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 둘인 집안에서 딸 노릇을 했다는 김남길(33)은 “아줌마스러운 면이 있다”고 했다. 그간 작품에서 선보인 진중하고도 고독한 모습은 “실제 내 성격과 거리가 있다”며 웃어보였다.
6일 개봉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석훈 감독)은 그래서 “더 연기하기 편했다”고 한다. 나사 빠진 김남길의 모습은 새롭다. 고려 무사 출신 산적 두목단 ‘장사정’ 역을 맡아 반전 매력을 선보인 그다.
김남길은 “‘해적’은 처음부터 약간 제외돼서 묻어가는 전략을 세웠다”며 “개인적으로 연기에 힘을 빼니까 색다른 재미가 생기더라”고 했다
‘해적’은 조선의 국새를 삼켜버린 고래를 둘러싸고 해적과 산적, 개국 세력이 벌이는 갈등과 모험을 그린 액션 어드벤처물이다. 제작비 150억원(순제작비 130억원)이 투입됐다.
앞서 개봉한 ‘군도’나 ‘명량’과 개봉 시기가 맞물려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스로 “최약체”라고 자평하는 전략을 쓰면서 가족 오락영화를 표방했다. 카피 역시 거창하지 않다. 그냥 ‘시원하고 유쾌하게 즐겨라’다. 총칼이 난무하는 잔인한 장면도, 수위 높은 욕설도 없으니 온 가족 영화로는 안성맞춤이다. ‘나쁜 남자’에서 ‘웃긴 남자’로 돌아온 김남길을 만났다.
-올 여름 극장가는 4대 메이저 배급사의 총성 없는 전쟁이다.
“‘명량’ ‘군도’와는 소재가 다른 영화다. 연령층도 낮고 넓다. 우리 영화가 공개 전부터 최약체로 평가절하되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앞선 영화들과 소재도 다르고, 감독 역시 ‘인디아나 존스’ 같은 어드벤처 장르로 생각했다. ‘해적’은 가족이 영화다. 제작 단계부터 말이 많았다. 차라리 약간 제외돼서 묻어가는 전략을 세웠다.”
-요즘 한국 영화들 너무 잔인하다. ‘해적’은 그런 면에서 반갑기까지 하다.
“세상이 하도 험하다 보니 관객도 관계자들도 소재 자체부터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해적’은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사실 욕설, 비방이 들어가면 재미는 있다. 감독님은 그걸 자제시켰다. ‘원론적인 것에서 벗어난 애드리브는 절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영화는 130억원 넘는 순제작비 중 상당 부분이 고래 CG에 들어갔다. 어드벤처를 표방해 물 위에서 싸우고, 국새를 삼킨 고래도 상대해야 하니 스케일이 크다. 길이 32m의 초대형 해적선 두 척에 선박 1척까지 총 3척을 직접 제작했다. 김남길은 “‘CG 안 되면 다 같이 죽는 거 알지?’ 하고 여러 번 닦달했다”며 “오죽하면 고래 빼면 안 되겠냐’고도 했다“며 웃었다.
-CG가 이 영화의 성패(成敗)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기대치와 맞아떨어졌나.
“이번 CG팀과 세 작품째다. ‘미인도’에 이후 함께 했다. CG 걱정을 많이 했다. 오죽하면 ‘고래를 빼면 안 되겠냐’고도 했다.(웃음) 촬영이 끝난 후 CG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너무 궁금했다. 격려도 할 겸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체계적으로 보여줬다. 사실 배우는 CG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배우와 스태프 간의 신뢰 문제다. CG팀에 전화해서 ‘CG 안 되면 다같이 죽는 거 알지?’ 하면서 스트레스도 줬다. 8월 개봉이 가능했던 것은CG팀의 고생 덕분이다. 한 번은 아이스크림을 사주려고 했더니 직원이 250명이라더라.(웃음) 2층부터 4층까지 가득 메운 직원들이 모니터만 보면서 작업하고 있었다. CG 논란이 없는 것만 봐도 그런대로 잘 빠진 것 같다.”
이 영화는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에 비유되며 관심을 모았다. 김남길이 ‘잭 스페로우’ 조니 뎁처럼 나올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이석훈 감독은 “‘캐리비안의 해적’보다 ‘인디아나 존스’에 더 가깝다”고 소개했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처럼 나올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콧수염이 나오긴 한다.(웃음) ‘해적’이란 소재 때문인 것 같다. 감독님은 ‘캐리비안의 해적’보다 ‘인디아나 존스’ 느낌을 원했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해적 영화 중 성공 모델이다. 거론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영화는 웃음 코드부터 다르다. 감독님이 ‘캐리비안의 해적’ 보다 더 재밌다고 폭탄 발언을 했는데, 배우들이 놀라긴 했다.(웃음) 근데, 감독은 그런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큰 작품을 이끌어가는 선장으로 자신감은 필요하다.”
-‘잭 스페로우’ 캐릭터를 참고했나. 했다면 어디까지?
“캐릭터를 참고했다. 잭 스페로우가 가진 유쾌함은 참고하되 한국적인 정서를 담았다. 조니 뎁의 색깔을 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변신’이다. 반응이 갈릴 듯 하다. 특히 여성 팬들은 조금 실망할 수도.
“원래 남성 팬이 많다.(웃음) 정극이나 무거운 연기를 해도 그 속에서 약간 비틀어 장난기를 섞어야 재미가 있다. 어떤 현장에서든 그렇게 해왔다. 생각해보니 작품 속에서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힘을 빼기 시작하니 연기에 대한 색다른 재미가 생겼다. 그런데 후속작도 예전처럼 무거운 캐릭터다.(웃음)”
-코믹 캐릭터 ‘장사정’이 실제 성격에 더 가깝다니 의외다.
“아니다.(웃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데, 대중만 모른다. 실제 성격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 연기하기 편했다. 그런데 코믹 연기는 정말 어려운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냥 웃기려고 들면 관객들이 안다. 그 포인트를 찾으려고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장사정’이 갖고 있는 캐릭터가 밝고 까불거리는 거였다. 그 중심을 감독님이 잡아줬다. 앞에선 진중한 느낌을 보여줘 방심하게 만들다가, 뒤에선 허당기로 웃음을 줘야 했다. 내 의외성을 관객들에게 많이 보여주려고 했다. 웃음이 야박해진 요즘에 우리 영화는 단순한 것, 유치한 것, 원초적인 것들에서 웃을 수 있는 코미디다. 시간이 지나서 연기적인 부분에서 지금보다 더 많이 내려놓게 된다면, 짐캐리 같은 연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
손예진은 이번 영화가 첫 사극이다. 검술과 와이어 액션을 선보이는데 멋지다. 개성파 조연 배우들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열애설 때문일까, 해적단 두목 ‘여월’ 손예진과 극중 ‘썸 타는 장면’은 몰입이 확 된다.
-손예진과 러브라인이 적다. 아쉽지 않았나.
“오히려 너무 많으면 가볍게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냥 오락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로맨스’ 정도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여월’(손예진)과 같이 했던 장면은 관객들이 쉴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열애설 때문인지 ‘썸 타는’ 장면에서 몰입이 잘 되더라.
“그 부분에서 많이 웃어주셨다. 예진이와 두 번째 작품인데,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번에는 장르가 다르다.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다. 현장에선 서로 장난도 많이 치고 배우들과도 잘 어울렸다. 나도 ‘장사정’의 모습이 있고, 손예진도 ‘여월’의 모습을 갖고 있다. 실제로도 털털하고 시크한 모습들이 많다. 잘 살릴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출연을 먼저 결정하고 손예진에게 이 작품을 강추했다고 들었다
“‘여월’이란 캐릭터와 비슷한 점이 많아 추천했다. 사극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더구나 청순가련 이미지의 손예진이 주는 효과가 클 것이라 생각했다. 욕심이 많은 친구여서 액션도 잘 소화할 것이란 믿음도 있었다. 실제로 그날 촬영을 마쳐도 액션팀을 따로 불러 연습을 하더라. 완벽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스타일이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열정을 갖고 완벽하게 해내려한다. 처절하게 한다기 보다 편하게 임한다. 손예진도 예전보다 자신이 많이 유해졌다고 하더라. 이런 것들이 연기에도 녹아드는 것 같다. 또, ‘상어’에서 아쉬웠던 것을 ‘해적’에서 해소하고 싶었다.”
-뻔할 것 같던 유해진의 웃음이 이번에도 통했다.
“배우들도 보면서 감탄했다. 독보적이다. 혼자 튀려고 하는 배우가 없어 호흡이 좋았다.”
배우가 아닌 인간 김남일은 어떤 모습일까. 그 역시 “인간 김남길, ‘어떻게 잘 살까’를 고민한다”고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전 보다 유해지는 자신을 느낀다”고도 했다.
-4년 만의 스크린 컴백작이라 흥행 스코어에 대한 부담은 없나.
“예전엔 강박이 심했다. 요즘엔 덜 하다. 좋은 배우는 스크린 성적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성적이 저조해도 호평을 받기도 한다. 스스로 ‘연연해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어떤 영화든 잘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잘 만들면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눈길도 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진 건 있다.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작품 외에 요즘 관심사는 뭔가.
“인간 김남길이다. ‘어떻게 잘 살까’를 고민한다. 연기는 한 달, 일 년을 한다고 해서 확 달라지진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면서 깊어진다. 20대 후반엔 중후한 느낌을 내기 위해 흉내도 내봤다. 30대인 지금도 40대가 넘어야 그 느낌을 구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전보다 유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연기 이외에 관심이 흐르는 곳은 어딘가.
“소소한 주변에 관심이 많이 생긴다. 하고 싶은 것들을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하고 싶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집에서 편하게 오락도 하고 싶고… 그런데 신발을 제대로 벗어놓지 않고 오락을 하면 어머니가 잔소리를 한다.(웃음)”
-스타 아들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은 어떤가.
“부모님은 내가 TV에 나오면 그냥 웃으신다. 눈물 흘리고 있는 데도 웃기다고 웃으신다. 집에 딸이 없다. 아들만 둘이다. 동생이 무뚝뚝하다보니 내가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드리려 했다. 애교도 부리고 말도 많이 한다. 지금도 일하고 새벽에 들어가면 어머니께서 내 방에 와서 앉아 계신다. 졸면서 내 이야기를 들으신다. 이런 성향이 현장에서도 나오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독립 할 생각은 없나.
“예전에는 했었다.(웃음) 동생이 결혼하고 나가면서 부모님께서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항상 뭔가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 들어와 있는 게 마음 편하고 좋다.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같이 살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좋다.”
-이런 점들을 팬들은 잘 모른다. 예능도 안해서 본의 아니게 신비주의가 됐다.
“소통은 작품에서 많이 하면 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가벼움과 예능에서 보여주는 가벼움은 괴리가 있다. 아직은 어색하다. 예능에 나가지 않아 ‘해적’에서 보여주는 의외성이 더 돋보일 수 있을 거다. 이번에 ‘런닝맨’에 나가볼까 생각은 했다. 스케줄이 안됐다. 겁도 났다.(웃음)”
-작품 밖에서 김남길의 모습도 궁금하다.
“여행 다니고,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낸다. 여행은 친구들도 지방에 많이 다닌다. 우등버스를 이용하는 편인데, 알아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잘 다닌다. 모자를 쓰는 것 보다 안 쓰면 더 못 알아본다. 평소엔 멋내고 안 다닌다. 동물을 좋아해서 많이 키운다. ‘애기’라고 부르는데, 자고 일어나면 ‘애기들’부터 찾는다.”
-결혼은 늦게 할 생각인가.
“정확하게 모르겠다. 독신은 아니다. 일을 하면 가족에게 신경을 많이 못 쓸 것 같다. 예전에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 했다. 지금은 빨리 안 하기를 잘한 것 같다. 현재는 일도
-제목이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다. 주인공은 누군가?
“누구 하나 주인공이라 할 수 없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산적 영화다’ ‘해적 영화다’는 논쟁을 한다.”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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