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이제 배우라는 명칭이 낯설어요.”
뮤지컬 ‘그리스’ ‘맨오브라만차’ ‘지킬 앤 하이드’ 등을 무대에 올린 오디뮤지컬컴퍼니 홍보팀 황보예 씨의 이력은 독특하다. 2008년 영화 ‘야수와 동정의 밤’으로 데뷔해 배우 활동을 하던 중 돌연 뮤지컬 제작사 홍보팀으로 업종을 바꿨기 때문이다. 어느 날 홀연 듯이 화려한 스포츠라이트에서 스스로 내려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배우라는 직업이 어떻게 보면 일종의 프리랜서잖아요. 해가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죠. 집에 있는데 어느 순간 ‘쉬는 날이 계속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미래에 대해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당시 tvN ‘노란 복수초’라는 드라마에 출연 중이었어요.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도 촬영을 이어가던 중 중 대학 교수님을 통해 오디뮤지컬컴퍼니라는 곳에서 홍보팀 직원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면접을 보게 됐는데 덜컥 채용이 됐죠.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뭔지 아세요? 면접결과가 발표되던 날 막혔던 물꼬가 트이듯 드디어 정식으로 연예계에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예요. 조금만 하면 빛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때마침 찾아온 취직에 ‘이대로 연예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까’ 많이 갈등했었죠.”
“솔직히 이전까지 직장생활을 한 것도 없어요. 이력서를 썼더니 경력란에 쓸 거리가 많이 없더라고요. 후에 대표님에게 물어봤어요. 뭘 보고 나를 뽑았냐고. 회사에서 저를 긍정적으로 본 것은 딱 한가지였대요. 배우에 대한 미련을 확고하게 접은 마음과 결단력이요. 꿈에 도전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이를 끊고 나온 것은 더 멋지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언젠가 평범한 직장인처럼 명함을 갖고 싶었는데 이렇게 전공도 살리면서 원하던 명함까지 손에 얻게 됐으니 일석이조라며 기뻐하던 황보예 씨에게서는 배우에 대한 미련이 엿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만큼 이제는 미련이라는 것에 초연해 졌지만, 첫 시작은 그리 쉽지 않았을 터. 이에 대해 황보예 씨는 첫 출근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살포시 웃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하필이면 황보예 씨가 첫 출근했던 날이 뮤지컬의 화려한 축제로 꼽히는 시상식 ‘뮤지컬 어워즈’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현장에 투입돼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한 황보예 씨는 이후 이어졌던 어색한 첫 회식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아직도 기억이 나요. 한쪽에는 회사 직원들이,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배우들이 나뉘어서 앉아있었어요. 처음 만나는 직원들과 어색하게 있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왜 배우석이 아닌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일까 하는. 그 생각에 집에 와서 엄청 울었어요. 직장생활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고, 순간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친 건가 싶은 생각에 제 선택에 후회가 올까봐 무서웠던 거예요. 물론 지금은 아니에요. 3년차가 된 지금은 배우 자리에 못 앉는 대신 그냥 그 자리에 스스럼없이 앉아서 배우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놀아요, 컴퍼니 직원으로서.”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물으니 규칙적인 출근과 근무 시스템이었다. 프리랜서로 여유롭게 일하다가, 직장에 소속되면서 정해진 시스템을 따라 일을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것이다.
“제 시간에 출근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어요. 게다가 공연은 주말에 더 바쁘게 흘러가잖아요. 평일에는 회사출근, 끝나면 공연장행, 주말에도 공연장에서 상주하다시피 살다보니 초반 쉴 틈이 없더라고요. 남들 놀 때 놀고 남들 쉴 때 쉬는 것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초반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얼마 못 가 그만 둘 것’ 이었어요. 근데 지금까지 끈끈하게 버티고 있죠.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하는 거 보면 저와 이 일의 궁합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서툴렀던 그녀는 최대한 현장을 찾아가 직접 보면서 배워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에게 기념비적인 뮤지컬이 등장했다. 바로 ‘맨 오브 라만차’ 홍보팀으로서 처음 그녀가 혼자의 힘으로 홍보한 작품일 뿐 아니라, 그나마 있던 배우에 대한 일말의 미련을 모두 없애준 작품이기도 하다.
“정말 매일 보다시피 했는데 보면 볼수록 감탄밖에 안 나왔어요. 어쩜 저렇게 잘할 수 있나하고. 그리고 내가 한때 배우를 꿈꿨다고 말하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대 위 치열하게 연기하고 수고하는 손길들을 보면서 배우에 대한 일말의 미련을 완전히 접게 됐죠.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 존경심을 느낄 뿐이에요.”
배우라는 꿈을 포기한다는 것에 미련이 없는 것일까. 질문을 하니 주위에서 그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고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물론 옛날 배우를 할 때처럼 예쁘게 메이크업을 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아쉽고,
금빛나 기자 shinebitn917@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