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햇수로 20년. 배우 김정은은 참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다. ‘애기야 가자’부터 ‘밥집 아줌마’까지 참 많은 작품과 캐릭터를 거치면서 화제도 많이 만들었다. ‘베테랑’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그에게 20년 롱런의 비결을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20년 하면서 다 버릴 것 밖에 안 남았어요.”
김정은은 최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에서 전직 형사이면서 ‘열혈 집밥 아줌마’인 정덕인 역할을 맡았다. 액션부터 모성애, 분노 연기까지 참 다채로운 연기를 했던 김정은에 40부작을 달려온 소감을 물었더니 그는 웃음부터 터뜨렸다. “어후, 정말 길더라고요.”
“처음에는 ‘20회 미니시리즈 2개 한다고 생각하자’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덤볐다. 그런데 단거리 선수가 장거리 마라톤이나 철인3종경기를 끝낸 기분이다. 미니시리즈는 20부 정도 되면 클라이막스로 달려가다 어느 새 끝나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면서 정신 차리면 여전히 한참 남아있는 상황이었다.(웃음) 긴 게 정말 힘들더라.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많이 들었다.”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도 잠시, 김정은은 “액션 저 정말 잘하지 않았어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그는 액션에 첫 도전했고, 눈물 나는 모성애를 표현하기도 했다. ‘여자를 울려’를 통해 다양한 도전을 한 셈인데, 김정은도 이 도전에 많은 의미를 두는 듯 했다. 그는 “엄마 역할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고 말하며 아들 문제 때문에 교무실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는 장면을 꼽았다. “연기하면서 처음으로 정신줄을 놔 버린” 장면이란다.
“그 장면을 찍으면서 앞이 까매지는 경험을 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흉하지는 않을지 겁났다. 거의 바닥을 기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도 될까 싶은 상황이었다. 그 때 감독님께서 ‘전국의 엄마가 네 뒤에 있다’고 말해주는 순간 편해졌다. ‘나는 자식을 떠나보낸 엄마다’라는 걸 백 번 되뇌고 가니 세상 무서운 게 없어진 기분이었다. 제자신의 끝까지 가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시청자들께서 공감을 많이 해주셔서 용기가 많이 났다.“
↑ 사진제공=별만들기이엔티 |
김정은은 완벽하게 엄마가 된 듯 했다.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도 몰랐다”는 김정은은 ‘여자를 울려’를 통해 액션도, ‘밥집 아줌마’의 요리도, 모성애도 새롭게 발견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김정은은 ‘원조 흥행보증수표’다. 시청자들이 처음부터 기대했던 ‘선전’이었다. 시청자들의 기대치에 김정은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된다”고 답했다.
“다행히 ‘여자를 울려’도 시청률 면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캐릭터가 강렬해 눈길을 많이 이끌었다. 저에게 숙제는 이 기대치를 끝까지 가지고 가는 거다. 사실 저는 샴페인을 터뜨려서 ‘따단’하고 나타나는 건 있다. 하지만 분명하게 그 부분에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드라마의 갈등과 아픔이 시작되고 이걸 캐릭터가 이겨내는 게 있어야 하는데 제가 너무나 큰 기대치를 준 것인가 고민을 할 때도 많다. 그래서 드라마 시작하기 전에 늘 제작진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여자를 울려’도 김정은이라는 존재만으로 많은 기대를 자아냈던 작품이다.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김정은이 맡은 정덕인의 멜로나 사건 해결에서 답답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김정은도 이런 평가에 대해 알고 있었다. 김정은은 “첫 의도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반성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 사진제공=별만들기이엔티 |
“이건 변명 밖에 안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주말극의 특성상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풀어내다보니 타이밍이 안 맞았던 것 같다. 정덕인을 따라왔는데 정덕인이 막혀버렸으니 답답하셨을 것 같다. 저도 중간에 괴로웠던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불편하셨다면 죄송한 일이다. 단 한 가지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즉흥적으로 진행된 건 없다는 거다. 모든 캐릭터가 많은 고민 끝에 탄생되고 진행됐다고 알고 있다.”
김정은은 “해야 할 이야기를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한 부분은 없다”고 잘라말하며 마지막 내레이션 속 ‘용서를 하고 있다’는 말에서 드라마의 의미를 찾았다. 용서의 마음과 이를 품고 성장하는 과정 속에 정덕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김정은은 말했다. 그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참 많은 것을 깨닫고 도전했다. 20년차 배우에게 더 이상의 도전은 어떤 게 있을까. 그 20년을 버텨온 비결은 새로운 도전 때문은 아닐까. 그에게 20년 배우 생활의 비결을 물었다.
“배우로서 버릴 것 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이다. 날 고집하고 날 주장하면 정말 썩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때때로 무섭다. 정말 열고, 다 버리고, 잘 버티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촬영장을 지키는 거대한 산’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년 전에는 저밖에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제가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격려가 없었다면 ‘엄마’ 캐릭터를 이해하고 액션을 할 수 있었겠나. 그런 것들이 제 공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걸 이젠 안다.”
↑ 사진제공=별만들기이엔티 |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도 못 버린 게 정말 많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20년차 배우에게서 참 생소한 답을 들었지만, 소위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20년이라는 햇수가 무색할 만큼 아직도 배우로서 새로운 걸 갈망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천상 배우’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았다.
“20년간 쌓이는 건 ‘묵은 때’밖에 없는 것 같다. 정말 다 내다 버렸다. ‘무소유’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아직도 못 버린 게 정말 많다. 저는 버렸다고 생각하는데 버리지 못한 것도 있는 것 같더라. 버리지 못하면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연기를 못하게 된다. 저는 끊임없이 조심하고 버릴 거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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