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감독 황철현)가 처음 언론에 공개된 그 날,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누르느라 고생했단다. 슬픔 분노 좌절 희망… 어떤 한 가지 표현으로도 정의내릴 수 없는 ‘도가니’에 대한 공유의 단상.
‘도가니’는 2005년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벌어진 아동 성폭행 충격 실화를 극화한 작품. 알려졌다시피 공지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도가니’는 최초 공유의 제안으로 영화화가 시작됐다. “왜 그런 거 있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아이가 울지 않다가 엄마가 달래주면 비로소 울음을 터뜨리는. ‘도가니’는 그런 영화 같아요. 멋모르고 영화화를 제안했지만 찍다 보니 너무 큰일을 벌인 게 아닌가 하는 부담이 들기 시작했죠.”
‘도가니’의 영화화가 결정된 뒤, 다시 책을 꺼내보진 않았다. 원작 속 캐릭터와의 차별화를 위해 일부러 보지 않은, 그런 흔한 이유에서였을까? “(그 충격이) 처음으로 충분했거든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웃으며 말하는 그의 눈빛에는 진지함이 담겨있었다. 영화 홍보에 발 벗고 나서야 함에도 불구, “두 번 세 번 봐달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며, 대신 “응원해 달라” 당부한다.
촬영장은 팽팽한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었다. 아동 성추행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시각적으로 다루는 작업은 아역이나 악역, 관찰자 모두에게 고충이었기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됐다. 공유는 힘든 연기를 흠 잡을 데 없이 소화해 준 아역들에게 감탄을 보낸 한편, “이상형 월드컵에서 강동원, 송승헌에게 결국 졌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싱긋 웃는다.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법정 씬을 꼽은 공유. 이후 등장한 물대포 씬도 여전히 생생하다. “처음엔 보호 차원이었는지 좀 약하게 해주셨어요. 솔직히 휘청 했지만 원래대로 쏘시라고 말씀드렸죠. 맞아보니 와... 진짜 밀리더라고요.” 머리에 맞은 순간 “아찔했다”는 공유는 그 자리에서 연기 없이도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잘려나간 분량이 너무 많다”며 내심 아쉬움을 표하며 ‘무삭제판’ 욕심을 드러내는 공유. 하지만 실제 시위 현장에선 여전히 물대포가 쏘아지는 현실에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극중 인호와 유진의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실패는 아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인호는 사건의 배경인 무진을 결국 떠났다. “(인호에게)연민이 들었던 건, 그가 이해 됐기 때문이에요. 아마 모든 가장이 그러지 않을까요. 그래서 개인적으론 인호를 더 무능하게 그렸으면 했죠. 남루할 대로 남루하게.” 공유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황 감독과의 절충과 타협 끝 소설과는 또 다른, 스크린 속 인호의 모습이 탄생했다.
그렇다면 인호에게 무진은, 그리고 공유에게 무진은 어떤 도시로 기억될까. 한참 고민 끝에 내려놓은 공유의 답은 “똑같을 것 같다”였다.
인호는 무기력한 ‘우리’의 반영이다. 하지만 인호의 마음은 결코 무진을 떠나지 않았으리라. 하얀 안개에 가려진, 어느덧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 곳. ‘1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무진을 향한 인호의 눈은 ‘도가니’를 향한 우리의 눈과 결코 다르지 않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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