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안미나 분)은 대령 예편 후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버린 할아버지 이노인(명계남 분)의 사진첩에서 어린 소녀의 모습이 담긴 낡은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평생 할아버지의 마음에 새겨진 이 사진 속 소녀를 찾기 위해 할아버지와 역사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경남 거창에 도착한 지윤은 할아버지의 옛 기억을 더듬던 중 그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알 수 없는 말에 담긴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슬픈 비밀에 그저 눈물만 흘리는 지윤. 그녀가 알게된 슬픈 비밀은 무엇이고 할아버지의 사진 속 소녀를 만날 수 있을까. / ‘청야’
[MBN스타 여수정 기자] “‘청야’ 어떠셨어요?”
배우 안미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물었다. “좋았다. 젊은 세대가 꼭 봤으면 하는 영화였다”는 말에 그녀는 마치 원하는 대답을 들은 듯 밝게 웃었다. 해맑은 미소를 짓는 안미나를 보고 있자니 영화 ‘청야’에서 슬프고 애절한 연기를 어떻게 소화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데뷔한 안미나는 ‘전설의 고향’ ‘라디오 스타’ ‘특수인간 최장수’ ‘황금신부’ ‘역전의 여왕’ ‘사랑의 기적’ ‘원더풀 라디오’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작품의 수만큼 그녀의 연기내공도 함께 쌓인 셈이다. ‘청야’에서 안미나가 보여준 애절하고 구슬픈 연기는 보는 이들까지 먹먹해진다. 극에서 그녀는 거창사건과 연관 있는 할아버지(명계남 분)의 기억을 찾아 거창으로 동반여행을 떠나는 손녀 이지윤 역을 맡았다. 영화는 1951년 거창 양민학살사건을 소재로 했기에 조금은 어둡고 무겁다. 거기에 가녀린 안미나가 사건의 숨은 진실을 알고 하염없이 괴로워하거나 눈물을 흘리기에 슬프다.
“‘청야’는 경남지방 주민들이 아닌 거창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봐야 된다. 모르기에 거창사건에 대해 꼭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거창 양민학살이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덮어둔다면 안 된다. 일단 알아야 되고,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게 맞다. ‘청야’ 속 주인공은 명계남 선생님과 장두이 등 선배들이 아닌 나와 김기방, 백승현이다. 이는 젊은 세대가 거창사건에 대해 알아야 되고, (더 많이 알리는 방법으로) 가볍게 다가가기 위해 우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결국 사건을 알아야 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다.”
↑ 안미나는 ‘청야’에서 이지윤 역을 맡았다. 사진=한희재 기자 |
‘청야’ 대본 리딩 당시 안미나가 느낀 감정은 스크린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찌보면 어렵고 연기가 비교될 만도 하지만 그녀는 선배들의 포스에 눌렸다기보다는 그들과 합을 이루며 극을 이끌어나간다. 출연배우 어느 하나 못나지도 잘나지도 않고 균등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안정적이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와 실제 거창에 거주 중인 주민, 생존자, 유가족의 증언은 다큐멘터리 요소를 높여 진실성을 강조한다. 거기에 자칫 내용이 무거운 방향으로 쏠릴 것을 예방한 애니메이션도 톡톡히 제 몫을 해낸다.
“‘청야’ 속 손녀 이지윤 역을 위해 쉬는 날에도 연기에 몰입했다. 사실 대사가 많다기보다는 ‘할아버지’를 부르는 대사가 많았는데, 여러 버전이 있었다. (웃음) 많은 준비와 고민을 했음에도 이지윤이 처한 상황과 복잡한 감정을 나 스스로 어떻게 느끼고 표현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첫 촬영 때는 할아버지와 나들이 가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진지하게 거창사건을 바라봐야 되기에 마음이 힘들었다. 감정연기가 힘들었지만 많은 선배들이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안미나의 말처럼 영화의 소재와 분위기는 다소 느리고 차분해도 촬영에 임한 배우들과 제작진은 서로를 다독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작품에 임했다. 그녀는 촬영을 위해 계속 거창에 머물렀다고 밝히며 같은 소속사 식구인 김기방과의 친분을 알렸다. 안미나의 말에 의하면 다른 작품과 ‘청야’를 병행했던 김기방은 거창과 촬영장을 오갔고, 평소 세심하고 배려가 깊은 김기방을 안미나는 그저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이때부터 안미나의 ‘김기방앓이’(?)는 시작됐다.
“김기방은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상대배우로 만났다. 처음에는 어색하기에 그저 예의바르게만 대했다. 단지 서로 데뷔작에서 상대역을 한 배우라는 생각만 가진 상태였다. 그러다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인사치레로 연락을 하기도 했다. 보면 불편하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그런 사이였다. (웃음) 인연이 닿아 소속사 식구가 됐고 다시 만나니 정말 반갑더라. 그 후 ‘청야’에 함께 출연하면서 장난도 자주 치고 편한 사이가 됐다. 김기방은 주변사람들에게 잘 하고 정말 매너가 좋고 겸손하다. 각광받고 있는 그를 옆에서 지켜보면 보기 좋다.”
↑ 사진=한희재 기자 |
“정말 혼신을 다했고 스스로 클라이맥스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했는데 그게 카메라에 안 찍혔더라. 안 담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 조금은 마음이 힘들었다. 다시 찍자는 말에도 도저히 못하겠더라. 당시 모든 상황이 정말 원망스러웠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날 다시 같은 장면을 촬영했는데 제작진이 나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다들 노력했다. 배우들은 물론 제작진도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데 오직 나의 기분을 위해, 어제의 감정을 표현하게 도와주려고 애쓰더라. 다행히 감정을 잡아 다시 촬영을 성공했지만 아쉬운 게 많다. 생각보다 잘나온 장면도 있지만 잘 표현하고 싶었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도 있다.”
안미나는 작품과 연기에 대한 욕심을 적절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연기변신이 카멜레온처럼 자유자재다.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은 ‘청야’에서, 밝고 생각 없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푼수 같은 면모는 아침드라마 ‘내손을 잡아’에서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변신의 귀재다움에 안미나는 “나는 작품에 임할 때 맡은 인물에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이다. ‘청야’때는 기운이 조금은 눌려있었다면 ‘내손을 잡아’덕분에 평소 모습이 밝아졌다. 그래서인지 쓸 때 없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내가 워낙 배역에 감정이입을 잘하니까 악역을 하고 싶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들 말리더라”라며 배역에 스르르 동화되는 게 장점아닌 장점이라고 밝혔다.
배역 몰입이 쉬워 작품에 임하는 동안에는 배우 안미나가 아닌 극중 등장인물로 살아가는 그녀는 정말 뼛속까지 타고난 배우다. 앞으로 진정한 메소드(method) 연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안미나의 모습이 흥미롭다.
↑ ‘청야’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김기방과 안미나. 사진=한희재 기자 |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