계속 그 마음은 가지고 가고 싶은 생각이 큽니다.”
“혹 지금은 비주류로 보일지라도 그 언젠가 주류가 되어 있는” 배우가 되기를 희망하는, 어디에도 길들여지지 않고 싶은 게 한주완의 솔직한 속내이자, 강단 있는 소신이다.
연출에 대한 바람도 크지만 그는 먼 나중의 이야기라고 손을 내저었다. “언젠가, 60대가 되면 꼭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 뭔가 하나를 남기더라도 제대로 남겨야 하지 않겠어요?(웃음)”
psyon@mk.co.kr/사진 유용석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