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희 작가가 SBS 드라마 ‘악귀’ 종영 후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MK스포츠 제공 |
김은희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
엔딩이 흑암시였던 이유는...
올여름 대한민국을 오싹하게 만들었던 드라마가 있다. 바로 SBS ‘악귀’다.
‘악귀’는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에 오컬트와 미스터리까지 결합한 웰메이드 장르물로 호평받았고, 무엇보다 오컬트는 비대중적이란 우려를 잠식시키고 흥행까지 잡으며 많은 시청자의 ‘인생 드라마’로 남았다.
또한 배우 김태리, 오정세 등도 신들린 듯한 연기를 선보이며 ‘인생 캐릭터’를 다시 썼다. 김태리는 팍한 현실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 뛰는 ‘구산영’과 인간의 욕망을 파고드는 ‘악귀’에 씐 ‘구산영’의 두 얼굴을 오가며 극적 서사를 이끌었다. 악귀를 보는 민속학자 ‘염해상’ 역을 맡은 오정세의 연기 변신 역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특히 ‘악귀’는 장르물의 대가 김은희 작가의 신작에 미스터리를 가미한 멜로드라마 ‘VIP’로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선보였던 이정림 감독이 연출을 맡아 방송 전부터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종영 후 대중들은 두 사람의 만남에 ‘엄지 척’을 하며 “역시”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후 종영 후 김은희 작가, 이정림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악귀’를 향한 다양한 생각과 작품을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은희 작가: 기획부터 시작해서 이런 아이템이 괜찮을까? 공중파에서 오컬트라니 시청자분들이 받아드려 주실까? 고민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런데도 많은 분이 응원해주시고 부족한 부분들도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이정림 감독: 부족한 부분이 많았겠지만, 작가님, 배우들 그리고 훌륭한 스태프를 믿고 촬영에 임했다. 시청자들이 추리하는 내용들도 흥미롭게 봤고, 지인들로부터 연락도 많이 받았다. ‘진짜 비밀로 할 테니 나한테만 몰래 말해줘’라는 문자만 여러 개 받았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악귀’를 집필할 때, (연출할 때) 어떤 점에 주안점을 뒀는지 궁금하다.
김은희 작가: 귀신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귀신도 한때는 사람이었던 존재니까 그 귀신들에게도 나름의 이야기를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이정림 감독: 모든 드라마가 그렇겠지만, 악귀 역시 주인공 구산영, 염해상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끝까지 쫓아갈 수 없는 작품이었다. 촬영 전부터 작가님과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시청자가 둘을 응원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인물들의 첫 등장이나 공간 구현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또 악귀를 비롯한 귀신들, 상황을 묘사할 때 지나치게 화려한 VFX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익숙하면서도 무섭고 기묘한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했다.
↑ 김은희 작가와 이정림 감독이 김태리, 오정세, 홍경, 김원해, 김해숙, 진선규 등 배우들과 ‘악귀’를 함께한 소감을 밝혔다. 사진=SBS |
김은희 작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싶었다. 오컬트라는 새로움에 도전해주시고 멋진 연기를 보여주신 명품 배우님들, 사랑하고 존경한다. 전 귀신보다 배우분들의 연기가 더 소름이 끼쳤던 것 같다.
이정림 감독: 김태리, 오정세, 홍경 배우와는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눴다. 셋 다 질문이 엄청났다. 촬영 막바지쯤 배우들에게 고백했는데 주연들이 내 꿈에서까지 나타나 질문을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거기서 또 다른 생각들이 파생되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막막했던 순간들이 해결되기도 했다.
김태리 배우는 열정적으로 현장을 이끌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네” 한마디도 수십 번 뱉어 보며 좀 더 좋은 것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배우고, 그 결과물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 것만 보는 게 아니라 숲 전체를 보고 있는 배우라 함께 작업하며 많이 의지하고 배웠다.
오정세 배우는 고요하지만 단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다. 고독, 외로움, 외골수 등 염해상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을 다 소화하고 표현해줬다. 홍경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하고 진중하며, 태도만으로도 본받을 점이 많다. 극 중 서문춘 형사가 죽은 뒤 시청자들이 더 슬퍼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 홍경이라고 생각한다.
김원해 배우는 현장에서 등불 같은 존재로 후배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 김해숙 배우는 화면 속에선 정말 무서워 보이지만 컷, 하면 호호 하고 웃는 소녀 같은 배우로 스태프들이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배우였다.
진선규 배우는 좀 과장해서 첫 만남에 이미 알고 있던 옆집 형님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부드럽고 우아한 말투로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웃게 해주는 사람이다. 제 나이보다 12살이나 많은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엄마처럼 늘 보듬어 주시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해해 주신 박지영 선배님께도 감사드린다.
1958년부터 현재까지, 시대를 거슬러 여러 청춘의 이야기와 이러한 청춘들을 좀먹는 그릇된 욕망과 사회악을 다뤘는데, 이러한 메시지를 ‘오컬트’란 장르에 녹여낸 이유가 궁금하다.
김은희 작가: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란 말이 있다. 특히나 끔찍한 범죄를 보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악귀’는 그런 생각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방황하고 흔들리는 청춘에게서 희망을 뺏어간 범죄자들을 귀신에 빗대어 그려보고 싶었다.
민속학을 바탕으로 했기에 공포가 친숙하면서 더 무섭게 다가왔다. 특별히 민속학을 선정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중에서도 다양한 귀신이 등장하는데 산영(김태리)에게 태자귀를 씌게 한 이유가 있을까?
김은희 작가: 한국의 귀신들을 조사했을 때 태자귀가 가장 마음이 아픈 귀신이었다. 산영과 나이는 다를 수 있겠지만, 어리고 힘없어서 뭔가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전사가 요즘 청춘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이런 민속학이나 오싹한 괴담 등에 관심이 있는지, 본인 혹은 주위 사람이 겪었던 오싹한 경험의 에피소드 같은 게 있을까.
김은희 작가: 귀신을 보면 작품이 대박이 난다고 해서 귀신을 보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은 있긴 했지만 섬뜩했던 경험은 없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인 것 같다. 늦은 밤 주차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가장
“산영이다운 선택을 내린” 구산영(김태리 분)의 흑암시 엔딩은 무엇을 의미하나?
김은희 작가: 산영이는 스물 다섯, 아직은 인생의 시작점에 있는 청춘이다. 극 중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아무리 옳은 선택을 했다고 해도 희망만이 가득하진 않겠죠. 그런 현실을 흑암시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안하나 MBN스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