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다. 날 것의 들끓는 신념을 숨긴 채 겉으로는 냉정하고도 불친절하며 잔혹하기까지 하다. 물불 가리지 않고 냅다 돌진하다 마치 길을 잃고 빽빽한 덤블 속을 헤매는 듯 하지만, 마침내 목표 지점에 정확하게 도달한다. 이정재·정우성의 23년 만 재회, 첩보 스릴러 ‘헌트’(감독 이정재)다.
영화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 분)’와 ‘김정도(정우성 분)’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 ’월드스타’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이자 정우성과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재회한 작품으로 일찌감치 국내외 큰 관심을 받았다. 앞서 제75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 받아 7분 간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외신의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입증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880년대. 실제로 군부 정권이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던 시기다. 들끓는 민주화의 열기, 그럴수록 정부의 유혈 진압 역시 심각했던, 처참하도록 모두가 뜨거웠던 혼란의 시대. ‘아웅산 테러 사건’(1983년 10월 9일, 미얀마(당시 버마)의 수도 양곤에 있는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북한 공작원 3명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미리 설치한 폭탄을 터뜨려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 등 2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당한 사건. 폭발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묘소에 도착하기 전이어서 해를 입지 않았다.)을 모티프로 한 영화는 거대한 스케일과 ‘1호(대통령) 암살’을 두고 팽팽하게 맞서는 두 인물의 심리전이 주요 관전 포인트다.
이정재 정우성은 맨몸 액션부터 총격 액션까지 몸을 사리지 않는다. 총격전, 폭발, 차량 액션 등 압도적이고 역동적인 장면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방대한 서사와 반복되는 반전이 끝없이 뒤틀리고, 허성태 전혜진을 비롯해 특별 출연한 주지훈, 김남길, 박성웅, 조우진, 황정민 등이 다채로운 볼거리를 완성한다.
다만 두 주인공의 복잡하고도 스피드한 심리전은 보다 촘촘하고도 엄격한 서사적 통제가 필요한데 분위기 자체에 의존해 헐거운 지점들이 적잖게 보인다. 그들의 충성과 행동 동기, 반전의 개연성은 종종 불투명하다. 이로 인해 캐릭터의 깊이나 스토리텔링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사족 같은 반전의 엔딩 대신 오롯이 두 주인공의 민낯과 대조적으로 매치된 웅장한 클라이맥스로 마무리해도 좋았을듯 싶다.
복잡한 시대적 배경 안에 펼쳐지는 장황한 이야기의 불친절한 전개는 긴 러닝 타임으로 인해 특히 부각된다. 곳곳의 군더더기를 과감히 덜어내고 똑똑하게 압축· 세련되게 절제했더라면 약
점을 들키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영화는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정우성 이정재의 투샷은 기대 이상으로 반갑고 성숙해졌다. 베일이 벗겨질수록 츤데레 매력이 짙게 느껴지는 새로운 첩보 액션물이다. 8월 10일 개봉.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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