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뮤' 아닌 '솔로' 이찬혁, 죽음 앞에서 발견한 진짜 나[MK현장]

↑ 이찬혁. 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가 만약 갑자기 죽게 된다면, 전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을까요?"
자신이 내놓는 창작물로 무수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가, 삶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외쳤다. 하지만 그 속엔 '진짜 삶'이 담겨 있다.
악뮤(AKMU) 이찬혁이 데뷔 8년 만에 솔로 아티스트로 나선다. 이찬혁은 17일 오전 서울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솔로 정규 1집 '에러'(ERROR)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이찬혁. 사진｜YG엔터테인먼트

◆그는 왜 '죽음'을 말했나
'에러'는 2014년 남매듀오 악동뮤지션으로 데뷔한 그가 8년 만에 선보이는 솔로 앨범이다. 이찬혁은 "이렇게 빨리 저의 개인 작업물을 발표하게 될 줄 몰랐다. 올해 초에 갑자기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많은 분들이 들어주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열한 곡이 유기성을 갖고 묶여있는 앨범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규 1집 '에러'는 이찬혁이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면 후회가 없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데서 시작됐다. 어떠한 환경∙상태에도 영향받지 않는 '초월적 자유'를 이야기했던 그는 과거 자신의 노래 속에서 모순, 즉 '오류'를 발견, 이후 삶의 최우선 가치란 무엇인지 탐구했고 이를 자신만의 음악으로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이찬혁은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에 마주한 모순 그리고 미래를 향한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담아냈다.
앨범명 '에러'에 대해 이찬혁은 "악뮤 앨범으로 활동하면서 너무나 즐거웠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 만들었는데 이찬혁 앨범을 만들면서는 이전의 생각들에 오류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악뮤 앨범에서 자유와 사랑에 대해 많은 말들을 했었는데 내가 당장 죽게 된다면 나는 여전히 그것들을 나의 최대 가치로 생각할 것인가 고민했고, 거기서 찾아오는 모순적인 생각들이 있더라. 이번 앨범을 통해 그 간극을 줄여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설정을 택한 계기는 앞서 발표한 곡 '벤치'였다. 이찬혁은 "이전 앨범 '넥스트 에피소드'를 컬래버레이션 형식으로 만들면서 자이언티와 같이 부른 '벤치'라는 곡이 있다. 나는 내가 가진 게 다 없어져도 벤치 위에 있어도 행복할 자신 있어 라는 내용의 곡이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인생의 가치는 자유이고 사랑이니까. 그 때 그렇게 노래했고, 여전히 그게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가 정말 죽음처럼, 당장 이 문을 나갔을 때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 됐다면 그걸 나는 극복할 거라는 마음으로 그 노래를 썼지만, 내가 지금부터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그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고,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또 그는 "실제로 그렇게 (벤치에서) 사는 분들이 계실텐데, 이 노래가 그분들에게 상처가 되는 노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 노래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 노래는 그 노래 자체의 가치가 있지만 그 노래에 담지 못한 가치를 담고 싶었다. 사실은 '벤치'에서 모든 게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찬혁은 "나는 죽음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 번도 살면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도 안 죽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가요계의 80%가 사랑노래지만 거기에 죽음이 낀다고 되게 이질적이거나 '왜 죽음 얘기를 하는거지' 하고 받아들인다면 더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덧붙였다.

↑ 이찬혁. 사진｜YG엔터테인먼트

◆죽음이 눈앞에 닥쳐도…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앨범에는 레트로, EDM, R&B, 발라드, 가스펠 등 다채로운 장르의 11곡이 수록됐다. 이찬혁은 특유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기발함, 철학적 메시지, 섬세한 감수성 등이 곡 안에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앨범에 담긴 11곡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어떤 사고(事故)가 일어난 '목격담'을 시작으로 '사이렌' '파노라마' '타임! 스톱!'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 '마지막 인사 (Feat. 청하)' '뭐가' '부재중 전화' '내 꿈의 성' '어 데이' '장례희망'까지 각 트랙을 유기적으로 구성해 몰입감을 높였다.
1번 트랙 '목격담'은 "사고가 나는 순간에도 사진이 찍히는 내 특별한 상황을 담아봤다"고 설명했다. 2번 트랙 '사이렌'은 "구급차에 실려 있는 이찬혁을 바라본 주변인들의 시선"을 담고, 이후 '타임! 스톱!',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으로 이어지는 서사는 "이후 눈을 떴는데 기회가 주어진 것 같은 상태에서 당장 널(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후엔 '마지막 인사'를 통해 청하와 마지막 이야기를 나눈다.
또 사랑과 영원을 초월한 감정을 통해 느끼게 된 부끄러움의 감정을 노래한 '뭐가',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부재중 전화'와 진짜 이찬혁의 욕심을 담은 '내 꿈의 성'과 하루의 감정을 담은 '어 데이', 장례식에 대한 희망을 담은 '장례희망'까지. 총 11개 트랙 중 빼놓은 트랙은 결코 없다. 다채로운 장르의 변주 속 스토리와 함께 풀어낸 곡들의 유기적 구성은 앨범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
그 중 타이틀곡 '파노라마'는 '에러'라는 극의 정점이다. 삶에 대한 미련과 열망을 이찬혁만의 담담한 어법으로 풀어냈다. 진정성 깃든 보컬, 그 안에 담긴 슬픈 가사가 밝은 멜로디를 만났다. 곡에 대해 이찬혁은 "이전의 이찬혁을 부정하는데, 이전의 모습이 정말 나의 솔직한 모습은 아니었구나 하며 괴로워하는 이찬혁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소개할 수 있는 곡은 8번 트랙 '내 꿈의 성'이다. 이찬혁은 "내 삶을 후회했더니, 뭔가 그 죽음 앞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나는 왕이 되고 싶었구나'라는 결론을 내린다. 가사 중엔 '늘 겸손하라 했지만 난 늘 왕이 되고 싶었던 거야'라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이찬혁은 "내가 10년 동안 음악을 하고 대중 앞에 서면서 '겸손하겠다', '초심을 항상 생각하겠다' 등 모두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해왔는데, 그런데 어쩌면 나는 계속 달라지고 머리도 자라고 있는데 억지로 그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겸손은) 중요한 것이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오늘 만약에 죽는다면 그걸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를 생각하다가 '내 꿈의 성'이 나왔다. 그는 "산꼭대기를 점령하겠다는 게 아니라 나답게, 솔직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 그게 내가 생각하는 욕심이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찬혁은 이 곡을 현재 자신의 '인생 모토곡'으로 꼽으며 "앞으로도 겸손하게 예쁘게 잘 보이겠다. 이런 말로 내 삶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다면, 후회하지 않는 행동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내가 하는 것이 영원한 가치를 위반하지 않는 것이라면 깊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당분간은 그런 활동들을 할 것 같다. 되게 과감하진 않을 것 같고, 조금씩 틀을 깨면서 저만의 성을 만들고, 그 성 안에서 파티를 열고 사람들이 놀러오고, 그것을 즐기는 삶을 지금은 꿈꾸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이찬혁. 사진｜YG엔터테인먼트

◆"나는 청개구리…솔로 이찬혁 이수현도, 악뮤도 계속 갑니다
"저의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는 청개구리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고 운을 뗀 이찬혁은 "악뮤로서 해온 것을 사랑받고 인정해주셔서 감사했지만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게 확고하게 있다"고 긴 답변을 시작했다. 그는 "어쿠스틱듀오라는 칭호를 받았을 땐 '나는 댄스를 하고 싶은데' 하기도 했고, 처음 YG 입사했을 때 뭘 하고 싶으냐고 했을 때 나는 어쿠스틱이라는 틀이 박혀 있는 게 괴로워서 일렉트로닉을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당시엔 모두가 웃기도 했지만, 내 방식대로 다이노소어라는 이디엠 장르를 어쿠스틱과 섞어 내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이찬혁은 "악뮤로서는 정말 많은 것을 보여드렸는데 이제는 수현이도 저도 나이를 먹으면서 제가 만든 제 캐릭터 안에 수현이가 같이 들어오기가 쉽지 않아지더라. 수현이도 수현이만의 캐릭터가 확실히 생기고 제 캐릭터도 확실히 생겨서 중간지점을 찾기 어려웠고, 내가 원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선 내 앨범을 만들길 원했다. 너무 즐거웠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찬혁은 자신의 솔로 앨범이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수현이가 너무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 보니 나 스스로도 기준이 있었다. 수현이도 나도 각자 솔로로 나왔을 때 악뮤 음악보다 못할 거면 나올 필요가 없다,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나와야 솔로 명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걸 계속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10년 이상 걸릴 줄 알았는데, 대중적으로도 이찬혁이라는 캐릭터가 생긴 시점이기도 했고, 나도 내 목소리를 갈고 닦으면서 노래는 이렇게 부르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퍼포먼스적으로도 정립이 되어 딱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향후 악뮤의 여정에 대해서도 전망했다. 이찬혁은 "악뮤는 굉장히 새로운 캐릭터고, 나오기 힘든 캐릭터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악뮤로 음악적 욕심을 계속 부려왔지만 이제는 이찬혁이라는 캐릭터가 거기서 분리되면서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 악뮤라는, 정말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예쁜 남매로 봐주시는 것에 대해서, 그것에 보답하는 차원은 계속 할 것이면서도, 나는 내 욕심을 담은 음악을 계속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찬혁은 또 "신기하게도 수현이와 저는 어떤 음악적으로 뭔가를 이뤄야겠다는 욕심 자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 자연스러운 것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사춘기 플레이 한해씩 거쳐오면서 다음 할 말이 있겠지만, 어렸을 땐 급변하지만 커가면서는 쉽게 가치관이나 상황이 바뀌지 않더라. 어쩌면 모든 걸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면 조금 더 오래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그걸 그냥 두는 것보단 그 과정 안에, 수현이와 저도 악뮤라고 할 수 있으니까 개인적인 것들을 계속 노출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 모든 걸 하나로 봐주신다면 악뮤로 보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동생과 가족의 반응도 덧붙였다. 이찬혁은 "수현이는 이번 앨범을 듣고 너무 좋아했고, 감동해서 눈물도 보였다. 우리 어머니도 우셨다. 가족들이 듣기에 ,들을만한 노래는 아니지 않나. 조금 어쩔 수 없이 들려드렸지만 이해를 하시고 눈물 한 번 훔치시고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하셨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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