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바야흐로 TV 음악 프로그램은 ‘아이돌 천국’이다. 솔로 가수들에게는 척박한 땅이지만, 목소리 하나로 완성된 꽉 찬 무대를 통해 이 겨울을 따뜻하게 물들이는 감성 뮤지션이 있다. 가수 홍대광(29)이다.
컴백 전부터 V라인과 안경 벗은 훈남 포스로 화제를 모은 그다. 올해로 계란 한 판(!), 서른 살이 된 홍대광에게 “남자는 30대부터 아닌가”라고 인사를 건네자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솔직한 답변이 돌아온다.
1년 넘게 꾸준히 킥복싱과 크로스핏을 하며 체력도 다지고 관리도 해 온 덕분일까. 홍대광의 외모에 대해선 성형 의혹이 불거질 정도로 찬사가 이어졌다. 누가 뭐라 해도 기분 좋은 성과다. 하지만 더 기분 좋은 건 그의 음악적 성숙에 대한 앞다툰 호평이다.
지난달 22일 발매된 EP 앨범 타이틀은 ‘더 실버 라이닝(The Silver Lining)’. 구름에 가려진 태양을 뜻하는 말로 앞으로 다가올 희망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앨범 수록곡이 공통적으로 과거 시점을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마음 속 아픈 곳에 빨간약을 발라주는, 위로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과하지 않은 감정선으로 공감을 유도하며 위로를 건네고자 했습니다.”
타이틀곡 ‘답이 없었어’는 옛 연인과의 아프고 설렜던 추억이 ‘답이 없었어’라는 한 문장으로 솔직하게 표현된 곡이다. 담담하면서도 쓸쓸한, 하지만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기까지 한 감성을 적절히 표현하기 위한 적잖은 노력이 투영됐다.
“세련된 느낌의 미디엄 템포 발라드곡이에요. 특별히 많은 고음을 내지도 않았죠. 제 음악에서 대중이 기대하는 부분을 잘 조합해서 만든 곡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느낌이 좋은 곡들은 확신을 갖고 작업을 진행해갈 수 있는데, 이 곡이 그랬어요.”
녹음과 믹싱, 마스터링까지 전 과정을 함께 지켜봤다는 홍대광은 “숨어있는 디테일 하나하나를 생각하면 흘러가는 음악이 되는 게 왠지 아쉽다”며 “잠들기 15분 전, 1번부터 4번까지 편안하게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당부했다.
“제 스물 다섯은 전역 이후 학교로 돌아가느냐를 고민했던 시기였어요. 음악에 대해서도 고민했죠. 저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헷갈려하는 친구도 있고, 인생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는 친구도 있고요. 사실 인생이란 게, 성공/실패로 나뉘어진 것도 아니고, 실패도 하면서 성공도 하고 점점 좋아지는 것일텐데 그 땐 늘 실패냐 성공이냐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고 그래서 그런 것들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춘기 이후 누구나 겪게 되는 제2의 질풍노도기의 고민에서 출발한 ‘스물 다섯..’은 결코 쉽지 않은 노래다. “1절이 끝나야 비로소 박자를 파악할 수 있는, 어려운 곡이에요.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장되는 게 현실이지만 제 욕심으로 만든 노래입니다.(웃음) 그 때를 추억하고 회상하면서 당시의 불안함, 허무함, 괴로움을 꼭 표현하고 싶었어요. 만들고 나선 물론 만족스러웠고요.”
데뷔 미니앨범 활동을 통해 ‘차트 올킬’, ‘줄세우기’라는 신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금자탑을 쌓은 홍대광. 음반 활동 외에도 OST 작업, 피처링, 듀엣 등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며 그야말로 ‘소처럼 일했다’. 지난 1년간의 활동에 대한 자평도 궁금했다.
“지금까지 대중에 선보인 음원 수를 세어보면 꽤 많아요.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음악을 보여드렸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잘 될 것 같았는데 안 된 노래도 있고, ‘이걸 누가 듣겠어’ 싶었는데 잘 된 노래도 있었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내가 가진 것 중 나만 좋아하는 것도 있고 대중이 좋아해주시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 앨범으로 차트 1위를 기록한 성적은 부인할 수 없는, 그 자체로 기분 좋은 ‘팩트’다. “음원차트 1위는 기적의 보너스였어요. ‘이런 것 한 번 했으니까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 그런 선물 같은 의미였죠. 저처럼 가진 게 많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게 없으면 흔들렸을지도 몰라요.”
홍대광의 진솔한 자기고백이 이어졌다. “사실 전 ‘슈스케’ 때도 처음부터 주목받지 못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사전투표 1위도 두 번이나 해보고. 그런 게 마음에 크게 남아 있어요. ‘내가 전 국민에게 지지를 받았었는데’ 하는 막연한, 아무리 힘들어도 내팽개쳐지지 않는 그런 것? 그리고 나서 앨범 냈는데 1위도 하게 됐고요. 저를 버티게 해주는 고마운 일들이죠.”
분명 놀라운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사흘이 멀다 하고 신곡이 쏟아져나오는 가요계의 LTE급 변화 속도에 홍대광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소위 빵 터지는 ‘한방’이 스스로 다소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주위를 보면 아무래도 부러운 친구들이 있긴 있어요. 초반부터 굉장히 힘찬 걸음으로 뛰쳐나가는 애들도 있죠. 처음엔 그게 마냥 부러웠는데 9개월 정도 지난 지금은 많이 차분해졌어요. ‘나라는 사람은 저렇게 되면 안 되지’ 하는 자기위안도 생기고요.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보람도 느끼고요. 그런 관점에선 지금의 걸음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자분자분.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홍대광에게 왠지 고마움마저 느껴진다. 그의 음악을, 그가 음악을 대하는 진심을 조금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서다.
“처음에 가요계 입문하고는 되게 힘들었어요. 계속 이슈를 터뜨려야 될 것 같고, 왠지 낙오될 것 같고. 엄청난 개성 있는 보이스로 하려는 것을 늘 생각해 왔었는데, 서른을 넘어서 그런지 혹은 나름 2집 가수라서 시야가 넓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진짜 잘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번 앨범도 사실 기대가 되는 게, 적절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구름에 가려진 태양이었다면, 내 음악에 있어서도, 구름이 지나가면서 희망이 보이는 시점이고. 하고 있는 이 음악적인 색깔과 듣고 계시는 분들도 같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참 시기적절한 것 같아요.”
스물 다섯, 방황의 시기를 지나 선택은 바로 음악이었다. 이름 없는 버스킹 뮤지션으로 살아오던 홍대광의 삶에 찾아온 강력한 분수령은 바로 ‘슈스케’였다. 여기에 데뷔 첫 앨범의 성공으로 대중성을 한껏 끌어올린 홍대광은 지난 해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서 수많은 관객들의 호응 속에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폭발적인 호응에 주최측도 응답(!)했다. 매 해 페스티벌 이후 주최측이 선정하는 최고의 루키로 홍대광이 선택된 것. 당시를 떠올리자 웃는 인상의 그의 얼굴에 더욱 화색이 돌았다.
그러면서 홍대광은 “이번 앨범과 또 준비 중인 앨범까지 나온다면 페스티벌이나 공연 레퍼토리가 더 풍성해져 재미있을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가수라면 ‘경기장 급’ 대형 무대를 꿈꾸지 않을 사람이 있을쏘냐. 하지만 홍대광에겐 왠지 소담스러운 작은 무대가 더 어울린다. 이 같은 의견을 전하자 그 역시 “공감한다”며 자기만의 공연지론을 펼쳐보였다.
“평화의 전당이나 핸드볼 경기장 같이 큰 곳에서 공연하는 걸 보면, 정말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요. 그런데 소극장 공연을 보면 단순히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소통하고 있구나,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물론 큰 무대에서도 소통하는 가수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작은 공연장에서 소통할 때가 더 따뜻하거든요. 제가 바라고 추구하고 싶은 공연도 그렇고요. 그랜드민트 때도 그랬던 것 같고요. 그게 자연스럽게 내 콘서트까지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소극장 투어가 앞으로 할 공연의 꿈이기도 합니다. 김광석 선배님처럼 기타 한 대로도 얼마든지 무대를 채우고 소통할 수 있는 공연이요.”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는 홍대광의 꿈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로 갈무리됐다.
“‘김광석 다시 부르기’를 하면서 선배님들을 많이 알게 됐는데 가장 감사하고 기억에 남는 말은 ‘요즘 노래하는 애들 중 제 2의 김광석에 가장 적합한 아이’라는 이야기였어요. 그 말씀이 너무 감사하고요. 먼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트렌디함은 물론 중요하지만 어느 순간 어쿠스틱 붐이 일어나고 아날로그함을 찾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이렇게 돌고 도는 과정에서 저도 10년 쯤 후엔 그 모든 것을 잘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돼 있지 않을까요?”
사진=CJ E &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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