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는 1년 전 쯤, 영화 ‘허삼관’을 연출하기로 하면서 배우 하지원과 ‘독대’했다. “절세미녀 허옥란은 하지원뿐”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지원은 솔직히 거절을 위해 나간 자리였다. 배우이자 감독인 하정우가 만나자고 하는데 누굴 통해서 거절하는 것보다 대면하고 말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하정우는 어떻게 만들겠느냐는 하지원의 질문에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절세미녀 허옥란은 하지원이라는 배우뿐”이라는 말로 여배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정우는 또 “자기 옷이 아닌 것 같다”는 하지원에게 계속 “완벽한 허옥란의 옷”이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고, 결국 하지원이라는 배우를 프로젝트에 합류시켰다.
하정우와 하지원, 두 ‘하대세’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22일 취재진을 만난 하지원은 “참여하길 잘했다”고 털어놨다. 촬영 기간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기황후’로 10개월간 주 5일 거의 밤을 새워 녹초가 되고,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모를 정도로 비몽사몽 했는데 힐링 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정우가 숙소에서 만들어주는 밥도 맛있게 먹었고,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는 세 아들 역의 어린이 배우들과 즐겁게 지내 좋았다. 물론 극 중 둘째 이락이가 “근데 누나! 누나 나이가 저희 엄마와 같아요”라고 한 말에 ‘멘붕’을 느끼기도 했지만, 일락이가 “누나는 시간 여행자”라고 말해줘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원과 하정우의 만남은 필연 혹은 운명인 것 같기도 하다. 두 사람은 영문 이니셜이 HJW으로 같다. 특히 둘 다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원은 “둘다 가명인데 정말 신기한 인연”이라고 웃었다.
한 가지 더. 하정우는 하지원을 만나 “(연출 데뷔작인) ‘롤러코스터’ 처럼은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단다. 자신과 친한 이들과 즐거운 코미디만 만들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많은 기사와 댓글을 보는 하정우는 관객들의 취향과 호불호를 분석했다. 또 카메라 뒤가 아닌 카메라 앞의 하정우를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번에는 감독이자 배우로 나서는 이유다. 투자배급사 NEW도 하정우가 ‘롤러코스터’로 한 작품을 끝낸 뒤, 만나게 돼 좋다는 반응이다. 영화를 향한 자신감이 넘친다는 다른 말이기도 하다.
한편 ‘허삼관’은 돈 없고, 대책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뒤끝만은 넘치는 허삼관(하정우)이 절세미녀 아내 허옥란(하지원)과 세 아들을 둘러싸고 일생일대 위기를 맞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소설가 위화의 대표작 ‘허삼관 매혈기’가 원작이다. 내년 1월15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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