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최준용 기자] 배우 윤계상은 웃음이 많은 사람이다. 개구쟁이 같은 그의 천진난만함은 곁에 있는 사람까지 덩달아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먼저 다가서는 배려와 여유, 그는 인터뷰 시종일관 서글서글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와 마주한 이유는 지난 24일 개봉된 김성제 감독의 영화 ‘소수의견’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지난 1999년 아이돌 그룹 god로 데뷔, 이제 연예계 생활 17년차를 맞이한 그이지만 신인배우 같은 겸손함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언론 시사회를 통해 다행히도 영화를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아서 감개무량해요. 최근 극장가가 메르스 여파도 있고 위축된 상황인데 우리 영화를 한 개 관이라도 꾸준히 걸어주셨으면 해요. 교차상영은 말고요. 하하.”
↑ 사진=정일구 기자 |
“감독님이 기득권층에 겁 없이 덤비는 윤진원의 모습이 저와 정말 닮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저는 솔직한 게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어른이 되지 않은 모습 그런 것이 정말 좋더라고요. 앞서 했던 작품들도 그런 이유로 출연 결정을 한 것이죠. 완성되지 않았지만, 점차 성장하는 진짜 모습 말이죠. 이런 것에 끌렸어요. 사실 윤진원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어른이 되면 책임져야 할 부분과 생각이 많아지잖아요. 현실 속에서 내가 하지 못한 것들을 영화를 통해 이루는 것 같아요. 영화에서라도 할 수 있으니 행복한 마음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감독의 생각이 많이 들어간 작품을 하고 싶었거든요. 저 역시 흥행이 되는 작품을 하고 싶지만, 배우로서 진중한 모습과 목소리를 내고 싶었죠. 그런 면에서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소설가 손아람이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이미 2년 전 촬영을 이미 끝마쳤다. 하지만 배급사가 변경되고, 개봉시기가 미뤄지는 등 개봉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 일부에선 민감한 정치적 이슈가 담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이유로 배급사가 변경되지 않았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배우로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부분, 당시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 사진=정일구 기자 |
“저 역시 그 부분에 대해 감독님께 확답을 듣고 들어갔어요. 감독님이 절대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하시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죠. 현실하고 비슷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 현실과 겹치는 부분을 찾으신 것이죠. ‘용산참사’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고를 은폐하려는 국가와 싸우는 한 아버지의 부성애에 대한 얘기죠.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어떤 행동과 입장을 취해야하는지 한번쯤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진실을 은폐하려는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힘을 모으는 진원과 대석을 연기한 윤계상과 유해진은 이번 ‘소수의견’을 통해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췄다. 대학 시절, 불의에 항의했던 피 뜨거운 운동권 출신이지만 젊었던 그 때의 드높았던 정의감은 버려둔 채 이혼 전문 변호사로 살아가던 대석은 법이 외면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진원과 함께 정의의 편에 선다. 극중에서 진원의 가장 큰 조력자이자 동료가 되어주는 대석을 연기한 유해진은 실제 현장에서도 선배로서 윤계상의 연기에 조언과 힘을 실어주는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유)해진 형은 실제 촬영 현장에서 장난을 치거나 가볍지 않아요. 정말 신중하고, 철저하게 모든걸 준비하시죠. 영화 속으로 보여지는 게 모두가 다 애드리브예요. 해진 형을 만나 정말 좋았아요. 서로를 100% 신뢰한 것 같아요. 암암리에 서로 약속한 그런, 교묘한 것이 좋았죠. 해진 형은 끊임없는 시도를 해요. 패턴이 늘 똑같지 않죠. 그 분에게서 언제 대사가 나올지 모르고,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예상하지 못하죠. 하지만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거나, 분위기를 깨진 않아요. 어떤 상황에서건 상대방에 어울리는 대사 애드리브를 펼치시죠. 듣고만 있어도 연기가 늘 수밖에 없어요. 타이밍을 조절할 수 있는 건 베테랑 아니면 못하죠. 제 대사가 튀어나올 수 도 있는데 그 호흡을 자신의 흐름으로 끌고 올 수 있단 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의 케미는 처음부터 수월하게 이뤄진 건 아니었다. 현장에서 김성제 감독은 농담 한번을 하지 않는 굉장한 집중력의 소유자로 그는 끊임없이 뭔가를 수정하며 열중했다. 윤계상도 처음으로 연기하는 법정물 변호사 캐릭터 연구로 예민한 상태였다. 이런 분위기에 유해진의 적응은 쉽지 않았다. 앞서 유해진은 제작발표회에서 윤계상과의 호흡에 대해 “처음엔 좀 불편했다. 서로 낯을 가리는 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 사진=정일구 기자 |
“감독님도 그렇고, 저도 법정 드라마라 긴장을 많이 했어요. 윤진원스러운게 뭔가에 대해 많은 고민도 했고요. 그런 두 사람이 붙으면 음침하죠. 그런 사이에 해진 형이 왔는데 처음에 낯을 가리시더라. 자동차에 함께 타고 이동하는 신이 있었는데, 카메라 세팅 문제로 장시간 대기하게 됐죠. 결국 감독님과 해진 형, 저까지 셋이서 술을 먹게 됐어요. 3~4시간가량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서로에게 한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그때 해진 형에게 내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나 봐요. ‘이 친구가 열심히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신 듯 해요. 그때부터 어색함이 없어졌고, 그게 좋은 호흡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소수의견’은 윤계상과 유해진 뿐만 아니라 이경영, 김의성, 권해효, 장광, 김옥빈 등 연기파 배우들이 앙상블과 협업으로 팽팽한 법정 공방전을 채웠다. 공격과 수비가 교차되고 예상치 못한 반전 속 이들의 연기는 재비를 배가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정말 선수들인 것 같아요. 현장에서의 그 집중도는 놀랄 정도이죠. 법정신을 연극 무대처럼 연기했어요. 감독님이 날짜를 정해줬지만 콘티도 없었고, 알아서들 하시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굉장한 압박감으로 작용됐죠. 그러니 연습을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근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고 누구하나 몰입감을 깨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할에 녹아들었죠. 정말 리액션을 저도 모르게 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훌륭한 배우들과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재미있게 찍은 것 같아요.”
↑ 사진=정일구 기자 |
그는 공교롭게도 ‘소수의견’과 개봉 시기가 비슷한 ‘극비수사’에 대한 언급을 했다. 그와 호흡을 맞춘 유해진이 두 작품 모두 주연으로 활약했기 때문. 이로 인해 윤계상은 ‘소수의견’ 쫑파티 이후 유해진의 얼굴을 통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해진 형과 많이 친한데 ‘극비수사’는 보지 못하겠더라고요. ‘소수의견’에 대한 의리 때문이죠. 예전에도 제 작품과 비슷한 타이밍에 개봉되는 영화들을 보지 못했어요. 미안하기도 하고, 예전에 부모님이 설렁탕집을 운영했는데 그 3~4년간 다른 곳에서 설렁탕을 사먹어 보지 않았어요. 배신하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두 영화에 모두 출연한 해진 형은 오죽하겠어요. 하하.”
윤계상은 ‘극비수사’ 속 유해진의 연기 모습에 대해 무척 궁금해 했다. 그는 유해진이 ‘극비수사’에서 특유의 웃음기를 쏙 뺀 진지한 연기를 했다는 말을 듣고 감탄했다.
“배우에겐 결이 있어요. 내가 해진 형처럼 해도 그 모습을 표현할 수 없듯이 배우의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실 유해진 하면 코믹이미지가 강하죠. 해진 형도 그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볼 때 ‘극비수사’에서 해진 형은 그런 고민을 해결했고, 성공한 것 같아요. 배우의 결을 찾으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죠. 전 아직 어리고, 모든 면에서 부족해서 찾고 있는 중입니다. 참바다씨(유해진)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하하.”
최준용 기자 cjy@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