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남우정 기자]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국민 사위’로 불리던 사람이 이렇게 확 바뀔 수 있을까. KBS2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서 우직하고 사람 좋은 고민중 역으로 출연해 ‘국민 사위’라는 닉네임까지 얻은 조성하가 성정체성 고민 끝에 여자가 된 버나뎃으로 변했다.
모든 분장을 내려놓고 인터뷰 자리에서 만났을 때도 조성하는 외형만 남자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모습이나 유난히 많이 사용하는 손동작, 작은 말투도 행동 하나하나는 버나뎃 그 자체였다.
◇ “‘프리실라’는 저에게 노는 시간”
↑ 사진제공=포토그래퍼 심주호 |
“2005년 ‘황진이’를 시작으로 방송을 한 지 10년 정도 됐다. 그 이후로 계속 바빴고 쉴 틈이 없었다. ‘왕가네 식구들’을 끝내고 좀 쉬고 싶었는데 ‘프리실라’를 만났다. 내가 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작품 자체가 재미있고 많은 분들이 보면 유쾌하고 힐링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하는 것 관객들과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하게 됐다. 제가 정한 노는 타임이 바로 ‘프리실라’다.”
‘논다’라고 표현은 했지만 무대에 매일 오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프리실라’는 노래, 연기, 춤은 물론 분장까지 신경 써야 할 것 투성이다. 여기에 트랜스젠더 역할 자체부터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망설이고 2개월은 도망 다녔다. 다들 일찍 캐스팅이 됐고 완전 선수들이다. 전 실력도 없는데 준비도 안 된 상태다 보니 걱정이 많았다. 특히 여자 역할은 생각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이입 시키려니 한 번에 잘 안 들어가더라. 진짜 여자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연습 동안 하루에 2~3시간밖에 못 잤다.”
다른 캐릭터들이 여장만 하는 남자라면, 버나뎃은 트랜스젠더로 성이 바뀐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성하는 버나뎃을 아예 여자라는 전제조건에 두고 그려나갔다. 극 중에서 쇼를 할 땐 화려한 의상을 입긴 하지만 평소엔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하는 행동도 천상 여자였다.
“트랜스젠더 역할이지만 일부러 그분들이 하는 쇼나 직접 만나는 것을 피했다. 트랜스젠더를 흉내내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냥 여자로 표현이 되어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밥과 함께 있는 장면에서 따뜻하고 사랑스러워 보여야 했다. 나를 여자로, 사랑스럽게 봐주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했다고 봤다. 손 끝하나부터 몸의 자태, 골반의 움직임, 발끝의 모양, 여성들의 제스쳐, 속눈썹의 움직임까지도 신경을 썼다.”
◇ “여장하면서 여자들의 삶이 녹록치 않다는 걸 알았다”
“저에겐 여성스러운 모습이 전혀 없는데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셋 중에선 제가 가장 여성스럽고 나이도 있으니 인생의 굴곡을 표현하는 게 다른 것 같다. 김다현 버나뎃은 정말 예쁘고 개성이 넘치고 고영빈은 키가 크다보니 그에 맞는, 푼수같은 버나뎃으로 표현했다. 같은 캐릭터지만 세 명이 다 다르게 표현하니 좋은 것 같다.”
특히 조성하는 같은 배역을 맡은 고영빈, 김다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제가 안무나 노래에 힘들어 하니 고영빈과 김다현이 많은 도움을 준다. 그래서 그나마 무대에 설 수 있는 것. 늘 감사하는 동생 동료다. 앙상블 친구들도 항상 도움으 준다. 제 얼굴만 봐도 먼저 와서 대사를 맞춰주고 노래를 해준다. 덕분에 쉬지 않고 연습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힐을 신고 노래와 안무를 해낸다. 여성스러운 몸을 표현하기 위해 왁싱의 고통도 참아내고 있다. 조성하는“하루라도 왁싱을 안하고 무대에 오르면 창피하다”라고 했지만 여장을 통해 여심을 깨닫기도 했다.
“여장을 해보니 여자들의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머리, 피부, 제모, 자세, 목소리까지 세심하게 신경써야 하더라. 그걸 보며 남자로 태어난 게 감사하다. 여자는 복잡하고 스스로에게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더라. 그래서 대단하고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느꼈다. 남자가 여자를 배려한다는 게 그저 양보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야 여자에게 어떤 마음의 배려가 필요한 지 알겠더라.”
◇ “‘프리실라’가 내 인생의 마지막 뮤지컬”
“조성하의 캐릭터 변신이 어디까지 가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안 해보고 자신 없는 캐릭터들만 들어오더라. ‘왕가네 식구들’할 땐 우는 걸 못해서 매회 울었다. 못하는 걸 해내려고 하니 스스로 얼마나 볶아야 하는지 모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번 작품으로 깜짝 놀라신 분들도 많고 다음 행복에 대해 걱정하기도 한다. 여배우들에게 욕먹겠지만 영역은 확장됐다고 생각한다.(웃음) 이미지 변신에 개의치 않는다. 굳어지는 것을 경계할 뿐이다. 새로움과 신선함으로 다가온다면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 있고 열심히 변해야 한다고 본다.”
연기자를 꿈꾸는 딸에게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걱정을 많이 했지만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봤고 조성하는 자신의 도전정신을 인정받은 것 만으로도 만족감을 보였다. 하지만 뮤지컬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본인의 신념이자 무대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프리실라’가 조성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작품이다. 준비된 사람이 그 일을 해야된다고 생각한다. 전 뮤지컬을 준비한 사람이 아니고 버나뎃이 노래, 춤이 부족해도 관계가 없는 역할이니 캐스팅 했을 것이다. 좀 더 전문화 된 일을 한 사람이 하는 게 맞다. 관객과 함께 하는 예술이고 눈속임이 없는 순수한 마당이다. 진실성이 결여되면 절대 용남할 수 없는 공간이다. 관객의 호
스스로 마지막을 정해놨기 때문에 조성하는 앞으로 남은 무대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온 힘을 쏟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으로 후배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준 조성하가 또 얼마나 파격적인 변신과 도전을 이룰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남우정 기자 ujungnam@mkculture.com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