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누구나 한 번씩은 접해본 ‘사랑’이라는 감정에 쉽게 공감될 거예요.”
영화 ‘너는 내 운명’(2005)에서 전도연과의 가슴 아픈 사랑으로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던 배우 황정민이 2014년 다시 한 번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신세계’ 정청으로 “드루와” 유행어를 탄생시킨 국민 브라더 황정민은 멜로 신작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거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너무도 솔직한 태일 역을 맡았다. 그는 정청이 가진 거친매력에 오직 한 여자와 형,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강인하면서도 순수하고 인간미 넘치는 새로운 캐릭터 태일을 완성시켰다.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태일은 사채업체 부장이다. 태일은 채권회수를 위해 한껏 무스로 멋을 낸 머리에 일수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껄렁껄렁한 걸음걸이로 시장바닥을 누빈다. 머리부터 발끝가지 모든 것이 합을 이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의상들은 유독 황정민의 몸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며 몰랐던 그의 옷태를 새삼 느끼게 돕는다. 자신이 옷을 제대로 입은 듯해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처음에 ‘남자가 사랑할 때’ 제작진과 태일의 의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을 포함한 제작진은 건달을 연상케 하는 의상이 1차원적이고 그간 많은 작품에 뻔하게 등장했기에 싫다고 하더라.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달랐다. 나는 뻔한 게 해답일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해서 몰래 건달다운 의상을 준비해달라고 의상팀에게 부탁해 놨다. 의상을 입고 테스트를 하는 날, 맨 마지막 순서에서 건달다운 옷을 입고 등장했다. 수수하게 수협 직원복을 입은 호정(한혜진 분)과 건달옷을 입은 태일의 조합이 딱 들어맞았다. 도저히 안 만날 것 같은 두 사람이 한 컷에 담기니 다들 이거다 싶었다. 나의 꼼수 덕분에 의상 부분이 전면 재수정됐다.”
↑ 사진=옥영화 기자 |
“나는 촬영 현장에서 촬영을 준비하거나 세팅을 바꾸는 동안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다. 가수 이문세의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듣는데 가사가 묘하게 공감되더라. 사랑보다 더 슬프고 아픈 건 기억이라는 내용이 담긴 노래인데 듣는 순간 우리 영화와 맞아떨어지더라. 또한 호정의 입장에서 보니 기억이 너무 아프고 슬픈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마음을 다 잡던 호정이 어느 날 태일과 재회하고, 잊었던 기억이 떠올라 다잡았던 마음이 무너지지 않냐. 그녀에게 있어 당시의 기억은 사랑보다 아프고 슬프기에 노래와 딱 어울렸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이 노래를 꼭 써달라고 우겼다. (웃음)”
연기에만 신경을 써도 모자란 시간에 황정민은 연기와 의상, 배경음악 등 부수적인 부분도 체크하며 관객들이 믿고 보는 배우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꼼꼼한 의상 체크와 함께 연기 외의 다른 부분에도 참여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콘셉트 회의를 할 때 같이 참여해 의상팀의 생각을 들어보고 나의 생각도 전한다. 물론 준비는 의상팀의 몫이고 내가 연기를 맡지만 내가 입은 채 연기할 옷이니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극에서 맡은 인물들은 내가 아닌 내가 만들어 낸 캐릭터로 나를 통해 성격이나 행동이 나온다. 사소한 부분도 신경 써야 그 사람의 삶과 역사가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의상 체크 등 세세한 부분에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친절하게 소신을 밝혔다.
극에서 황정민이 맡은 정청 닮은꼴 태일은 첫눈에 반한 여자 호정 덕분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색하고 서툰 그만의 애정표현은 호정을 지나 형 영일(곽도원) 더 나아가 가족들에 대한 애정으로 커져 조금씩 그를 성숙케 돕는다. 이 과정들이 어찌보면 다소 평범하고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미 멜로 영화를 좋아한다고 밝힌 황정민에게 있어 이 작품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장르가 멜로라서 작품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외에도 가족 간의 사랑이 정말 좋아서 출연을 결심했다. 사랑에 있어 밀당(밀고당기기)은 마음에 들지 않다. ‘남자가 사랑할 때’에는 밀당도 없고 그냥 순수하고 적극적인 사랑이 등장한다. 영화가 통속적이고 뻔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은 우리들이 자주 쓰고, 자주 하고 싶어하며 상대방에서 받고 싶어하는 단어 아니냐. 사랑이라는 감정은 모두가 기본적으로 가진 감정이기에 잘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랑은 대중들이 너무 잘 아는 감정이자 누구나 한 번씩은 접해봤기에 많이 소통되고 공감할 것 같다.”
↑ 사진=옥영화 기자 |
“‘신세계’ 보다 더 기대하고 있다.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이 전해진다면 관객들이 이해할 것이고 좋게 봐줄 것이다. ‘너는 내 운명’으로 관객들의 심리를 느껴봤기에 자신감이 있다. 멜로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니까, 되도록 멜로 작품에 많이 참여하고 싶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멜로를 하는 게 나에게는 행복이다. 30대 때 찍었던 ‘너는 내 운명’에서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깊이감이 이번 작품에 있더라. 그래서 기분도 좋고 50-60대에도 멜로 영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든다. 잘 늙어야겠다. (웃음)”
‘남자가 사랑할 때’를 시작으로 황정민은 ‘국제시장’ ‘베테랑’으로 2014년 다작 아닌 다작배우에 이름을 오를 준비를 앞두고 있다. 2013년 송강호가 ‘설국열차’로 시작해 ‘관상’에 이어 ‘변호인’으로, 설경구가 ‘감시자들’ ‘스파이’ ‘소원’으로 다작배우에 등극했듯. 그 역시 이들의 뒤를 이을 준비를 마쳐 팬들을 설레게 만든다.
“송강호 형이 너무 세게 나와서. (웃음) 나는 늘 열심히 작품에 임하려고 노력한다. 배우로서 예술가로서 광대로서 관객들에게 연기를 보여줘야 될 중요한 의무가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열심히 일을 하는 편이다. 관객들이 작품을 골라서 먹을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게 나의 몫이다. 대본도 어찌보면 단편소설이다. 책을 읽다보면 책 내용이 정말 좋아 나만 읽기 아까워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지않냐. 나는 대본을 고를 때 책을 선물한다는 마음으로 고른다. 이 내용을 관객들에게 선물해주고 싶다, 또는 충분히 선물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역할을 선택하고 고민한다.”
2005년 제26회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너는 내 운명’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황정민은 당시 “스태프들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는 수상소감을 전한 바 있다. 그의 수상소감은 일명 ‘밥상 수상소감’으로 퍼져 다양한 패러디물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이에 버금가는 책 선물 명언(?)을 해 감동을 안기려는 찰나, 한혜진에 대한 넘치는 극찬으로 후배사랑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혜진의 피부는 좋아도 정말 좋다. 하얗고 잡티가 없다. 반대로 나는 잡티도 많고 빨간얼굴이다. (웃음) 사실 나는 쑥스럽기도 하고 성격상 피부과를 잘 다니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가 사랑할 때’ 분장팀이 하도 못살게 굴어서 군산에 있는 한 피부관리샵을 갔다. 총 10번을 끓었는데 5번만 가고 5번은 못 갔다. 그러나 내 인생에 있어 5번 간 것도 잘 간 것이다. (웃음) 초반에는 피부관리를 받은 효과가 있었지만 사람 성격이 어디 가겠냐. 내 취향이 아니다. 이제는 안 간다. (웃음)”
피부관리 덕분인지 황정민과 한혜진의 연기 열정 덕분인지 두 사람의 조합은 낯설지 않고 묘하게 어울린다. 입고 있는 의상만 다를 뿐 순수하게 사랑하는 모습은 닮아있다. 이에 황정민은 “우리 두 사람이 어울릴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상대방을 믿고 마음을 열어놓은 채 만나서 인 것 같다. 한혜진이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호정으로 다가와 줘서 정말 고맙다. 덕분에 나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한혜진의 뛰어난 배역 몰입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황정민은 ‘국제시장’에 대한 짧지만 강한 소개로 다시 한 번 공감 갈만한 이야기로 대중을 찾을 것을 약속했다.
↑ 사진=옥영화 기자 |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