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안녕하세요, 배우 태인호입니다. 제 말투에서 부산 사투리가 좀 묻어나오지요? tvN 금토드라마 ‘미생’에서 한석율(변요한 분)을 깐족거리며 괴롭히는 성 대리는 완벽한 서울 사람 같은데 의외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성 대리가 진짜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면 큰 오해입니다. 시청자들의 반응 잘 아냐고요? 그럼요, 덧글 많이 봅니다. 명치 때리고 싶다는 반응도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저 만나시고 명치 때리시면 안 됩니다. 저 생각보다 착한 사람입니다.
↑ 사진=이현지 기자 |
◇‘미생’, 제게는 예상치도 못한 작품
저는 지금 ‘미생’의 성 대리가 많은 사랑, 아니 그 반응은 사랑이 아니니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에 신기할 따름입니다. 맨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 ‘너무 극화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다른 설문 조사에서 보니 가장 공감 가는 상사 1위가 성 대리라는 걸 보고 우리나라 직장인들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동생도 지금 한 회사에서 대리인데, 퇴근하고 맨날 술을 마시는 걸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미안하다, 동생아.(웃음)
이런 얘기를 하면 좀 웃길까요. 저는 성 대리 대본을 읽었을 때에는 좀 불편했습니다. 제게는 잘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고요. 지금 웃으시는 이유 압니다. ‘누가 봐도 성 대리인데’라는 생각 하시는 것도요. 그런데 진짜입니다. 원래도 강 대리(오민석 분) 역을 제안 받았고요. 성격 자체도 강 대리랑 비슷합니다. 리딩 끝나고, 저는 감독님께서 성 대리 역을 안 맡기실 줄 알았는데 웬걸, 바로 성 대리 역으로 연락이 오는 겁니다.
감독님 눈에는 뭔가 보이셨나 봅니다. 처음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물어보니 감독님 대답이 더 재밌더라고요. ‘그냥 착하게 생겨서’. 무슨 뜻인고 하니, 이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성 대리 역을 맡았으면 싶으셨다는 겁니다. 사실 성 대리는 한석율에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괴롭히는 구석이 있잖아요. 그래서 계속 고민을 해왔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아’하고 감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저를 그럴 만한 사람으로 보고 있으니, 원.(웃음) 그만큼 저 잘 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사실 ‘미생’에는 정말 기대를 안 하고 있었습니다. 계속 영화 작업을 하다가 드라마 미팅은 다섯 번 정도 했는데 번번이 안 됐거든요. 그래서 스스로도 ‘나는 드라마와 안 맞나보다’ 싶었던 차였습니다. 더욱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성 대리 역을 맡게 돼서 더 기쁘죠. 그리고 성 대리는 제가 해보지 않은 역할이라서 더 그렇고요. 그동안은 내성적이고, 말이 별로 없고, 부드러워 보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연극, 단편 영화, 독립 영화 등 죄다 그런 역할을 했고요.
그런 상황에서 보면 성 대리 역할을 주신 게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해보지 않은 역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성 대리 역은 제게 일종의 도전, 모험이 됐죠. 화제가 되는 드라마에서 이런 역할을 맡는다는 것도 그렇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역할을 소화하게 된 것도 그렇고. 여러 모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형 따라 발 딛은 연기…‘재밌다’
‘미생’에서 천 과장으로 출연 중인 박해준 형이 제 사촌 형입니다. 명절마다 보고, 가끔 만나는 가까운 사이에요. 하루는 해준이 형이 전화해서 대뜸 ‘너 미생 한다며’하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드라마 할 것 같아’라고 말했더니 형이 ‘야, 나도 해’라고 해서 엄청 웃었습니다. 드디어 우리가 현장에서 만나는 구나 싶더라고요. 그동안 한 번도 기회가 안 되다가 말입니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친구 따라 연습실을 갔는데 그들은 열심히 하고 있었겠지만 제가 봤을 때에는 ‘그냥 노네?’ 싶더라고요. 막연하게 노는 것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제게는 그게 좋아보였습니다. 그렇게 연습실을 가게 됐고, 입시 준비를 하게 되고 연극영화과를 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처음에는 ‘노니까’ 싶어서 연극을 하게 됐는데, 지나고나니 비로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고민해야 할 것도, 공부해야 할 것도, 알아야할 것도 정말 많더라고요. 그 때부터 연기에 대한 ‘진짜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연기를 계속 하면서 ‘내가 큰 꿈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고요. ‘연기를 굳이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그냥 연기는 재밌었습니다.
◇부산 토박이가 서울 연기자로 정착하기까지
저는 부산에서 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그런 제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된 건 다른 사람,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에 오게 된 겁니다. 부산이 사실 연극하는 분들이 서울에 비해서는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열 명의 배우가 있다면 일곱, 여덟 명은 다음 연극에서 또 호흡을 맞추게 되는 거죠.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다보니 ‘다른 사람’과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대학로에서도 연기를 해보고 싶고요. 대학 졸업하고 극단에 다니다 반복되는 생활에 회의감이 조금씩 들 때 쯤 서올 행을 결정했습니다. 그냥 ‘가야겠다’ 싶어서 휙 왔습니다.
물론, 제 서울 생활은 다른 무명 배우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아르바이트의 연속이고, 틈틈이 오디션 보고, 사진 돌리러 다니고. 생활은 힘들긴 했지만, 재밌었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성과들이 계속 나왔었고, 사람들도 알아가고, 그런 인맥들이 또 다른 성과를 만들어내서 (그런 커리어들이)점점 ‘뭉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누구나 그렇듯이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 생각이 제가 보내온 많은 시간들을 헛되게 만들 만큼 결코 크지 않았습니다,
↑ 사진=이현지 기자 |
나름대로는 계속 꾸준히 작업을 해왔고, 단역에서 조연으로 비중을 늘려오기도 했습니다. 후배들도 가끔 ‘비결이 뭐냐’고 묻습니다. 그럴 때 마다 저는 ‘그냥 해라’ 한 마디 합니다. 사진 돌리러 다니고, 오디션 보고, 연락 안 오면 전화 한 번 더 하고, 또 다시 찾아가고. 할 것을 항상 찾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했던 게 지금까지 쌓인 것을 느낍니다. 그 과정에서 회사를 만났고, 그렇게 안 했으면 ‘미생’도 못 만났을 것 아닙니까.
◇뻔하지만 당연한 꿈…‘롱런 배우’
모든 작품이 다 기억에 남지만, 최근 선보인 영화 ‘영도’와 데뷔작 ‘하류인생’이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촬영이 정말 강행군이었는데, 힘든 만큼 잘 나온 것 같아서 좋습니다. 이제 곧 개봉하는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조연이라고 올려 지긴 했는데 그냥 인물 순서상 조연이 된 것 같고요. 아직 저도 분량을 확인해보지 못해서 조연인지, 뭔지 확실하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웃음)
아, 언젠가는 한석규 선배님과 연기 해보고 싶습니다. 한석규 선배님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연기를 해왔습니다. ‘초록물고기’라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숨을 안 쉬고 있는 저를 발견했거든요. 그만큼 제게 에너지를 크게 준 영화였습니다. 한석규 선배님이 나오는 영화에 단역으로라도 어떻게 출연해보고 싶습니다. 눈 마주치면, 생각만 해도 ‘크으’.
최종 목표요? 계속 연기하는 것입니다. 롱런. 영화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연극에서든 연기를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결혼도 하게 되겠고, 아이도 낳고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롱런이 가장 쉽지만 어려운 말인 건 알지만, 앞으로도 즐거운 일이 많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건 좋은 징조 아닐까 싶습니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