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내리고 돌아서는데, 문뜩 ‘나무 아닌 숲을 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장면 하나 하나를 보면 명품일지 모르나, 한 데 모아놓으니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나의 이야기라기 보단, 몇몇 작품의 하이라이트 신을 모은 듯, 마치 ‘갈라’를 보는듯하다. 화려하고 웅장한 장면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지니, 혼을 쏙 빼앗긴 듯 정신없이 시간은 흘러가지만 고전 특유의 깊은 여운은 없다.
올해 최대 기대작 중 하나인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지난 9일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올렸다. 2003년 첫 선을 보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프랑스판 뮤지컬의 아시아 초연작. 이미 한국에서는 영화를 통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아온 명작이라 개막 전부터 대대적인 관심이 쏠렸다.
막이 오르니 예상대로 화려했다. 작품 자체가 가진 아우라는 기본, 바다‧주진모‧서현‧마이클리 등 라인업 또한 기대에 부합하는 신선함이었다. 웅장한 세트와 눈이 부시는 의상들, 기교가 필요한 고난이도 노래 그리고 춤사위까지.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강렬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 ‘하나의 숲’을 이루는 데는 실패한 모양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남북전쟁과 전후 재건을 배경으로 한다.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바다, 서현)가 한 시대를 헤쳐 가는 이야기 속에 전쟁과 사랑, 자유 등을 그린 12년에 걸친 대서사시. 이 같은 장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압축해 2시간20분의 무대에 표현한다는 건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다. 조각 조각을 잇는 ‘이음새’의 역할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품은 남북전쟁을 비롯해 전쟁, 무도회 등 풍성한 볼거리로 중무장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복잡한 드라마를 무리하게 압축한 채 장면에만 공을 들이다 보니 스토리는 어딘가 엉성해졌다. 장면만 두둥실 떠도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이 장면들의 전환이 매끄럽지 못하니 몰입도는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그래도 배우들의 열연만큼은 칭찬할 만하다. 바다는 콧대 높은 천방지축 소녀에서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해가는 캐릭터를 무난하게 연기했다. 가창력 역시 나물랄 데 없다. ‘멜라니’ 김보경 역시 ‘믿고 보는 배우’다운 안정감을 보여준다. 뮤지컬 첫 데뷔인 주진모는 연기 면에서는 비교적 자연스러웠지만 대사 전달력 면에서는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함에도 불구, 정작 중요한 ‘뿌리’가 흔들리는 듯한 인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편,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내달 15일까지 ‘예술에 전당’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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