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빴냐고요? 아니에요. 강우석 감독님이 절 모른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요. 강 감독님은 저 대신 다른 배우를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오디션이 저를 어필할 수 있는 과정이라면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 역할을 따내면 뿌듯할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맡게 돼 정말 기뻤어요.”(웃음)
강 감독을 설득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오디션은 몇 차례 더 진행됐다. 마지막까지도 강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배우를 고집했는데, 정 감독이 끝까지 온주완을 밀었다고 한다. 온주완은 정 감독은 물론, 강 감독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내비쳤다.
“강 감독님이 절 자극시켜주신 거죠. 쉽게 캐스팅이 된 뒤 촬영에 들어갔으면 끝까지 긴장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 자극이 이번 연기에 목숨 걸게 하는 원동력이 됐죠. 정 감독님이요? 정 감독님은 제작은 안 됐지만 예전에 ‘달빛 구두’라는 웹툰을 영화화하려고 하셨을 때 저를 주인공으로 쓰고 싶어 하셨어요. 그때는 제가 소년 같았다고 하셨어요. 이번에는 소년의 뒷모습이 궁금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일종의 막무가내 믿음이죠. 하하하.”
정신병자처럼 보이는, 살기 어린 연기가 탁월하다. 범인임을 알고 봐도 섬뜩하고, 온주완의 무서운 얼굴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김선아의 다른 모습도 매력적이지만, 온주완의 새로움이 극 전반에 드러난다고 평가한다. 김선아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다.
“그렇게 봐주시면 고마운 말이지만 영화는 앙상블이 중요한 거잖아요. 이 인물과 붙어도, 저 인물과 붙어도 저만 잘하면 매력적인 캐릭터일 것이라는 생각만 했어요. 다른 큰 욕심은 내지 않았죠.”
온주완은 “이렇게 열정적으로 캐스팅 과정에 덤빈 게 처음이었던 같다”고 회상했다. 신인이었을 때는 영화 작업을 하고 싶었던 막연한 바람과 열정이 있었는데, 10년이 지나며 약간 그것이 누그러졌다는 그다. 시나리오를 볼 때 상상력을 동원해 자신을 대입시켜 불협화음이 나는 것 같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그는 이번에는 달랐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액션 연기를 하다 다쳐도 넘어가게 한 힘이 됐다. 물론 원래 성격이 그렇기도 하다.
“액션 신을 하다가 팔꿈치나 어깨를 다쳐도 약은 잘 안 발라요. ‘나중에 낫겠지’라는 생각에 파스를 뿌리면 끝이죠. 배우라는 직업은 몸으로 먹고 살아가는 거니 아껴야 한다고 하는데 액션 연기를 할 때는 몸을 그냥 던지는 스타일이라 그게 잘 안 되네요.”(웃음)
온주완은 영화에 대해 아쉬움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전신 노출 장면을 찍었는데 편집됐다. 감독이 원하는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관객은 온주완의 뒷모습 정도만 감상할 수 있다.
“그 장면을 위해 이틀 동안 밥도 못 먹었어요. 수분 뺀다고 커피만 마셨는데…. 힘들게 찍었는데 아쉽긴 하죠. 뭐, 관객들 상상에 맡겨야죠.”
“온주완이라는 사람이 공감한다면 미친놈이라고 하겠죠. 하지만 재욱에게 빠져 들어가면 충분히 공감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재욱은 원조교제를 하는 아이들을 죽이는데 ‘그렇게 억지로 살 바에야 너를 아름다운 인형으로 만들어 아름답게 살아가게 해줄게’라는 거죠. 사회에서 보면 이상한 놈이지만 재욱 자신에게는 타당할 수 있는 이유 같아요. 영화 ‘향수’에서도 사람으로 향수를 만들어 다른 사람을 매혹하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는 “살인마 역할을 해 다른 배역을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제껏 계단을 하나씩 올라왔다는 그는 “바로 두 칸을 뛰어넘고 싶지는 않다”며 “얼마 전 영화 쇼케이스에서 진행자가 ‘꺼려지는 역일 수 있는데 스타 배우가 이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라고 했는데 정말 고마운 말이지만 난 스타 배우는 아니라고 정정했다. 그냥 열심히 하는 배우일 뿐”이라고 말했다.
“영화 ‘사생결단’을 찍을 때 황정민 선배가 ‘누가 하늘을 날든 땅을 달리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배우의 끝은 똑같아. 배우로 시작해 배우로 끝나는 것뿐’이라고 하셨어요. ‘배우들은 얼마를 벌고, 또 작품수도 그렇게 차이나는 것 아니다’라고 말도 하셨죠. ‘소처럼 꾸준히 밭을 갈고 계속해서 조금씩 수확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유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