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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큰 사랑을 받은 배우 박은빈. 사진|나무엑터스 |
시원한 느낌의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배우 박은빈(30)은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눈을 반짝였다.
버섯머리를 한 우영우의 똑단발을 귀 뒤로 살짝 넘겨 청순함을 더했지만, 취재진의 명함을 모두 받아 하나씩 테이블 위에 각 맞춰 정리해 올려두는 모습. 여기에 인터뷰를 앞두고 이것저것 준비해 온 생각과 자료를 A4용지에 빼곡히 메모해 둔 모습은 영락없이 '실사판' 우영우를 만난 느낌. 하지만 크록스 신발에 붙어있는 고래 아닌 토끼는, 지금 마주한 그가 우영우 아닌 박은빈임을 실감하게 한다.
박은빈은 "명함을 정리해놓는 건 사실 내 성격"이라며 쑥스러워했지만 그도, 기자도 아직 우영우의 여운에 젖어 있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영우를 만난 박은빈은 데뷔 후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고, 그런 박은빈에게 묻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박은빈이 열연한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극본 문지원, 연출 유인식, 이하 '우영우')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다룬 드라마다. 채널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는 케이블 ENA 채널에 편성됐지만 오직 작품의 힘으로 입소문을 탔고, 유례 없는 '대박'을 냈다.
0%대로 출발한 '우영우' 시청률은 박은빈 등 배우들의 열연과 짜임새 있는 연출, 유기적이고 따뜻한 스토리로 초반부터 입소문을 타더니 불과 6회 만에 10%대에 진입했고, 최종회 17.5%로 요즘 보기 드물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될 놈은 된다'는 업계 명제를 입증했다.
이 마법 같은 드라마의 타이틀롤 우영우 변호사로 활약한 박은빈이 갖는 감정은 특별할 법 한데, 박은빈에게선 "솔직히 무서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말 솔직하게 작품성에는 심혈을 기울인 게 맞지만 대중성은 이미 대중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상 시청률은 목표에 당연히 없었고. 뒤로 갈수록 입소문이 난다기보다는 초반부터 너무나 기대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셔서, 솔직한 개인 심정으로는 무서웠어요. 왜냐면, 제가 그만큼 (작품을) 가볍게 대한 게 아니라 정말 진중하게 접근하고자 노력했고, 진정성에 있어서만큼은 자신감이 있었지만 또 내가 모르는 감수성이 있을 수 있는거고, 무지했던 부분이 있는건데 너무나 많은 분들이 봐주시면 그만큼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 있을테니 그런 부분들이 과연 괜찮을까 하는 위협이 됐던 것 같아요. 제가 영우를 통해 배운 것이, 그 모두를 포용할 수 있어야겠다는 게 있기 때문에 겸허하게 관망하는 자세로 지켜봤어요.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우영우 팀에 보내주는 관심이라 생각하고 크게 도취되어 있진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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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빈이 `우영우`에 합류하기까지 긴 고심의 시간을 떠올렸다. 사진|나무엑터스 |
그렇게 '우영우'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소회는 어떨까. 박은빈은 먼저 채널이 자체적으로 준비한 종영 인터뷰에서 눈물을 보였던 데 대해 언급했다.
"믿어주실 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한 모든 작품, 모든 캐릭터들을 동일하게 사랑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우영우'가 더 각별하다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그날 흘린 눈물은 말 그대로 정말 몇 년 만에 흘린 눈물인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작품 하나하나 끝낼 때마다 끝났다는 아쉬움이 커서 눈물날 때도 많고, 한 인생을 잘 살아서 보내주는 마음이 커서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속내였다. 박은빈은 "'우영우'는 무사히 잘 마쳤다는 안도감이 가장 컸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긴장감이 컸다"며 "배우로서 잘 해내야 하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사력을 다했고, 정말 끝났다는 안도감에 그동안의 힘들었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간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잘 해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복잡 미묘한 감정에 눈물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극중 박은빈은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 역을 맡아 그의 성장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박은빈 아닌 우영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목소리 톤부터 손짓, 걸음걸이, 눈빛 등 캐릭터에 완벽히 몰입한 박은빈은 세상 속으로 씩씩하게 부딪치며 나아가는 우영우의 모습을 따뜻한 감동과 유쾌한 웃음, 특별한 설렘과 함께 담아내며 강렬한 힐링을 전해 큰 여운을 남겼다.
결과적으로는 최고의 궁합을 보여준 최상의 결과였지만, 실제로 박은빈은 '우영우' 출연을 여러 차례 고사했다. 고사 끝에 합류하게 된 과정을 묻자 박은빈은 긴 서사 속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쉬운 마음으로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시놉시스를 보고 좋은 작품이라는 마음은 왔지만 내가 배우로서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암담하긴 했어요. 시놉시스를 읽거나 다른 대본을 보거나 할 때면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영상화 작업도 거쳐보며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드라마는 분명 대본은 잘 쓰여져 있는 것 같은데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어떤 목소리, 어떤 톤으로 행동해야 할 지 전혀 감이 안 잡혔고,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내 모습을 내가 잘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죠. (당시 선택했던) '연모'는 내가 하고 싶었고, 여배우로서 하기 힘든 캐릭터라 선택했고 '우영우'는 다른 좋은 배우들이 있다면 좋은 작품으로 내가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기다려주셨어요. 그래서 솔직히 많이 부담됐던 건 사실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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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빈은 우영우 캐릭터에 진지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사진|나무엑터스 |
삼고초려 끝 '우영우' 호에 탑승한 박은빈. 이미 선택한 이상, 돌아가는 법 없이 직진이었다. 우영우라는 캐릭터를 잡는 게 우선이었다.
"'연모' 촬영이 막바지까지 고행이었습니다(그는 인터뷰 종종 '다나까' 말투를 쓰곤 했다). '연모' 촬영을 끝내고 사실상 '우영우'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2주 밖에 되지 않았죠. 시간을 낭비하면 안되겠다는 절박함이 저에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가장 효율적으로 빠르게 캐릭터를 잡아갈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최단경로가 무엇일까를 생각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어요. 물론 훌륭한 레퍼런스도 많다고 생각했지만 영우라는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를 보고 만든 게 아니라 영우의 고유함이 있다고 생각했죠. 우영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다른 캐릭터를 보면서 모방할 필요가 전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영우가 기존 다른 캐릭터들과 가장 달랐던 특징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연기하는 입장에서 박은빈의 마음가짐 역시 남달랐다. 그는 "실존인물들을 모방하면 사실 그분들의 실생활을 이용해 연기하는 게 될까봐 최대한 배제하려 했다"며 "작가님 감독님 자문교수님이 대본을 탄탄하게 구축해주고 계셔서 그분들이 생각하는 영우의 느낌을 믿고 갔다"고 말을 이어갔다.
"개인적으로 저는 자폐 스펙트럼 진단 기준을 참고했어요. 다만 아무래도 영우 캐릭터가 어려웠던 부분은, 극 초반에서 설명되는 것들은 딱 봐도 이상해보여야 하는데 변호사로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상하게 보지 않아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모순적 특징이 많았기 때문에 그 적정선을 잡는 게 어려웠죠. 여러 모험 끝에 지금 보시는 영우가 완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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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빈은 우영우에게 배운 점이 많다고 했다. 사진|나무엑터스 |
"현실성, 비현실성에 대한 이야기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어찌 됐든 드라마에서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는 거니까, 영우라는 캐릭터를 자폐 스펙트럼으로 한정하지 않은 게 컸던 것 같아요. 증상의 구현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드라마에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컸기 때문에 드라마적 허용을 포함시킨 부분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자폐인, 자폐인 가족이 많을테니까 그분들에게 최대한 상처되지 않는 방향이 어디인가를 고심했던 것 같아요."
박은빈은 이어 "내가 찾은 답은, 어차피 (자폐 스펙트럼) 증상이 다양하다면 우영우로서는 우영우가 가진 진심을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영우가 세상을 마주하고 어떤 과정을 겪고 어떻게 성장해나가는지, 어떤 거짓 없이 진실되게 표현한다면 그 진심을 전해드린다면 불쾌감이 덜어지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갖고 연기에 임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박은빈이 생각한 우영우는 어떤 인물일까. 그는 "영우가 박은빈보다 훨씬 언니라고 생각한다. 영우는 일단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인 것 같고, 두렵고 불편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항상 해내겠다고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용기를 내는 측면
"개인적으로 영우에게 배운 게 많아요. 영우의 인생 그대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특별히 판단하지 않고, 사람들을 자기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 부분들이 영우에게 배울 점이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