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무대 경력 15년. 주변에서는 ‘이제 어려울 무대도 없겠다’고 해요. 하지만 무대는 여전히 긴장되고 떨리죠. 아마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 것 같아요. 게다가 처음 만난 ‘엘파바’라니! 그 어느 때 보다 어렵고 또 특별한 존재.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나의 ‘엘파바’! 오래 기다린 만큼 모든 에너지를 쏟을 생각이에요. 기대되시나요? 하하!”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정녕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이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상상하면 할수록 더욱 그 실체가 궁금했던 김선영의 ‘엘파바’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역시나 기대 이상이다.
김선영은 7개월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옥주현, 박혜나와 함께 엘파바 역에 캐스팅됐다. 하지만 일정상의 문제로 후발 주자로 공연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오디션에 응하기 전까진 참 걱정이 많았다. 중간에 합류함에 따라 감수해야 할 많은 것들에 대한 생각들도 물론 있었다”면서 “언제 다시 공연될지 모르는 ‘위키드’다. 내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후에는 그저 부끄럽지 않게 무대에 오르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이 같은 고민을 끝내는 데는 남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김선영의 남편 김우형 역시 뮤지컬계 소문난 실력파 배우다. 그는 “남편은 언제나 나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라며 “나의 ‘엘파바’를 꼭 봤으면 한다는, 나보다 더 ‘위키드’를 사랑하는 그를 보면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설명했다.
“남편이 공연을 본 뒤 ‘너는 최고의 엘파바야’라고 해줬죠.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그 소리가 얼마나 감격스럽고 힘이 되던지…이번 공연은 그 어느 때보다 외부의 시선, 잣대보다 스스로의 벽을 넘어야 하는 게 관건이었어요. 무엇보다 틈틈이 함께 연습해주고 응원해준 남편에게 인정을 받으니 행복하더라고요.”
절로 흐뭇해지는 미소다. 이어 “혹시 글린다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라고 물으니 “원했지만 너무 과한 변신에 사람들이 놀랄까봐 참았다”며 위트 있게 답했다.
‘엘파바’와의 공통점도 물었더니 “곧은 의지”라고 했다. 그는 “그녀처럼 극단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꾸준히 가려고 한다”며 “용기 있는 기질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랑스러운 ‘글린다’가 바람직한 ‘변화’의 매력을 지닌 캐릭터라면, ‘엘파바’는 누구나 되려고 하는 꿈같은 매력을 가졌어요. 비현실적이지만 사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진실을 말하는 캐릭터죠. 비록 내가 그렇게 완벽한 ‘정의’를 구현하며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내 안에 그런 걸 추구하는 무언가 있다면 무대 위에서 이를 구현해내고 이루는 욕망(?)같은 게 있어요. ‘위키드’를 경험하면서 처음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을 때의 감정을 자꾸 생각하게 돼요. 마법 같은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의 눈은 ‘위키드’에 대한 애정으로 반짝 빛났다. 이런 열정이라면, 중간에 합류했지만 먼저 무대에선 옥주현, 박혜나를 완전히 뛰어넘고자 하는 욕심도 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엘파바’는 어떤 배우가 맡아도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라며 “이들에게 쏟아지는 칭찬에 어떤 영향을 받은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이 역할은 누가 해도 멋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누가 더 잘하나보다 우리가 ‘엘파바’로 인연을 맺은 것에 감사했죠. 사실 배우의 기력을 100%를 보여줄 수 있는, 또 여성 캐릭터가 주역이 되는 공연이 거의 없는데 ‘위키드’를 만난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엘파바’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죠. 오히려 (박)혜나처럼 실력있는 많은 후배들이 이런 좋은 무대를 통해 스타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더 많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서였을까. 애정이 큰 만큼 ‘위키드’의 무대는 김선영에게 그 어느 때보다 떨리는 공간이라고 했다. 그는 “주변에서는 이제 무대에서 떨릴 일이 없겠다고들 하지만 사실 안 그렇다”며 “오히려 잘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더 긴장된다. 아무것도 모르던 신인때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떨림”이라고 고백했다.
“15년간 무대 위에 서면서, 관객들과 만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또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일인지 절실히 느꼈어요. 오히려 점점 더 많이 떨리는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겠죠. 끈임없이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스스로를 한 단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게…그래서 무대에 설 때면, ‘더이상 보여줄 게 없을 때 까지’라는 마음으로 매 시즌을 섭니다. 나의 한계라고 인정이 될 때 과감히 더 이상 그 뮤지컬은 하지 않아요. ‘위키드’는 제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공연이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어요. 하하!”
털털한 말투 속에서도 진지한 고민이, 진정성 있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는 이어 “연습 중 밥을 먹다가 그냥 눈물을 뚝 흘린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동안 거친 캐릭터, 고된 작업 속에서도 유독 힘들기로 소문난 연기들을 주로 해왔던 것 같아요. 죽어라 연습해서 공연을 마치고 나면, 또다시 아쉬움이 남아 더 나를 괴롭히곤 했죠. 어쩔 때는 이런 내가 스스로 괴로워 수시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관객들과 만나는 무대에는 그래도 그런 각오로 서야하는 게 맞는 같아요. 아주 오랫동안 관객들과 만날 거예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기대해주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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